최종건(맨 앞) 선경직물 사장과 당시 최종현 부사장이 선경직물 공장을 나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 제공=SK그룹>

[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1960년대 중반 최종현의 귀국과 함께 선경직물은 크레폰·앙고라 등의 신제품을 출시하며 부흥시대를 맞았다. 하지만 단순한 직물공장으로서는 성장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최종현은 알고 있었다. 

1966년 초, 마흔이 된 최종건 회장의 생일에 맞춰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최종현은 '선경 5개년 계획'을 발표, '원사에서 봉제'에 이르는 수직적 다각화를 제안했다. 

당시 하루 7.5톤 규모의 아세테이트 원사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짓는 데 필요한 금액은 29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선경의 자본금은 고작 1억원이었다. 

선경과 비슷한 규모의 직물업체는 800개가 넘던 시대였다. 일개 직물업자가 원사공장을 건설하고 당시 생산기술을 독점하던 일본 데이진사로부터 기술을 이전받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국내 기업인 최초 금탑산업 훈장을 수상한 최종건 회장 <사진 제공=SK네트웍스>

회사 간부들은 '원사공장을 지으면 좋다는 걸 누가 모르나? 또 무슨 돈으로 공장을 짓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해 7월 초여름, 선경직물 수원 공장에서 최종건 회장의 쩌렁쩌렁한 불호령이 울려퍼졌다.

"당장 간부들을 소집해!" "가뭄으로 마을 논이 갈라진 것도 모르고 있었잖아. 어서 공장 지하수를 퍼올려 논에 물을 대라고!" 

갑작스러운 호출을 받고 뛰어온 간부들은 최 회장의 뜬금 없는 지시에 어리둥절해졌다.

그해 수원은 사상 유례없는 혹독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다. 논은 물론이고 하천 바닥까지 물 한 방울 찾아보기 힘들었다. 

또 공장에서 논까지는 2km가 넘는 거리였다. 직원들은 집에 있는 수도꼭지 호스까지 모조리 들고 나와 밤새도록 물대기 작업을 벌였다. 

그렇게 새벽이 밝아올 무렵, 마침내 마른 논바닥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갔다. 임직원들은 만세를 부르며 서로 부둥켜 안았다. 최종건은 직원들의 등을 두드리며 외쳤다.

"그것 보라고. 하면 안되는 게 없잖아. 원사 공장도 이렇게 지으면 되는 거야!"

다름 아닌 지역사회 공헌을 명분으로 직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한 작전이었다. 이에 따라 사업 확장에 머뭇거리던 직원들의 생각도 변했다. 

이른바 '초여름 밤의 물대기' 훈련이라 전해진 이같은 최종건 회장의 리더십은 둘째 아들인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으로까지 이어졌다.  

2006년 최신원 회장은 70억원의 사재를 기탁해 무주택자들을 위한 집짓기 봉사활동을 벌여 수원시 권선구에 60세대의 마을을 제공했다.  SK계열사 임직원 1800여명이 참가한 바 있던 사랑의 집짓기 사업은 SK그룹의 대표적인 사회공헌 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10여년 무주택자 집짓기 봉사활동으로 지난 2월 국제NGO 해비타트가 선정한 '더프리미어 골든해머'에 위촉된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오른쪽). 가운데 최종건 선대 회장의 영정이 보인다. <사진 제공=SK네트웍스>

이와 동시에 동생 최종현은 아세테이트 공장 건설을 위한 자금 확보와 경영 합리화에 매진했다. 처음에는 정부를 통한 공공 차관 확보를 시도했으나 난항을 겪었다.

이에 최종현은 방향을 틀어 일본의 거래회사를 이용한 ‘나홀로 외자 유치’ 전략을 선택했다. 

그는 일본 데이진사에 3년후 지불 조건으로 300만달러어치의 폴리에스테르 원사를 공급해달라고 요청했다. 일종의 ‘외상’ 거래였으나 데이진사 입장에서도 3년간 안정적인 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었던 거래였다. 

하지만 문제는 보증이었다. 최종현은 선경에 원사공장 설비를 공급키로 한 일본의 종합상사 이도추를 활용키로 했다.

당시 이도추 상사는 대하소설 '불모지대' 주인공 세지마류조(瀬島 龍三) 회장이 이끌고 있었다. 20세기 일본 경제 부흥을 이끈 전설의 상사맨으로서도 보증을 서주면 설비를 사드리겠다는 최종현의 획기적인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 공장을 지으면서 일본 회사에서 자본을 들여오고, 일본 회사에 지불 보증까지 맡긴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현물차관 방식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업계 관계자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격으로 선경은 공사일정을 9개월 앞당겨 1968년 12월 아세테이트 원사공장을 준공했다. 또 이듬해 2월 폴리에스테르공장(선경합섬·현 SK케미칼)을 완공했다.

두 공장의 건설로 한국의 원사 생산능력은 하루 35.5톤에서 48톤으로 뛰어 올랐으며, 선경직물은 이 가운데 26%를 생산하는 국내 1위 원사메이커로 등극했다.

"이제는 이것도 해야 되는데…."

울산에 직물공장 공사가 한창이던 1970년 무렵, 대한석유공사 울산공장(유공) 부근을 지나면서 최종건 회장은 또 이렇게 중얼거렸다. (계속)

1969년 2월 경기 수원 선경합섬 폴리에스테르공장 준공식에서 최종건 회장이 사업 설명을 하고 있다. 오른쪽 현황판에 'SK CHEMICAL'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제공=SK네트웍스>

 

'2017 기업가의 부활' 연재 순서

① 우리시대의 거인 아산 정주영 회장 
② 한국 경제부흥의 선구자 연암 구인회 
③ 세계를 품었던 경영인 SK 최종현 회장 (진행중)
④ 한국이 낳은 최고의 기업가 호암 이병철 
⑤ 나라사랑 온몸으로 실천한 청암 박태준
⑥ 경제 외교의 선구자 두산그룹 연강 박두병
⑦ 국가 기간산업에 평생을 바친 현암 김종희
⑧ 중공업을 일으킨 불굴의 개척자 운곡 정인영 
⑨ 20세기 문명 전환 이끈 김성수, 김연수 형제
⑩ 삼성과 효성을 일으킨 혁신가 만우 조홍제 
⑪ 한국 물류 운송의 신기원 일으킨 정석 조중훈
⑫ 교육·문화 보국의 선구자 교보 신용호 회장 
⑬ 한국 섬유혁명의 아버지 코오롱 이동찬 회장
⑭ 살아 있는 '김키스칸 신화' 대우 김우중 회장

※ 여러분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소비자 고발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메일 : webmaster@enewstoday.co.kr

카카오톡 : @이뉴스투데이

저작권자 © 이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