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한국의 전자 산업을 10년 가까이 홀로 이끌었던 것은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섬유만으로는 수출에 한계가 있음을 절감한 것은 1967년, 한국이 관세무역 일반협정(GATT)의 정회원으로 가입한 해였다.
후진국으로서 누려왔던 차별관세를 제거하고 개발도상국에 걸맞게 수출입 제한을 철폐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니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는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이었다.
박 대통령은 그해 재미 과학자인 김완희(金玩熙)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를 불러 전자 산업현장을 둘러보고 보고서를 제출할 것을 부탁했다.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시골 벌판에 벽돌로 대충 만든 공장에서 일제 라디오를 카피한 제품 등속을 만들고 있었다. 시멘트도 아닌 흙바닥에서 작업하는데, 부품이 바닥에 떨어지면 여공이 이를 집어 입으로 훅 한번 분 다음 옷자락에 닦아 끼워 넣는 식이었다."
금성사를 제외하면 이렇다할 업체가 전무했으며 전자 제품 수출이 전체의 2%에 불과했다.
김 교수는 전자공업이야말로 한국이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최적의 산업이라고 설명하며 5년만 육성하면 이 분야에서만 1억달러 수출 달성이 가능하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전자사업개발 5개년계획'을 수립했다. 금성사가 비약적인 사업 확장을 꾀한 것도 이 무렵이다.
TV방송은 KBS가 1961년 12월에 개국하면서 시작되었으나 수상기의 보급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금성사는 TV생산계획을 세우고 1966년 8월 진공관식 19인치 'VD-191' TV수상기 500대를 시장에 내놨다.
이렇게 탄생한 국내 최초의 TV는 상공부의 지시에 따라 대당 6만3510원으로 가격이 책정됐으나 수요가 밀려와 생산능력을 월 1500대로 늘려야 했다.
가전제품의 꽃인 냉장고, 에어컨 개발에도 착수했다. 1965년 GR-120를 비롯한 5종의 냉장고를 출시하는 동시에 GA-111, GA-112 등 에어컨을 개발해 시장을 석권해 나갔다. 1969년 5월 탄생한 WP-181 역시 한국 최초의 세탁기였다.
금성사 전자제품의 인기가 폭발하자 이병철 회장의 삼성전자공업을 비롯한 동남전기, 한국마벨, 삼양전기, 천우사, 동신화학, 대한전선 등 경쟁사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연암은 또 다른 도전을 선택했다.
플라스틱 원료는 폴리에틸렌이다. 폴리에틸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에틸렌이 있어야 한다. 에틸렌의 원료는 나프타이며 나프타는 정유공장에서 나온다. 당시 국내에서 석유 정제권(精製權)은 정부에 있었다.
당시 정유공장은 미국의 걸프오일이 건설한 울산정유공장이 유일했으나 본격적인 경제개발에 따라 제2, 제3의 정유공장이 필요한 시점이라 판단한 것이다.
정유 사업을 민간 기업이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으나 구평회, 한성갑, 서정귀에게 완벽한 계획서를 만들어 정부에 제출토록 지시했다.
연암이 정유공장에 진출하려 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뜬구름 잡는 소리"라며 놀려댔다. 정부 관리는 "말도 안 될 소리요, 동력사업은 정부가 한다는 걸 몰라서 그러시오?" 하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내놨다. 참고 기다렸지만, 정부로부터 응답이 없었다.
그러던 1966년 5월 7일, 정부는 신문에 '제2정유공장 실수요자 공모'를 냈다. 락희화학 직원들은 계획안 부결로 낙심했다. 하지만 연암은 "민간이 동력사업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낸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정신 바짝 차려 싸워 이겨라"며 독려했다.
경쟁에 참여한 업체는 동양석유, 동방석유, 삼남석유, 삼양석유, 한양석유공업 그리고 럭키의 호남정유 등 6개 업체였다.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진 끝에 럭키와 한양 양자 대결구도가 형성됐다. 많은 사람이 럭키의 승리를 점쳤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사고가 났다. 입찰 결과 발표가 임박한 9월 15일 삼성의 계열사 한국비료가 미쓰이물산에서 사카린을 밀수하다 적발된 것이었다.
미쓰이물산으로부터 정유 공장 플랜트 제공 약속을 받은 터라 '다 된 밥에 코 빠진‘ 일이었으나 연암은 동요하지 않고 미국의 칼텍스(Caltex)와의 합작투자를 성사시켰다.
마침내 1966년 11월 7일, 장기영 경제기획원 장관이 내외신 기자 앞에 서서 말했다. "정부는 전남 여수에 건설될 제2정유공장의 실수요자를 럭키화학계의 호남정유로 결정했으며 명년 초에 착공시키겠다."
국내 최초의 민간정유회사 호남정유(GS칼텍스의 전신)의 탄생과 동시에 락희화학공업사(LG화학의 전신)가 기초소재 산업으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민간이 정유 사업을 한다는 건 누구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때 연암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에너지·화학 시대를 열었다.
1969년 6월 3일 화려한 준공식과 함께 호남정유 여수공장 제1상압증류탑(No.1 CDU)에서 한국 경제 부흥을 알리는 일산 6만배럴의 불꽃이 타올랐다. (계속)
'2017 기업가의 부활' 연재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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