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1970년대 정부의 경제개발 계획 가운데 최대의 핵심사업은 조선소 건설이었다. 미국의 차관 제공 약속 파기를 딛고, 박태준(朴泰俊)이 어렵사리 완공한 연산(年産) 103만톤 규모의 포항제철소에서 생산되는 철을 대량으로 소비해줄 산업이 필요했다. 국영기업이었던 대한조선공사가 1만톤 크기의 배를 만들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흑자를 보지 못했다. 

◆ "조선소는 어디 있소?" "당신이 배를 사면 그걸로 짓겠소."

롬바통에게 보여준 500원 지폐

아산은 피하고 싶었다. "한번 해보시오.” 박정희는 담배를 주면서 자리를 떠나려는 그를 막았다. 수출해야 먹고 사는데, 경공업 중심의 노동집약 산업으로는 성장의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조선업 역시 차관이 문제였다.

피치 못해 중책을 맡은 아산은 돈을 빌리러 일본과 미국의 은행을 찾아다녔다. 상대방은 '너희는 후진국이라 그런 배를 만들 능력이 없다'는 반응들이었다.

어디에도 반기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도저히 못 하겠다고 말하려는데…. "도망가지 마시오! 절대로 해야 돼!" 경제 관료들의 한결같은 부정적 보고서에 포위된 박정희는 절박했다. 

1971년, 아산은 영국의 금융컨설팅회사 A&P 애플도어의 롬바통 회장을 찾아갔다.

"우리나라는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든 나라입니다. 영국보다도 300년 앞섭니다." 유명한 명언을 남기며 그의 주선으로 바클레이은행과 실무 협상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은행에서 쉽게 차관을 내줄 리 없었다. "배를 사줄 사람이 있으면 승인해주겠다"는 사실상의 거절이었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아산은 그 답변에도 '빙고!'로 반응했다. 그는 당장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의 처남인 거물 해운업자 조지 리바노스(George Livanos)를 찾아가 26만 톤급 선박 두 척의 주문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조선소는 어디에 있소?" "당신이 배를 사주면 그 돈으로 조선소를 짓겠소."

아산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선박왕은 알아 봤다. 꼭 조선소를 가지고 있어야 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육상 건조 중에 있는 현대중공업 제1호 선박 '아틀란틱 바론'호의 모습

◆ 백사장에 배(船)부터 지어 바다 문을 열다

아산은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밖에 보이지 않는 울산 미포만에서 두 척의 배를 짓기 시작한다. 배는 '만드는 게' 아니라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조선소 건설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었다. 

1974년, 아산의 계획대로 2년 뒤 유조선 1,2호가 완성됐다. 당초 50만톤이 목적이었던 선박 건조시설(도크)도 100만톤급으로 올려 완성됐고, 이듬해 현대울산조선소가 설립되었다.

도크가 완성되기도 전에 배를 띄운 것이다. 1974년 6월 8일 현대중공업은 리바노스 회장으로부터 수주한 유조선 1, 2호선의 명명식과 울산조선소 준공식을 동시에 열었다. 세계 조선업계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조선소가 그냥 되는가?' 훗날 정주영 회장은 돈이 아닌 목숨(命)을 건 도박이었다고 회상했다. (계속)

 

'2017 기업가의 부활' 연재 순서

① 우리시대의 거인 아산 정주영 회장 (진행중)
② 한국 경제부흥의 선구자 연암 구인회 
③ 세계를 품었던 경영인 SK 최종현 회장
④ 한국이 낳은 최고의 기업가 호암 이병철 
⑤ 나라사랑 온몸으로 실천한 청암 박태준
⑥ 경제 외교의 선구자 두산그룹 연강 박두병
⑦ 국가 기간산업에 평생을 바친 현암 김종희
⑧ 중공업을 일으킨 불굴의 개척자 운곡 정인영 
⑨ 20세기 문명 전환 이끈 김성수, 김연수 형제
⑩ 삼성과 효성을 일으킨 혁신가 만우 조홍제 
⑪ 한국 물류 운송의 신기원 일으킨 정석 조중훈
⑫ 교육·문화 보국의 선구자 교보 신용호 회장 
⑬ 한국 섬유혁명의 아버지 코오롱 이동찬 회장
⑭ 살아 있는 '김키스칸 신화' 대우 김우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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