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8월 20일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오른쪽)과 손길승 대한텔레콤 사장이 제2이동통신 사업권 포기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 제공=SK그룹>

[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한국 경제를 이만큼 성장시킨 원동력은 오너 경영을 펼친 민간기업들이다. 공공부문이 성장을 이끈 사례는 전무하며 대부분의 성공 신화는 민간에서 이뤄졌다. 

경영권 승계 시 적용되는 세율이 가산세 포함해 65%나 되는 한국에서는 2세 경영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많은 1세대 기업들 가운데 절반 정도가 무너졌다. 진로, 해태, 쌍용, 삼미 등이 대표적이다. 또 IMF 외환위기는 이를 가속화했다.

오너 경영 체제가 탁월한 이유는 위기 속에서 끝없는 선택과 도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도덕적 해이를 줄이기 위해 차등의결권 금지하자는 말도 있으나 주자성리학적 신권(臣權)을 내세우며 왕권을 제도적으로 무력화시킨 끝에 멸망을 자초한 조선의 길을 반복하자는 것과 다름이 없다.

경영 성과를 결정 짓는 요인은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주인의식이기 때문에 오너의 개입 없는 전문경영체제는 시기상조라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최종현 회장은 실패를 거듭하는 가운데서도 선경의 기강을 잡으며 사업 다각화 노력을 끊임없이 전개했다. 시행착오 끝에 유공을 인수한 선경그룹은 1980년대 후반 매출이 10배나 뛰어 오르며 명실상부한 에너지‧화학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회사의 가치는 키워가면 되잖아"…4배 가격에 한국이동통신 인수

1990년 7월, 체신부가 통신사업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 한국이동통신 이외의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위한 경쟁입찰을 실시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던 이 사업을 따내기 위해 포항제철, 코오롱, 동양, 쌍용, 동부그룹 등 쟁쟁한 기업들이 뛰어들었다. 

1984년 3월 29일 한국이동통신주식회사 현판식. 유영린 한국이동통신서비스 초대 사장과 당시 한국통신 이우재 사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이동통신은 1994년 1월 25일 선경그룹에 인수됐다.

하지만 최종현 회장은 1984년부터 정보통신산업을 성장 동력으로 설정하고 미주경영기획실에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설치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총점 8127점이라는 압도적 점수로 어렵지 않게 1차 관문을 통과했다. 

하지만 앞길은 순탄치 않았다. 2년 전 장남 태원이 미국 시카고대 재학 중 노태우 대통령의 딸 노소영씨를 만나 결혼하는 바람에 온갖 특혜 의혹과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당시 체신부는 "심사과정은 공정했다"며 일축했으나 의혹만 더 부채질할 뿐이었다. 또 최종결과를 발표하면서 세부 점수와 신청서 사본, 심사위원의 명단까지 모두 공개했지만 부정적 여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선경의 입장에서는 억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1992년 8월 말, 최 회장과 손길승 대한텔레콤 사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합법적인 절차와 공정한 평가를 거쳐 사업자로 선정되었으나 물의가 커 국민화합에 기여한다는 취지에서 사업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공식 선언, 다음 정권에서 객관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아 사업을 재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로부터 일 년 뒤 김영삼 정부는 한국이동통신에 대한 민영화 계획을 밝히면서 그 때까지도 결정되지 않은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전국경제인연합회로 넘겼다. 

마침내 찾아온 재도전의 기회였으나, 당시 전경련을 이끌고 있던 최종현 회장으로서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경이 사업권을 따내면 재계의 화목이 깨지고 또 특혜시비가 붙지 않을까…."

1994년 2월 23일, 사업자 선정을 위한 제6차 회장단 회의에서 최 회장은 다시 한 번 제2이동통신 사업권 포기를 선언했다. 대신 정부가 매각 의사를 밝힌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최 회장은 당장 주당 8만원에 불과하던 주식을 33만5000원에 사들였다. 왜 그렇게 비싼값을 부르냐며 어리둥절하는 임원들에게 최 회장은 단순 명료한 논리를 내세웠다. 

"우리가 얼마나 이동통신사업을 하기 위해 노력해왔나. 회사의 가치는 더욱 키워가면 되잖아." 

선경의 품에 안긴 한국이동통신은 SK텔레콤으로 다시 태어났다. 오너만이 할 수 있는 일로 두 번의 포기 끝에 이뤄낸 쾌거로 두 번째 공기업 인수였다. (계속)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 설치된 SK텔레콤 '5G어드벤처'. 1996년 CDMA 이동전화 상용서비스를 개시하며 세계적 위상을 강화해온 SK텔레콤은 최근 통신 인프라를 넘어 인공지능·자율주행·IoT를 활용한 5G 통신 기술 선점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진 제공=SK텔레콤>

 

'2017 기업가의 부활' 연재 순서

① 우리시대의 거인 아산 정주영 회장 
② 한국 경제부흥의 선구자 연암 구인회 
③ 세계를 품었던 경영인 SK 최종현 회장 (진행중)
④ 나라사랑 온몸으로 실천한 청암 박태준  
⑤ 한국이 낳은 최고의 기업가 호암 이병철
⑥ 경제 외교의 선구자 두산그룹 연강 박두병
⑦ 국가 기간산업에 평생을 바친 현암 김종희
⑧ 중공업을 일으킨 불굴의 개척자 운곡 정인영 
⑨ 20세기 문명 전환 이끈 김성수, 김연수 형제
⑩ 삼성과 효성을 일으킨 혁신가 만우 조홍제 
⑪ 한국 물류 운송의 신기원 일으킨 정석 조중훈
⑫ 교육·문화 보국의 선구자 교보 신용호 회장 
⑬ 한국 섬유혁명의 아버지 코오롱 이동찬 회장
⑭ 살아 있는 '김키스칸 신화' 대우 김우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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