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제1차 경제개발 계획과 맞물려 급속하게 성장한 현대건설은 과감하게 해외시장 개척에 나선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경부고속도로 착공 이전에 태국을 비롯한 외국과의 공사 계약을 따낸 점이다. 

1966년 태국에서 진행된 파타니-나라티와트 간 고속도로 공사는 길이 98㎞에 2차선의 다소 짧은 구간의 작업이었지만 열대우림 지역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수많은 난관이 있었다. 

공사 기간만 30개월이 걸렸고 당초 계약 금액을 훨씬 넘어서는 2억8800만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현대건설은 미국령 괌의 주택건설사업, 월남(越南)의 항만공사 등을 잇따라 수주할 수 있었다. 현대는 국내 제1의 건설사로 도약한다.

◆ 경부고속도로 건설 전 해외시장에서 경험 축적

'우리 국민 절반이 굶어 죽고 있다.' 

1965년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절박한 마음으로 에르하르트 당시 서독 총리에게 차관을 요청했다. 함보른 탄광 공회당에서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과 함께 "국가가 부족하고 내가 부족해 여러분이 먼 타지에까지 나와 고생이 많다"며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집권 5년 차의 대통령은 본에서 쾰른으로 이어지는 아우토반(Autobahn) 주위의 독일의 산업 현장을 목격하며 '수출과 중화학공업 육성만이 살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는 강단 이론가보다는 전선에서 직접 뛰는 기업가의 말을 중시했다. 하지만 고속도로 건설은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구상만 할 수밖에 없었다. 정주영은 고속도로에 대해 대통령이 자문을 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에 하나였다.

마침내 1968년 2월 1일, 국내에서 유일하게 고속도로 시공 경험이 있는 현대건설은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를 개시한다. 

폭 22.4m의 4차선 도로를, 산을 뚫고 강을 건너 닦아야 하는 공사였다. 현대는 총 길이 428㎞의 이 공사를 불과 2년 5개월 만에 완공했다. 이후 경부고속도로는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1일 생활권으로 묶었다. 주변에는 공장들이 생겨나며 대한민국 산업발전 혈맥의 역할을 했다.

미국의 통상 압력 거부…포니의 탄생

"자동차 독자개발을 포기하시오."

1977년 5월 조선호텔의 한 객실, 아산과 면담을 진행하던 리처드 스나이더 주한미국대사가 '포니'의 개발을 중단하라는 압력을 행사했다. 독자 개발을 막고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한국을 미국 자동차산업의 조립기지화 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특명전권대사의 부당한 요구에 아산의 거절은 명쾌했다.  

"한 나라의 국토를 인체에 비유한다면, 도로는 인체 내의 혈관과 같고 자동차는 혈관 속을 흐르는 피와 같습니다. 이 때문에 좋은 자동차를 싸게 공급하는 것은 인체 내에 좋은 피를 흐르게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자동차산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사명감 때문입니다."

경쟁사인 일본차 조립생산업체인 신진자동차공업사도 한국 정부 인맥을 동원해 현대의 자동차 생산을 방해하고 있었다.

국내에서 연간 판매되는 자동차 수가 1000대도 채 되지 않던 1970년대, 현대의 자금력으로 5만대의 자동차 생산기지를 만든다는 것은 지극히 무모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산은 수출로 돈을 벌면 된다며 밀어붙였다. 

스나이더 대사 면담 당시 통역을 맡았던 박정웅(朴正雄) 전국경제인연합회 전 상무는 "통역이 끝났는데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스나이더의 표정은 참담하기까지 하였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탄생한 국산 자동차 1호 '포니(pony)'는 출고되자마자 국내 시장을 석권했다. 조랑말은 중미와 캐나다까지 달렸다. 한국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아시아 시장 진출을 노리던 미국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아산의 예언대로 자동차산업은 전자공업, 통신기술, 신소재, 기계공업에서 금융과 보험 산업에까지 이르는 연관효과를 가진 우리 경제의 주춧돌이 되었다. 

빠른 기술의 변화와 진보는 플랫폼(platform) 경제를 탄생시킨다. 인공지능·빅데이터·loT·클라우드 등 지능정보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형태의 비지니스가 창출된다. 4차 혁명에서는 이러한 무대를 긱(gig)이라 하여, '긱 경제(gig economy)'라고도 부른다. 정주영 회장의 선견지명 덕에 국내 자동차 시장은 지난해 423만대의 생산량을 기록했다. 기업가만이 이룰 수 있는 경제적 진보다. (계속) 

 

'2017 기업가의 부활' 연재 순서

① 우리시대의 거인 아산 정주영 회장 (진행중)
② 한국 경제부흥의 선구자 연암 구인회 
③ 세계를 품었던 경영인 SK 최종현 회장
④ 한국이 낳은 최고의 기업가 호암 이병철 
⑤ 나라사랑 온몸으로 실천한 청암 박태준
⑥ 경제 외교의 선구자 두산그룹 연강 박두병
⑦ 국가 기간산업에 평생을 바친 현암 김종희
⑧ 중공업을 일으킨 불굴의 개척자 운곡 정인영 
⑨ 20세기 문명 전환 이끈 김성수, 김연수 형제
⑩ 삼성과 효성을 일으킨 혁신가 만우 조홍제 
⑪ 한국 물류 운송의 신기원 일으킨 정석 조중훈
⑫ 교육·문화 보국의 선구자 교보 신용호 회장 
⑬ 한국 섬유혁명의 아버지 코오롱 이동찬 회장
⑭ 살아 있는 '김키스칸 신화' 대우 김우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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