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지난해 9급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54 대 1을 기록했다. 선발 인원을 전년 대비 37%나 늘렸는데도 22만여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역대 최다였다. 

2016년 한국경제연구원이 기업가정신의 변화 추이를 조사한 결과, 1970년대 평균 131.7이었던 지수가 2013년에 이르러 66.6으로 반토막이 났다. 미지의 이윤을 찾아 기업하려는 이들은 드물고,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불확실성을 짊어지는 것(uncertainty bear)을 회피하는 분위기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해 있어서다. 

새로운 사업 도전에 대한 만류가 있을 때, 정주영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무슨 일을 시작하든 '된다는 확신 90%'와 '반드시 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10%' 외에 안 될 수도 있다는 불안은 단 1%도 갖지 않는다."

1947년 현대토건사 설립 당시 정주영과 직원들

100%의 자기 확신과 0%의 불안

"형님, 공산군이 미아리 고개로 쳐들어왔어요."

바로 아랫 동생 정인영(이후 한라그룹 창업주)이 다급한 목소리로 찾아왔다. 현대건설 설립 5개월 만에 6·25전쟁이 터졌다. 불안해하는 집안 식구들을 한 곳에 모이도록 하고, 인영과 함께 피란행을 결정했다. 사업가와 동아일보 외신부 기자를 인민군이 가만히 둘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끊어진 한강다리를 건너 부산까지 밀려 내려왔으나 무일푼 신세가 된 두 형제, 아산은 시계라도 팔아 밥 한끼를 해결해 보려고 했다. 

"형님, 그냥 두십시오. 제가 통역으로 취직해 어떻게든 끼니 문제를 해결해 볼게요." 통역이 귀한 시절, 능통한 영어 실력을 가진 인영은 공병대를 선택했다.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미군을 위한 숙소가 절실한 때였다. 

인영의 주선으로 미군 주둔지 건설 공사 계약을 따낸 아산은 죽을 각오로 빠른 속도와 정확성을 추구했다. 안전도 검사에서 까다롭기 유명한 미군으로부터 신뢰를 얻어내고 발주 공사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따냈다. 서울에서는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머물 숙소를 짓기도 했다. 

1950년 10월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미8군사령부 본부막사 설치 공사로부터 시작해 전국에 산재한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공사이익은 예산의 5배에 이를 정도로 대박, 대금은 당연히 달러로 받았다. 

◆ 악몽과 같았던 복구 공사, 적자 감수해 신용 얻다

1953년 7월 휴전 협정이 체결된 이듬해, 아산은 한국조폐공사가 발주한 고령교(高靈橋) 복구공사에서 뜻하지 않은 시련을 맞는다. 고령교는 경북 고령과 대구를 잇는 300m 길이의 다리로 전후 복구공사 중 최대 규모였다. 그 긴 다리를 2년 안에 다시 놓아야 했는데, 강바닥에 깊숙하게 박힌 거대한 교각의 상판을 들어 올리는 데 20톤짜리 크레인 한 대로는 어림이 없었다."

1950년대 경북 고령군 성산면 고령교의 모습

게다가 낙동강은 홍수와 수심 변화가 심했다. 전쟁 직후 인플레이션으로 자재비가 마구 치솟았다. 착공계약 당시 700환하던 유가는 몇 달 만에 2300환으로 세 배 이상 뛰었다. 40환 하던 쌀 한가마니가 공사 끝날 무렵 2년 사이 4000환까지 오를 정도였다. 공사원가를 산정하면서 인플레이션을 반영하지 않았던 것이 실책이었다. 

"소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으니 인플레이션도 모르는 거 아니냐"는 주위의 조롱도 받았다. 하지만 그 당시 인플레이션은 유엔군 경비지출로 인한 통화팽창이 주된 원인이었다.  

이런 악재 속에도 아산은 묵묵하게 공사를 진행시켜 완공했다. "이것은 시련이지 실패가 아니다.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 그것은 결코 실패가 아니다. 경험이 부족하면 아이디어를 내고, 능력이 부족하면 밤이라도 새워라."

비록 계약기한을 2개월 넘기고, 공사 과정에서 7천만 원의 채무가 발생했지만 현대건설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성과가 있었다. 이 공사에서 얻은 신용으로 1957년 정부가 발주한 한강대교 복구공사를 따낼 수 있었다. 적자가 나더라도 최선을 다해 일을 마무리 짓는 아산의 신용을 정부 관리들이 높게 산 것이다. 이 때 발생한 빚을 갚는 데만 꼬박 20년이 걸렸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이끄는 대우세계경영연구회 Global YBM 수료식

4차 혁명의 물결과 함께 새로운 비즈니스가 확대됨에 따라 현재의 일자리가 큰 폭으로 증감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6년 일본 경제산업성이 발표한 ‘신사업구조비전’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겸업, 파견 등 다양한 근무형태가 가능한 노동법제를 추진하고 있다. 산업 구조 전환에 밎춰 직장인들의 개인적 선호에 따라 고용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기업이 융합·혁신을 추진할 때 현행 규제를 일시적으로 중지함으로써 아이들이 모래 위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의 개념인 '레귤러터리 샌드박스(RS:regulatory sandboxRS)' 제도도 올해부터 마련된다.

반면 한국의 기업가정신 구현 노력은 민간에서 시작됐다. 2012년부터 김우중 회장이 이끄는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선배들의 산업화 노하우를 전수해 신흥개발국을 청년들의 미래 생산기지로 만들고자 태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지에 433명의 젊은 기업가를 배출해오고 있다. 기업가정신 확산을 위해 국제기업가정신주간(GEW) 등 각종 대회를 추진하고 있는 청년기업가정신재단(이사장 남민우)의 활동도 주목된다.

기업가든 직장인이든 업무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원칙과 신뢰다. 정주영 회장은 실패를 겪어도 신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줬다. '할 수 있다'는 긍정의 마음 가짐은 기업가에 있어 강력한 힘이다. 용기 있는 기업가는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사회란 없음’을 스스로 안다. 공동체를 향해 '실패를 용납해 달라고' 외칠 것만이 아니다. (계속)

 

<2017 기업가의 부활 연재 순서>

① 우리시대의 거인 아산 정주영 회장 (진행중)
② 한국 경제부흥의 선구자 연암 구인회 
③ 세계를 품었던 경영인 SK 최종현 회장
④ 한국이 낳은 최고의 기업가 호암 이병철 
⑤ 나라사랑 온몸으로 실천한 청암 박태준
⑥ 경제 외교의 선구자 두산그룹 연강 박두병
⑦ 국가 기간산업에 평생을 바친 현암 김종희
⑧ 중공업을 일으킨 불굴의 개척자 운곡 정인영 
⑨ 20세기 문명 전환 이끈 김성수, 김연수 형제
⑩ 삼성과 효성을 일으킨 혁신가 만우 조홍제 
⑪ 한국 물류 운송의 신기원 일으킨 정석 조중훈
⑫ 교육·문화 보국의 선구자 교보 신용호 회장 
⑬ 한국 섬유혁명의 아버지 코오롱 이동찬 회장
⑭ 살아 있는 '김키스칸 신화' 대우 김우중 회장

※ 여러분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소비자 고발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메일 : webmaster@enewstoday.co.kr

카카오톡 : @이뉴스투데이

저작권자 © 이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