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승준 기자] “(전공의 파업으로) 가족이 볼모로 잡혀도 그저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너무나 무섭습니다. 우리 가족의 목숨을 지켜줄 것이라 믿은 의사들이 그 생명을 쥐고 흔들 줄은 몰랐습니다.”
수도권 이른바 ‘빅5’ 병원 전공의들이 20일 오전 6시부로 의료행위 중단을 표명한 가운데 세브란스병원에서 마주친 한 어린이 환자의 보호자 A씨(40대)는 이 같이 말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전공의가 가장 먼저 단체행동에 돌입한 곳으로 알려졌다. 전공의 비율도 35%에 달한다.
이뉴스투데이가 20일 방문한 세브란스병원은 아침부터 환자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곳에서는 평소 하루에 약 200건, 주 1600여건에 달하는 수술이 이뤄진다. 그러나 상당수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제출한 뒤 의료현장을 떠난 상태다. 수술은 반토막 수준으로 줄기에 이르렀다.
병원 내부 직원들은 전공의 파업과 관련해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내부 분위기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한 직원은 “파업으로 인해 어떤 영향이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해들은 게 없다”며 “자세한 답을 하기엔 곤란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환자들 사이에서는 파업에 따른 의료 공백의 두려움이 퍼져가고 있었다. 노모 환자와 함께 병원을 찾은 B씨는 “어머니와 함께 종종 병원에 들르는데, 평소보다 대기시간이 길어진 게 느껴진다”면서 “노인들에게는 기다리는 시간도 큰 체력 소모가 된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1시간여 뒤 병원 내에서 다시 마주친 B씨는 기자에게 “어머니께서 지쳐하시는 게 보여 그냥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보기로 결정했다”면서도 “이왕이면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보려고 했는데 줄줄이 파업을 한다니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고 한숨 섞인 목소리를 냈다.
정부가 이달 들어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하기로 결정한 이후 의사 단체들은 강경한 태도로 반대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러나 여론은 이미 증원 쪽으로 기울었다.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 국민의 76%는 증원에 긍정적이라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여야도 한목소리로 증원을 주장하고 있다.
내원객들에게도 의대 증원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다. 이날 40대 C씨는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건 의사들의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처음엔 의사들의 입장도 이해해보려 했지만 환자들을 인질로 삼은 순간 선을 넘었다”고 지적했다.
60대 D씨도 의대 증원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뉴스를 통해 최근 의대 증원 소식을 쭉 접했지만 도무지 의사 입장에 공감할 수 없었다”면서 “전 세계적으로도 이런 경우가 없었다던데, 이와 비슷한 사태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협의 발언에 반발하는 이도 있었다. 30대 E씨는 “오늘 병원에 난리가 난 걸 보면서 의사 머릿수를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확실해졌다”면서 “만약 파업으로 수술이 연기돼 우리 가족에게 지장이 생긴다면 나야 말로 ‘감당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게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런 분위기에도 의사들의 ‘의업 중단’ 사태는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 19일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생명을 볼모로 잡은 주체가 의사인지 정부인지 국민들이 판단해 달라”면서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막아야 의사들이 포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부 역시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전국 221개 전체수련병원 전공의를 대상으로 의료현장을 떠나지 말라는 취지의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했다. 유사 시 공중보건의·군의관을 배치해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20일 6시 이후 사직의사를 밝힌 전공의는 이미 6000명을 넘어섰다. 이는 전국 총 1만3000여명의 전공의 중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다. 병원을 빠져나간 전공의들은 의협 회관에서 긴급 임시대의원총회를 연다. 이들은 본격적으로 ‘병원 밖 행동’을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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