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승준 기자] “내가 의사라면 이런 식으론 안 했을 텐데.”

의대 정원 증원 논란을 대하는 의사 단체의 행보를 취재하면서 떠오른 첫 번째 생각이다. 말에는 화자의 평소 태도가 녹아 있다. 그런데 이들이 사용하는 워딩은 너무나 권위적이면서 고압적이다. 평소 국민들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여실히 드러낸다.

일반적인 집단이라면 “의사에 대한 정면도전”, “감당하기 어려운 행동”, “급하면 외국인 의사를 수입하든가 하라” 등의 수위 높은 발언을 쏟아낼 엄두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국민 여론을 등진 채 정치권에서도 여야가 합쳐 자신들과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말이다.

취재 결과 이처럼 빳빳한 의사들의 고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부터 의사 단체들은 의사를 제외한 다른 보건의료 직역들을 배척해 왔다. 한의사·치과의사·약사뿐 아니라 병원에서 근무시간을 함께하는 간호사·물리치료사와도 등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간의 업보가 쌓인 것일까. 이번 의대 정원 이슈에서 의사의 편을 들어주는 보건의료 직역 단체는 한 곳도 없었다. 이번 논란으로 전공의가 집단사직에 나서자 타 보건의료 직역 단체들은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입장문을 내고 의사들과 입장을 달리함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내로남불’ 논란에도 휩싸였다. 지난해 간호사들이 ‘간호법 제정’을 외치며 파업에 나섰을 때 의사들은 ‘환자 고통’을 운운하며 간호사들을 비판했다. 그러나 정작 이번에는 의사들이 ‘의대 정원’을 두고 집단사직에 돌입하면서 빈축을 사게 된 것이다.

의사들이 이런 태도를 고수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그 배경은 ‘전적’에 있었다. 그동안 의대 정원 논란에서 늘 이겨 왔으니 이번에도 이길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게 됐으리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너희들은 우릴 이길 수 없어”와 같은 오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의사들이 진정 “국민 건강을 위한다”는 말마따나 의대 정원 증원을 저지하고 싶었더라면 이런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됐다. 자신들의 입장과 고충을 국민들에게 와닿게 할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조선중앙TV에서나 나올 법한 표현들을 써가며 ‘훈계’하는 행위는 ‘악수’였다.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약관에는 동의했지만 그 약관을 잘 지키겠다는 데는 동의한 적 없다니까”라는 문구가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최근 의사들의 태도가 이와 다르지 않다. 지금의 행보는 ‘약관’에 해당하는 ‘히토크라테스 선서’를 가슴에 품은 이들처럼 보이지 않는다.

결국 숙일 줄 모르는 고개와 달리 여론은 갈수록 의사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미 국민 4분의 3 이상이 의대 정원 증원에 긍정적이라는 조사도 나왔다. 또 전공의 사직에 따른 의료 공백도 연일 보도되면서 사실상 의사는 의사를 제외한 모두와 대치한 국면이 됐다.

게임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약관에 동의해야 하는 것처럼 의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외치게 돼 있다. 이렇듯 의사들은 기본으로 돌아가 진짜 ‘국민 건강’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래도 지금의 선택이 맞는다고 판단된다면 이젠 ‘위협’이 아닌 ‘설득’을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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