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한 가운데 2월 19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 의사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른바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한 가운데 2월 19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 의사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이승준 기자] 의사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하며 집단사직에 돌입한 이후 이들의 집단행동 강도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론의 향방이 부정적으로 흘러가면서 의사들의 입지는 날이 갈수록 좁아지는 ‘아이러니’한 양상이 이어지는 분위기다.

11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의사들의 의대 증원 반대 움직임에 따른 집단사직은 전공의에서 의대 교수로 확산되고 있다. 전국 각 의대는 최근 정원 신청에서 지난해 말 수요 조사 당시보다 더욱 큰 규모의 증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문제 삼아 이번에는 의대 교수들까지 삭발, 사직, 겸직해제 등으로 단체행동에 나설 조짐이 포착됐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가 이달 4일까지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 신청을 받은 결과, 의대가 있는 40개 대학이 모두 3401명의 증원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증원 목표인 2000명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이에 강원대 소속 교수 10여명은 3일 의대 건물 앞에서 일방적인 증원 방침에 반대한다며 삭발식을 열고 항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충북대병원 소속의 한 심장내과 교수는 최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복지부의 의사 면허 정지 발표와 현재 정원의 5.1배를 적어낸 (충북대) 총장의 의견을 듣자니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다시 들어올 길이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근거도 없는 무분별한 2000명 증원은 분명 의료시스템의 붕괴를 가속화할 것”이라면서 사직서 제출을 알렸다.

서울대병원 교수 일부는 3일 열린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긴급 교수간담회에서 김영태 서울대병원장과 김정은 서울의대 학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사퇴하지 않을 경우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교수 77.5%가 겸직해제 또는 사직서 제출에 찬성했다는 내용의 설문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여론은 갈수록 의사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추세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하며 2월 말부터 일일 단위로 비상대책위원회 브리핑을 진행해 왔다. 이는 보건복지부 정례브리핑 대응 차원으로 풀이된다. 초기에는 기자회견장이 취재진으로 가득 찼으나 3월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빈자리가 눈에 띄게 늘었다. 질문도 함께 줄었다.

여전히 타 보건의료계 직역의 지지도 나타나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간호사들은 전면에 나서 의사들과 등지는 입장을 표명했다. 대한간호협회는 “우리 간호사들은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난 후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런 일을 디딤돌 삼아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이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정부의 의료개혁 정책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지표상으로도 국민들이 의사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와 연합뉴스TV의 ‘의대 증원 찬반 여론조사’ 결과, 의대 증원 찬성 비율은 84%였다. 특히 ‘2000명은 늘려야 한다’는 답변은 절반에 가까운 48%에 달했다.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조치’ 항목에서도 ‘법에 따라 엄단해야 한다’는 답변이 43%를 차지했다.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은 21%였다.

집단행동을 감행한 의사들 내부에서도 분열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의료계 일각에서 현장에 남아 있는 전공의들을 색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의사 커뮤니티에서는 현장에 복귀한 전공의들의 실명과 출신 학교를 온라인에 공개하고, 여러 명이 모인 단체대화방에서 공공연히 따돌리는 등의 사태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의협의 ‘블랙리스트’ 논란까지 터지며 의사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따가워졌다. 최근 자신을 ‘의협 관계자’라고 소개한 한 네티즌은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의협 내부 문건으로 추정되는 문서를 게시했다. 작성자에 따르면 해당 문건에는 의협이 집단행동에 불참한 의사들을 압박하기 위해 이들의 명단을 작성·유포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온라인상에 공개된 문건의 사실관계를 확인 중에 있다. 경찰은 문건이 실제 의협 측이 작성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고, 사실로 드러날 경우 수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의협은 의혹에 대해 부인했다.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허위 문서를 만들고 배포해 의사들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을 경찰에 고발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의사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정은 서울대 의과대학장은 7일 의대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학생들과 전공의들이 학교와 병원을 떠나는 상황에서 이들의 보호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제한 뒤 “다만 서울의대와 서울대병원의 메시지는 ‘대한민국 국민의 건강을 책임진다’여야 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누구나 중재자가 되기 힘든 시점에서 중재자는 결국 국민이어야 한다”며 “국민들이 중재자 역할을 해주실 때까지 교수님들께서 중심을 잡아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그 누구도 실효성 있는 대책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교수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대신 직접 국민들과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서울 ‘빅5’ 병원에서도 연대 조짐이 보여 환자들의 근심은 더욱 깊어진다. 서울의대·연세의대·울산의대·가톨릭의대·성균관의대 5곳의 교수협의회에서 이 같은 움직임이 나타났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의료 공백 속에서 우리 중증질환자들은 긴장과 고통으로 피가 마르고 잠을 못 이루고 있다”면서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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