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부산대병원 간호부에 하달된 전공의 파업 관련 지시사항. [사진=제보자]
양산부산대병원 간호부에 하달된 전공의 파업 관련 지시사항. [사진=제보자]

[이뉴스투데이 이승준 기자] 전공의 사직으로 의료 공백이 가속화되면서 간호사들에게 의사들의 업무가 불법으로 떠넘겨진 정황이 포착됐다. 그런 가운데 일부 전공의들이 전공의 업무를 맡게 된 간호사들을 고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자 ‘이중잣대’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다.

27일 한 보건의료계 관계자의 제보에 따르면 지난 19일 양산부산대병원 간호부에는 ‘전공의(인턴 포함) 파업 관련 간호부 지시사항’이 하달됐다. 해당 업무지시에는 △입원환자 등 인턴이나 전공의가 받던 조영제 동의서 작성 △전공의가 맡았던 처방 업무 중 일부 지원 △본인 진료과 CPR 시 전공의 대신 지원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문제는 이 같이 간호사에게 전공의 업무를 ‘불법으로’ 떠넘기는 행위가 해당 병원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란 점이다. 실제로 대한간호협회 ‘현장간호사 애로사항 신고센터’에는 22일 오후 9시 기준으로 154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 대다수가 일반 간호사였으며, 진료보조(PA) 간호사뿐 아니라 이들도 전공의 업무에 동원되고 있다는 게 협회 측 설명이다.

병원에선 PA 간호사들에게 항암 환자의 케모포트(심장 근처 큰 정맥에 삽입하는 관) 주사의 삽입·제거, 컴퓨터단층촬영(CT) 조영제 검사,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수혈, 교수 ID를 사용한 약물 처방까지 하라는 업무지침에 대한 신고가 잇따랐다. 케모포트 삽입은 국소 마취와 피부 절개가 필요한 의료행위로, 간호사가 아닌 의사가 해야 한다. 약물 처방도 마찬가지다.

이러자 의사들의 ‘내로남불’에 대한 지적이 이어진다. 지난해 4월 간호사 파업이 한창이던 당시 부산대병원 교수협의회는 ‘부산대학교병원의 동료분들께’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원내 곳곳에 붙이며 간호사들에게 업무 복귀를 요청했다. 당시 이들은 “많은 환자들이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고통받는다”면서 “하루빨리 제자리로 돌아오길 당부한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청한 한 간호사는 “지난해 부산대병원 소속 간호사들이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목이 터져라 외칠 때는 우리(간호사)들을 환자 목숨을 인질 삼은 ‘악인’으로 취급하더니 정작 자신들은 의대 정원을 놓고 더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게 얼토당토않다”면서 “의사들이 정말 환자들을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들이야 말로 그때 했던 말을 지켜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전공의 사직에 의한 의료 공백은 부산대병원 내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부산대병원은 20일 오전 9시 기준 전공의 236명 가운데 216명이 사직서를 내고 대부분 출근하지 않았다. 양산부산대병원에서도 전공의 160여명 중 120여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병원은 전공의 대신 교수들이 중환자실과 응급실 근무를 서는 비상진료태세에 돌입했다.

그런 가운데 일부 전공의들이 간호사들의 ‘불법의료 행위’를 고발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돼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최훈화 간협 정책국 전문위원은 지난 23일 간협 기자회견에서 “2020년에 간호사들이 불법의료 행위로 고발당한 것처럼 이번에도 전공의가 간호사 고발을 준비 중이라 한다”며 “간호사 잘못이 아닌데 고발을 당한다면 명백히 맞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전문위원은 또 “간호사들은 2020년에도 눈앞에 있는 환자를 방치할 수 없단 생각으로 자리를 지켰다”면서도 “업무 위임 관련 보호체계가 없어 책임만 오롯이 졌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긴급상황에만 행정명령 등으로 보호하고 원점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 이 기회를 계기로 간호사가 더 이상 불안하지 않도록 상시보호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제 PA 간호사 ‘땜질’마저 한계에 봉착했다는 전망이 나오며 우려가 심화되는 분위기다. 2022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의료현장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내 27개 사립대병원 PA는 총 2107명, 전국엔 총 1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즉, 이번 전공의 사직에 따라 법적 문제를 겪을 수 있는 간호사가 1만명에 달하는 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정부가 PA의 법적 지위를 인정해 의료 공백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PA는 자격증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지만 이들의 의사보조는 현장에서 이미 이뤄지고 있다”며 “PA가 의료행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PA 자격증제도’ 등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제도가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자 보건복지부는 ‘업무 범위 위임’ 방침을 내세우며 진화에 나섰다. 지난 26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27일부터 전국 종합·수련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를 대상으로 ‘진료 지원 인력 시범사업’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로써 간호사가 수행할 수 있는 업무 범위는 의료기관의 장이 내부위원회 또는 간호부서장과 협의해 결정할 수 있게 됐다.

해당 정책에 대해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의료 공백을 감당하고 있는 PA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시범사업을 시행키로 했다”면서 “의료행위가 다양하다 보니 PA가 할 수 있는 일인지 모호한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능한 진료 지원 업무 범위를 현장에서 명확히 할 수 있도록 진료 지원 인력 시범사업 지침을 금일부로 안내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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