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왼쪽부터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주주행동주의 위력에 기업 경영권이 흔들리고 있다. 이른바 '주주 제일주의'를 앞세운 일반투자자들의 집단 공세에 재벌3세의 지배권이 공격받는 모습이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단이 LG화학의 배터리 부분 물적분할 안건에 결국 반대하면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지배권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2018년 현대차그룹·현대모비스 분할·합병이 무산됐던 때와 상황 전개가 유사하다.

국민연금은 당초 LG화학 물적분할에 찬성하는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등 행동주의 세력이 지적한 '지주사 디스카운트' 문제에 무릎을 꿇었다. 국민연금은 "지분가치 희석 가능성 등 국민연금의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있었다"면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지주사 디스카운트'는 경영권을 가진 '지배주주'와 주식의 주인인 '일반주주'의 역할이 구분되면서 나타나는 구조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평소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분사(分社) 등 지배구조 이슈에서 주주행동주의의 새로운 무기로 떠올랐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당시 수석부회장)의 경영권 강화를 위한 지난 2018년 5월 현대모비스·글로비스 분할합병 때도 이 같은 논리가 작용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를 합병해 '지배회사'로 두는 개편을 단행하려했다.

그러나 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ISS·글라스루이스를 필두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 국내 주요 의결권자문사와 기관투자자들까지 분할·합병 비율에 반기를 들면서 주주총회에 계획했던 안건을 올리지도 못하고 무산됐다.

당시 주주행동주의 세력들은 "현대글로비스의 A/S 부품·모듈 사업의 성장 가치는 제한적인 반면, 현대모비스는 영업이익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알짜 회사인데 '수익성'이 아닌 '순자산가치만'을 기준으로 지나치게 저평가했다는 점"을 반대 이유로 들었다. 

LG화학이 '사업지배회사'로서 배터리 부문 신설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을 100% 자회사로 거느리기 위한 이번 지배구조 개편에서도 '지주사 디스카운트'가 문제로 떠올랐다. 주식 증권 소유자에 불과한 일반투자자들에게도 지배권이 있다는 착각이 발단이 됐다. 투자자들은 "나는 배터리에 투자했는데 왜 '인적분할'이 아닌 '물적분할'로 간접지배하는 처지가 돼야 하냐"며 불만을 제기했다.

주주들의 행동에 그룹 수장들도 반응하고 나섰다. 2년 전 정의선 회장은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여러 의견을 전향적으로 수렴해 사업경쟁력과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언급한 뒤 올해 하반기 재도전을 모색중이다. 구광모 회장측도 "국민연금의 반대는 매우 아쉽다. 주주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면서 진화에 나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겐 반대의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현재의 지배구조에서 '삼성생명'이 중간지주사로서의 연결고리가 약해지면서 애물단지가 됐다. 특히 고 이건희 회장이 남긴 지분 승계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삼성물산이 삼성전자를 직접 지배하는 방식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지주회사 성격의 삼성물산 시가총액은 전일 전일 종가 기준 21조3100원이다. 반면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SDS 등 자회사 총지분가치는 42조원으로 두배에 가깝다. 이는 삼성물산에 50% 상당의 지주사 디스카운트가 존재한다는 뜻인데, 지배구조를 '삼성물산→삼성전자'로 단순화하면 수치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이건희 회장이 남긴 삼성생명 지분 20.76%를 물려받는다면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19.3%)을 통한 간접지배 방식이 불필요해질 수도 있다. 또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에도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삼성화재로부터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 조정이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모회사'와 '자회사' 일반주주 간의 갈등이 우려된다.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은 유지되지만, 대량 매도 물량으로 나온 삼성전자 주가의 폭락 가능성도 상존한다.

한편 LG화학이 배터리 부문을 분할하기 위해선 오는 30일 임시주총에서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찬성이 요구된다. 지난 8월말 기준 ㈜LG는 33.34%의 지분을 보유중인데 국민연금(10.51%)이 반대표를 던지면서 나머지 일반주주(56.33%)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이 중 외국인(37%)과 기관투자자(10~12%)가 물적분할에 찬성하면 안건이 통과될 수 있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학교 교수는 저서 '기업이란 무엇인가'에서 " 대주주·경영진과 일반주주의 차이는 권리에 따르는 의무가 있느냐 없느냐 여부"라며 "정치민주주의 원리를 기업에 적용한 주주민주주의엔 수많은 왜곡과 논리 비약이 있다. 기업의 주인은 기업 자신임을 분명히 알 필요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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