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기업에서 감사위원회는 견제·균형을 통해 기업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는 감독기구다. 이같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감사위원회가 어느 순간 애물단지로 전락한다면?

우리는 흔히 오랜시간 동안 속을 썩혀온 물건이나 짐을 가리켜 '애물'이라 한다. 그런데 이제 막 태어났으면서도 벌써부터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 있다. 바로 지난해 상법 개정으로 주총을 통해 분리 선출이 의무화된 감사위원 자리다. 

3월 정기주총이 막을 올린 가운데 코스피 상장사중 한진, 금호석유화학, 한국앤컴퍼니, 사조그룹 등이 주주제안을 통해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는 표 대결을 벌이는 첫무대가 됐다.

먼저 금호석유화학에선 박찬구 회장의 조카이자 개인 최대주주(10%)인 박철완 상무가 포문을 열었다. 박 상무는 개인 홈페이지를 열고 주주들과 소통에 나섰지만 속내는 사외이사를 자기 사람으로 교체하겠다는 것이다.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여전히 심각하다. KDB산업은행이 한진칼 지분 10.66%를 보유한 3대주주가 되면서 조원태 회장의 우호 지분이 47.33%까지 늘어난 것으로 평가되지만, 제3자 연합(조현아 전 부사장+반도건설+KCGI, 40.4%)이 어떤 카드를 꺼내느냐에 따라 앞날은 안개속에 있다.

한국앤컴퍼니 상황도 마찬가지다. 조양래 회장의 차남 조현범 사장과의 경영권 승계 경쟁에서 밀려난 조현식 부회장이 주주제안을 명분으로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를 감사위원으로 제안하면서 경영권 분쟁의 단초가 마련됐다.

문제의 이한상 교수는 지난해 강성부 KCGI 대표가 한진칼 사외이사 후보를 제안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조현식 대표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지분 구조상) 분쟁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지배주주 입장에선 회사에 도움될 인재가 아닌 '애물단지'로 여겨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이런 의미에서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공자가 강조해온 지인지감(知人之鑑)에도 취약하다.

감사위원 1인 분리 선출은 주주제안이 없는 기업들에겐 '애물단지'를 넘어 '민폐'로 인식되고 있다. 기업 관련 법제가 대대적으로 개정되면서 △주총 1주일 전 사업보고서 공시 △여성이사 선임 의무화 등 준비사안만 잔뜩 늘었다. '감사위원 1인 분리 선출'을 놓고 더 번거롭게 된것이다. 본 기자가 바라보기에도 기업입장에선 귀찮아진 절차에 따른 부결 리스크만 늘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지난해 주총에서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안건이 부결된 상장사만 340곳이다. 이런 가운데 3월 주총을 전후로 352인의 감사위원이 임기만료와 중도 퇴임 등 교체 예정이다. 특히 정족수 부족으로 부결된 안건들 중 감사위원 선임 안건이 전체의 92.6%를 차지한 것을 감안하면, 감사위원 분리 선출 의무화에 따른 폐해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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