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주주행동주의 수모의 나날이다. KB금융그룹 이사회 진입 실패에 이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반대에 나섰지만 도 넘은 외부세력의 개입이란 비판에 직면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KDB산업은행이 한진칼에 8000억원 투자자금을 지원하고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하는 가운데,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주주행동파 간에 전면전이 벌어졌다.
이번 사태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확보한 한진칼 우호지분(41.04%)이 행동주의 펀드를 자처하는 강성부 연합(KCGI·반도그룹·조현아)의 지분(47%)보다 6%포인트 밀리면서 예견된 것이었다.
첫 포성은 강성부 KCGI 대표가 울렸다. 그는 유상증자 참여 여부를 기존주주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산업은행을 제3자 배정으로 끼워넣었다면서 법원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러나 상황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이 기업지배자가 되겠다는 속내가 담겨져 있다.
주주행동파는 산업은행이 조원태 회장과 손을 잡을 경우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이동걸 회장을 겨냥해 '조원태의 백기사', '자본시장의 추미애'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 동시에 제3자 유상증자시 한진칼 주주들이 '지분율 희석'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특히 조원태 회장을 겨냥해 경영에 실패했으면서도 아시아나항공을 도둑질하러 나선 파렴치한으로 몰았다. 기업거버넌스포럼 주요 멤버로 산업은행 공격 선봉에 나선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는 순간 한진칼·대한항공 이사들이 이동걸·조원태 회장을 배임 혐의로 형사고발조치에 들어가야 한다"며 공세를 펼쳤다.
이동걸 회장은 여기 맞서 정공법을 선택했다. 당초 이번 딜은 김석동 한진칼 이사회 의장이 먼저 제안한 구상이기 때문이었다. 이 회장은 "강성부 KCGI 대표는 협상 상대가 될 수 없는 사인(私人)"이라고 지적했다. 동시에 주주행동주의에 대해선 "자기 돈은 0원이면서 남의 돈으로 (투자를) 하는 분들"이라는 뼈아픈 직격탄을 날렸다.
산업은행은 법원의 판단에 따른다는 원칙을 세웠다. 법리 검토 결과 가처분이 인용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만약 딜이 무산돼 양대 항공사 체제가 이어질 경우를 대비한 시나리오도 준비했다. 그러나 업계에선 딜 실패에 따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본다.
한국항공대 한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 아시아나항공은 △인력 구조조정 △대규모 혈세투입 △파산 처리 등 선택지가 세가지 뿐인 상황인데 이를 전부 무시하고 경영진 공격에만 집중하는 한심함을 보이고 있다. 이들 무리들의 주장은 단 한마디도 들어줄 것 없는 이기주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주주행동파들의 이같은 시도는 최근 들어 번번이 무산되고 있다. 지난 17일 열린 KB금융그룹 주주총회에선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가 노동조합 추전으로 경영이사회 내부 진입을 시도했지만 3.8% 찬성율에 그치며 체면을 구긴 바 있다.
또 지난달 열린 LG화학 물적분할 임시주주총회에서도 '지주사 디스카운트'를 이유로 주주행동파들이 반대 주장을 펼쳤지만 평소 노선을 함께 했던 국민연금마저 등을 돌리면서 수모를 당했다. 최근엔 김종인·이낙연 여야 대표를 찾아 상법개정을 요구했지만 "펀드 주제에 너무 나가는 것 아니냐"는 재계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대한항공 노조도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이날 노조는 "(이한상이라는) 이상한 교수가 '구정물에 똥물을 섞는다'는 망발을 했다"며 "편향된 시각에 항공업계 노동자는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문을 내놨다. 그러면서 KCGI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간의 통합을 방해하는 투기자본이라고 깍아내렸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 내부에서 특정 집단의 방해 공작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경영권 분쟁보다 더 나쁜 현상"이라며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실패할 경우 결국 일반주주들이 불이익을 보게 될 것으로 우려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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