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해 고려대학교에서 개최한 '기업지배구조 토론회' 전경.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해 고려대학교에서 개최한 '기업지배구조 토론회' 전경. [사진=이상헌 기자]

[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자본시장연구원이 기업입장을 원천적으로 배제한 '공정경제 3법' 토론회를 기획해 편향 논란이 일고 있다. 국책연구원이 기업들의 목소리는 엄살로 치부하면서 관변 토론회를 주도하는 모습에 경제계가 치를 떨고 있다. 

9일 자본시장연구원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와 공동으로 '상법·공정거래법 개정 정책토론회'를 오는 13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표 발표자로는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이 나서고, 박영석 자본시장연구원장이 좌장으로 참가한다. 패널엔 강석훈 성신여자대 경제학과 교수,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유주선 강남대 공공인재학과 교수, 채이배 전 국회의원이 배석됐다. 

자본시장연구원은 "다양한 시각을 가진 최고 전문가들을 모셔 다양한 관점에서 토론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그렇지만 패널 가운데 이해 당사자인 기업계는 물론이고 기업법 전문가조차 보이지 않아 "아무리 정부돈을 받지만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토론회 초청을 받은 법학과 한 교수는 "멤버 구성과 취지를 보고 선무당이 사람 잡는 판에 낄 수 없어 거절했다"며 "객관성을 지켜야할 연구소가 지금까지 상법을 개정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배포한 프로그램을 보면 연금사회주의를 옹호해온 인사가 발표자로 나서는 등 다양성을 찾기는 어려웠다. 패널진 대부분이 그간 대주주(오너) 경영을 적폐로 규정하면서, 소수주주가 기업의 주인이 되는 '한국형 지배구조'를 주장해온 인사들 일색이었다.

토론회 대표 발표자인 송민경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행사가 연금 사회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관련해 "자본시장이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당연하게 이뤄지는 일"이라면서 정치· 사회 권력의 기업경영 개입을 당연시 여겨온 인사다.  

그럴 만한 것이 송 연구위원이 속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금융위원장이 원장 임명권을 행사하는 사실상의 국가 산하 단체로 국민연금공단 등의 스튜어드십코드 의결권 행사 자문 명목으로 한국거래소로부터 매년 40억~50억원을 지급받는 단체다. 순수 주주행동주의자인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마저 이같은 형태를 '삼권 분립 위반'이라고 비판해왔다. 

보수측 인사로 분류되는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도 지난 20대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 간사를 지낸 뒤 박근혜 정부 말기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한 개량경제학자로 기업법에 대한 연구실적은 물론 이해도가 부족한 인사다. 특히 지난 2015년 롯데그룹 신동빈·신동주 회장간의 경영권 분쟁 사태의 원인을 '전근대적인 기업 지배구조' 탓으로 돌리는 등 오너경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엘리엇·소버린 등 헤지펀드의 경영권 위협을 '주주행동주의 표본'이라고 극찬해온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도 보였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국회에서 추진해온 '벤처기업 차등의결권'마저 "(포이즌필 등) 상법개정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위험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며 반대해온 인물이다. 또 유주선 강남대학교 공공인재학과 교수도 상법 강의 경험은 있지만 한국보험법학회 총무를 지낸 보험전문가로 통한다. 

지난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채이배 전 의원은 주주행동주의를 앞세운 반기업동맹의 핵심 인사다. 그는 다중대표소송 적용 대상회사의 종속회사 지분 보유 기준을 30%로 정하는 자칭 '김종인보다 센 상법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종속회사 지분 보유 기준을 30%로 할 경우 국내상장기업 2204개 회사 가운데 가운데 1763개(80%) 이상의 회사가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이에 대해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블랙컨슈머와 법률브로커에 의한 기획소송 남발로 인한 기업가치 훼손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형 지배구조는 글로벌 스탠다드와도 정반대다. 미국을 비롯한 대다수 국가가 100% 지분을 가진 완전 모회사에 해당하더라도 계열사간 소송에 엄격한 조건을 달고 있다. 호주·뉴질랜드·홍콩·이스라엘은 물론 남아프리카공화국·나이지리아까지 전세계 나라가 부작용을 막기 위해 소송 제기에 앞선 '법원의 허가'를 요구한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미국에선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자본시장에서 기업지배권을 오너가 갖든 전문경영에 부여하든 궁극적으로 기업가치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실증분석(Demsetz, 1983)이 나오면서, 대부분 나라가 기업들의 고유의 지배구조를 존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영석 원장은 토론에서 기업 입장이 배제된 것과 관련 "토론자들 가운데 상법개정을 반대하는 인사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고 해명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법개정이 안돼 아쉬울 것이 뭐냐'는 질문에 대해선 "당초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고 답했다.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기업들의 목소리는 엄살로 치부하는 행태가 가장 악질이다"며 "만에 하나 법안이 강행 처리되고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로 인한 대가는 모두가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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