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현대중공업 법인분할을 결정하는 주주총회가 다가오면서 제2 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선택이 초미의 관심사다. 사진 오른쪽은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현대중공업 법인분할을 결정하는 본게임이 임박하면서, 국민연금관리공단(NPS)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이목이 쏠린다. 그간 정기선 부사장 경영권 승계에 우호적이었으나 이번에는 반대표를 행사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오는 31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가칭)을 분할해 존속회사로 하고, 현대중공업을 신설회사로 하는 안건을 의결할 예정이다. 이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사전 절차로 중간지주사 주식과 산업은행의 대우조선 주식을 교환하는 방식이다.

8.9%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25.8%)에 이어 2대주주다. 이번 주주총회서 조영철 부사장과 주원호 전무에 대한 한국조선해양 사내이사 선임과 분할 안건이 가결되면 현대중공업은 조선과 특수선, 해양플랜트, 엔진·기계 등의 사업 부문으로 구성된 독립회사가 된다.

현물 교환 방식의 단순 물적 분할임에도 정치권과 노조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일고 있다. 물적분할로 신설 사업회사에 부채 7조원이 넘어가면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본사의 서울 이전으로 인해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꼼수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 20일 국회토론회에서 송덕용 회계사는 "현중지주가 직접 대우조선을 인수하면 규모가 커져 경영권 승계에 불리해지기 때문에 중간지주회사 설립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김종훈 민중당 의원은 국민연금에  의견서를 보내 반대표 행사를 요청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이날 울산에서 집회를 열고 투쟁 전선에 가세했다.

이처럼 현대중공업 물적분할이 정 부사장의 승계 문제와 맞물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제2대주주로 지분 8.9%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지금까지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는 정 부사장에 적대적이지 않았다. 국민연금은 지난 2017년 2월 현대중공업 사업부문을 4개의 독립회사로 분할하는 주총 안건에 찬성하면서, 정 부사장이 현대중공업지주 3대 주주로 올라서는데 힘을 보탰다.

이어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사보수 한도 승인 안건을 제외한 대부분 안건에도 찬성표를 던졌지만, 이번 물적분할 안건에는 반대를 행사할 가능성이 커졌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자문 용역을 제공하는 기관 내부에서부터 반대 목소리가 나오면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장기적 주주이익 측면에서 봤을 때 현대중공업 물적분할 안건에 반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는 "불균형 자산분할로 부채를 떠안게 되는 신설법인의 경영악화로 구조조정이 예상되고, 현대중공업의 수요독점화가 기자재 교섭력 악화로 이어져 산업이 정체되는 부정적 효과가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가 위원으로 활동중인 기업지배구조원은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위탁기관이다. 이곳에서 제출된 의견서는 국민연금 투자정책전문위원회의 의결권 행사의 주요 근거가 되는데 이번 안건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29일 비공개 회의를 열어 판단할 예정이다.

국민연금 운용이 기업지배구조에 과도한 간섭·개입 시비를 낳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21일 국민연금 운용과 관련, 정부의 직접 개입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의 공적연금제도 가운데 가장 높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이 지난해 열린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다만 국민연금은 현대중공업 지분 8.9%에 대한 의결권 행사 내용은 주총이 끝난 이후에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사전공시 요건(10% 이상 보유)을 충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주총회가 끝난 뒤 사후공시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탁자책임전문위에 참가한 위원이 결과를 공개하면 의미가 없는 규정이다.

이런 가운데 올해초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대표이사 재선임 반대 등 주요 의결권 행사에 깊숙히 관여해온 인사가 언론을 통해 반대 입장을 내놓으면서 현대중공업 물적분할 관련 의사결정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재계 한 인사는 "박 교수가 언급한 장기적 주주이익에 모호한 사회·윤리적 속성이 지나치게 개진된 측면이 있다"며 "스튜어드십코드를 적용하려면 보다 현실적이고 입체적인 시각으로 현중 사례를 조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 내부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에도 지역경제 등에 미치는 효과를 감안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투자자와 채권자에게 이득이면 모두에게 좋은 것이 시장경제의 기본원리"라고 강조했다. 

현대중공업 역시 반대측 주장은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며 단호한 입장이다. 물적분할은 주식을 교환하는 방식을 통해 막대한 재정부담 없이 기업결합을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이며 본사 이전 계획도 애당초 없었다는 얘기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성공적 기업결합이 이뤄지면 일감과 고용이 늘어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며 "기업결합 마무리까지는 갈 길이 멀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응원을 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기업결합은 이번 물적분할 완료 이후에도 어려운 관문이 숱하게 남아 있다. 기업결합 승인을 위해서는 EU, 일본, 중국 등 20여개 경쟁당국의 승인을 단 한군데도 빠짐없이 받아내야 하며, 무엇보다 과거 참여연대 시절 기업결합을 통한 효율성 증대 효과를 부정해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란 난관을 넘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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