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통계를 내어본다면 중국보다 인구가 더 많을 거라던 인도가 코로나19 확산에 신음하고 있다. 전 세계 확진자 절반이 인도에서 발생하고 있다.하루 확진자는 30만명에 달하고, 방역당국의 무능은 애꿎은 인도 국민의 죽음으로 귀결되며 국가적 고난은 연일 확산되고 있다. 세계 최대의 백신 업체인 인도‘세륨연구소’가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부터 코로나 백신 재료를 넘겨받은 후 인도는 하루 200만도스의 코로나 백신을 생산하고 있다.그런데도 인도는 자국민의 건강을 지켜주는 백신이 턱없이 부족해 코로나19 생지옥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 백신
인간의 수명은 건강 수명과 질병 수명으로 구분된다. 현대의학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질병 수명의 연장이지만 삶의 질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먹고살 만한 대한민국이 되었지만 여전히 노년에 대한 경제적·사회적 지지 기반은 척박하다. 몸이 아프면 자존감은 무너지며 삶에 대한 의욕마저 상실된다. 세상만사가 귀찮아지며 무기력해진다. 이른바 ‘뒷방 늙은이’의 탄생이다. 지천명 나이가 넘어서니 세상 풍파에 건강한 심신 없이 맞서는 것은 쉽지 않음을 깨닫는다. 지극히 당연한 진실을 마주한 후, 가끔은 구체적으로 몇 살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의대를 졸업한 후 서울에 내 집을 장만하는 과정은 지난하고 버거웠다. 도움을 받을 수도 상속을 받을 수도 있는 집안의 재산은 전무했으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한 청춘의 시간은 색 바랜 문풍지 틈새에서 새어 나오는 황소바람처럼 사나웠다. 돌아보면 참으로 창백한 노동의 시간이었다. 돌탑을 쌓아 올리듯 한 땀 한 땀 공들인 노동의 대가로 가족들이 의탁할 집은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어렵사리 마련되었다. 그 후 내 집을 어렵사리 장만한 모진 경험은 노동의 의미와 성실의 가치를 내재시켰다. 언론에 보도된 한국부동산원의 통계자료가 눈길을 끈
“봄은 이 산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이 산을 떠나는 것도 아니었다. 봄은 늘 거기에 머물러 있는데 다만 지금은 겨울일 뿐이다“.기자에서 작가로 전업한 김훈이 원고지에 써 내려간 글이다. 언젠가 ‘동네책방’이라는 TV 프로그램 속 그의 글이 절로 떠오르는 봄날에 어찌 작가 김훈에 천착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김훈의 신작이 나오는 날 서점 진열대에는 그의 책을 집어 든 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극단적이지만 김훈 덕후들은 현대문학의 경계를 김훈과 비김훈으로 나누기도 한다. 여태 우리에겐 수상자가 나타나지 않는 노벨문학상 후
성인으로 평가받는 중국 하(河)나라의 시조인 우(禹) 임금과 농업의 신으로 숭배되는 후직(后稷)은 장마나 가뭄 같은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민생현장을 숱하게 누비고 다닌 인물들이다.우임금이야 궁궐이 집이기에 그렇다 치더라도 궁궐 밖에 집이 있는 후직은 공무 차 가는 길에 세 번이나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헌신하는 공직자의 표상이 아닐 수 없다.후직은 오늘날로 치자면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다. 높은 직위에서 적당히 요령도 피울 만하지만 그는 궁궐에서 숙식하기 일쑤였다. 가족들의 근황도 들여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불신이 극심한 시대에 의사라는 직업으로 살고 있다. 서점 판매대에는 근거조차 희박한 의료계의 여성 혐오를 다룬 르포르타주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가 팔리고 있고, 보기에도 섬뜩한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과 같은 책들은 출간 몇 해가 지나도 부단히 읽히고 있다. 의사와 병원에 대한 불신은 미세먼지처럼 날이 갈수록 확산일로에 놓여 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환자와 의사는 같은 적을 두고 상호 협력하는 존재이다. 의료 서비스의 본령이 그렇다. 일상을 막아선 질병이라는 단일 된 적
오래전 일이다. 코로나19처럼 거대한 감염병인 페스트는 14세기 유럽을 아비규환으로 내몰았다. 인구의 삼분의 일이 희생당한 커다란 재앙이었다. 딱히 의료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던 봉건사회는 권력구조마저도 와르르 붕괴시켰다. 그 시기 유럽 사회는 지배계층에 대한 신성불가침의 시대였고 오만했다. 작금의 코로나19가 사회 양극화를 한층 더 심화시키는 것도 페스트의 유럽사회와 역방향이기는 하나 계층 붕괴라는 측면에서 참으로 닮았다. 우리 시대도 오만했다.교회는 페스트의 소용돌이에서 너무도 무기력했다. 역병으로부터의 신의 가호를 간절하게 기도했
사전적 의미의 기억은 ‘사람이나 동물 등의 생활체가 경험한 것이 어떤 형태로 간직되었다가 나중에 재생 또는 재구성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기억은 통상 감각을 통해 구성된다.일테면 냄새와 감촉, 음성 등으로 뇌에 새겨진다. 아픈 배를 어루만져 주던 어머니 손바닥의 온기, 유별난 이별을 위로해 주던 노래 가사, 유년을 지배했던 친구와의 놀이, 맛있던 음식의 미각, 아스라이 코끝을 자극하던 타인의 향수 등이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뇌에 저장된다.이럴 때 기억은 추억이 되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한다. 좋은 기억은 인생의 힘이
지친 삶을 위로해 주는 최애 작가 중 한 명,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위해 집을 떠나 오랫동안 낯선 도시에 머문다고 알려져 있다. 일을 위해서지만 일을 떠날 수 있는 그의 자유가 사뭇 부럽다. 반면, 의사라는 직업은 구속된 시간 뒤에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 같다. 조금이라도 이 공간을 벗어나면 입원한 환자는, 수술받은 환자는, 내일 진료를 보러 올 환자는, 온통 환자에 대한 근심은 끼니와 같고 촘촘하게 짜여진 하루의 궤적 안에 포획되어 있는 것이다.마치 움직이는 사물을 보는 동체시력이 발달 되었지만, 색이나 글씨를 구분 못해 세상을
의과대학 때 일이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양의 공부와 실습은 청춘을 지치게 했다. 오늘을 살지만 내일을 근심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공부에 치이는 본과 생활로 곤혹스러워하던 내게 살갑던 선배가 전한 한 마디, “네가 걱정하는 모든 일들은 99%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아.” 묵직했던 그 말은 그 후, 두고두고 인생의 위로가 되었다. 사노라면 걱정이 다반사고 일상화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걱정의 본질은 뒷전이고 걱정 자체에 심신이 포획된다. 일상이 늘 걱정하는 시간들로 소모되고, 걱정을 걱정하는 우스운 꼴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걱정
지천명이라 했던가. 나이 오십이 넘어가니 기억은 스멀스멀 해지고 이해는 넓어져간다. 인생이 무탈하게 진행되어 한국인의 평균 수명까지 신체적, 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유지되었다고 가정할 때 내겐 30년 남짓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있다. 물론 개인적 편차는 어쩔 수 없으나 애써 무시하고 30년의 잉여시간을 생각하면 ‘그래도 그 정도면 아직 할 수 있는 일들이 남아있다’라는 막연한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그마저도 평화롭게 인생이 흘러간다는 전제에서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 시간이 예기치 못한 시련을 겪으며 삼분의 일로 줄
지독하다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또다시 코로나19가 여지없이 기승을 부린다. 부지불식간에 확진자가 일일 3백 명을 훌쩍 뛰어넘어 서고 있다. 수도권 중심의 2차 유행이 한창이던 지난 8월 말로 회귀한 것이다. 겨울철로 접어드는 시기에 본격적인 3차 대유행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국내 코로나19 사망자는 현재까지 496명이다. 지난 1월 14일 첫 확진 환자가 나온 지 꼬박 10개월 만이다. 전쟁도 아닌 감염병으로 많은 이들이 생명을 잃고 있다면, 이는 매우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40대 이하 청
근대화 시절을 살아온 또래의 사람들은 부모에 대한 애정을 애틋하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가족에 대한 애정 어린 표현이 자연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유교적 문화에서 자란 기성세대에게는 감정대로 애정을 쉬이 드러내는 것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아서이다. 나아가 가부장적이며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던 한국의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더더욱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이셨다. 그래서인지 나이 여든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에게 이렇듯 곰살맞은 헌사를 드리는 것은 크나 큰 결기를 필요로 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난의 시대를 한걸음 앞서 살아온 아버지를 대하는
살갑지 않은 ‘불청객’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국 우한을 지나 살포시 한반도를 고개 넘어서며 조용히 음습했고, 응당 거쳐야 할 숙련기간도 없이 그 서늘한 태도로 우리 사회를 휘젓고 다녔다.사람들은 생전 겪어보지 못한 생이별을 강요받기도 했고 자기 격리란 이름으로 불편함을 야기한 잠재적 보균자를 향한 처우를 감내하며 지쳐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교실 안에 진공 포장되었고 샘솟던 땀방울들은 운동장에서 증발되었다. 어디 그 뿐이랴. 꽁꽁 동면의 상태로 접어든 청년들의 일자리는 고용빙하기의 엄혹함으로 다가섰고 유독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한국
많은 이들은 건강을 상실하고 나서야 비로소 삶의 유한함을 절실히 목도한다. 그 후 인생에 대한 끈덕진 애착은 당연지사이다. 일생토록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다가 그제야 하고 싶은 게 생겨나기도 한다. 평소 하고 동경했지만 쉽사리 결행하기 힘들었던 버킷리스트를 정성스레 만들어 보기도 한다. 건강이 주는 삶의 성찰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 인간에게 건강은 늘 각성의 마중물이 된다.오늘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어쩌면 타인이 보기에 하찮은 것들일 수도 있다. 아이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고 맛있는 음식을 가족과 함
예방접종은 백신을 이용해 질병을 대비한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무서운 전염병 천연두는 백신 접종을 통해 1980년 소멸된 질병으로 분류됐다. 이처럼 뛰어난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된 백신은 단 한 번의 접종을 통해 인류의 생명을 지탱해 준다.예방접종을 의미하는 백신(vaccine)은 라틴어로 ‘암소’를 의미하는 여성형 명사‘바카(vacca)’에서 차용됐다. 천연두 백신이 그 모태이다. 1796년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천연두를 유발하는 것과 거의 동일한 바이러스지만 비교적 해가 없는 질병인 우두에 감염된 낙농업 관계자들을 주
심란하기 이를 데 없는 근간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숫자는 지역과 공간을 가리지 않는 전국 단위의 이른바 'n차 감염 현상'으로 확산일로이다. 사람들의 일상은 그렇게 침몰되고 있다. 감염경로가 명확하지 않은 환자 비율이 21%를 넘어가며 방역은 초비상이며 또다시 다가오는 태풍의 잿빛 구름은 하늘을 뒤덮고 있다.'n차 전파'와 감염경로 불분명 환자 모두 코로나19 확산세를 가속화하는 주요 요인이다. 특히 n차 감염은 방역의 큰 걸림돌이다. ‘자연수(natural number)’의 약어인 n은 수학에서
손으로 만져지지만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부위인 인체의 귀는 청각과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귀하신 몸이다. 크게 바깥귀(외이), 가운데귀(중이), 속귀(내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귓바퀴도 역할이 크다. 음파를 모아 소리의 방향을 인지하는 기능이 있다. 사실 귀는 평소에 관리를 하기가 쉽지 않고 잘 하지 않는 소외된 인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병원을 찾는 환자들 중 귀 질환에 힘겨워하는 환자가 부쩍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귀에서 소리가 들리는 이명 환자이다. 이명은 특정한 질환이 아니라 ‘귀에서 들리는 소음에 대한 주관적 느낌’을
아프리카 오지, 밀림의 성자였던 의사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인류애 실천의 공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전쟁 직후 부산에서 천막 병원을 세워 하루 200여 명의 행려병자를 돌보았던 의사 장기려는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며 아시아의 노벨상인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시대와 공간은 달랐지만 두 의사의 인생은 청빈하고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슈바이처도 의술로 선교를 실천했고 장기려도 평생을 예수의 가르침대로 ‘가장 평범한 삶이 선한 삶이다’라는 산상보훈의 삶을 지고지순하게 살았다. ‘가난하고 헐벗은 불쌍한 환자들의 의사가 되겠다’
꽃은 인간의 관계에서 아름다운 쓰임이 된다. 축하와 고마움을 대신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는 추모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에게는 형형색색의 꽃으로 언어를 대신 에둘러 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때로는 야만의 권력에 저항하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홀로도 아름다운 꽃은 무리지어 피어 날 때에는 더더욱 절정의 자태를 뽐내며 평화와 연대의 상징으로 만개한다.보낸 이의 정성이야 말할 나위 없이 귀하지만 화환은 때론 건조하다. 큼지막한 사람의 이름을 걸고 휘황찬란하게 꽃 치장을 했지만 격식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