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때 일이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양의 공부와 실습은 청춘을 지치게 했다. 오늘을 살지만 내일을 근심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공부에 치이는 본과 생활로 곤혹스러워하던 내게 살갑던 선배가 전한 한 마디, “네가 걱정하는 모든 일들은 99%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아.” 묵직했던 그 말은 그 후, 두고두고 인생의 위로가 되었다. 

사노라면 걱정이 다반사고 일상화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걱정의 본질은 뒷전이고 걱정 자체에 심신이 포획된다. 일상이 늘 걱정하는 시간들로 소모되고, 걱정을 걱정하는 우스운 꼴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경쟁사회에 살며 수도자의 삶이 아니라면 애시 당초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부질없는 걱정에 지배당하지 않을 순 있다. 내가 지금 무엇을 걱정하는 건지 그 본질을 잊지 않는다면, 그 근원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멈추지 않는다면 걱정거리를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는 반듯한 처신은 습관화된다. 그럴 때 평안은 찾아든다.

진료실 책상 위 달력이 그 쓰임을 다했다. 그렇게 시간은 흔들리지 않고 꾸역꾸역 새해를 재촉한다. 올 한 해 나의 말과 글은 어떠했을까. 온전한 사람의 말이었을까. 사람에 대한 체온이 스며드는 말이었을까. 또다시 걱정이 든다. 의사의 말과 글은 되도록 환자의 눈높이에서 말하고 쓰는 게 미덕이라 생각한다. 쉽게 말하고 쓸 수 있는데 굳이 어려운 의학용어와 불필요한 수식어를 남발하는 것도 일종의 권위의식의 발로 아니던가. 하지만 현대의 질병들은 속 깊은 난해함이 존재한다. 그 견고한 틀을 뛰어넘어 환자 친화적이길 갈구했던 한 해였지만 흡족한 결과를 도출해내진 못했다. 그러나 미완의 과제가 있기에 새해의 희망도 따라 붙는 것이다. 그것이 사노라면 응당 짊어지고 가야할 의사로서의 존재 형상이다.

인간은 이기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자의 인식이 공고하다. '인간은 본디, 이기적이라서 감수하고 살아야 돼.' 살아오면서 부정직한 인간관계에서 이 문구보다 더 강력한 면죄부를 본 적은 없다. 이 면죄부의 위력은 무척이나 견고하고 서슬 퍼렇게 작동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성적이지 않은 못난 현실에 대해 체념한다. 착함이 무능이 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이기심이 본능에 충실한 것이 되어버린 자위적 변명은 도처에서 인용된다. 그 결과, 사회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모순에 대해 무기력하게 순응하는 나쁜 결과를 받아들이게 된다.

카를 마르크스의 아포리즘,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그렇다. 무한 경쟁 사회에 살며 어느덧 우리에겐 ‘타인은 멀고 가족은 가까운 이기적 양식’이 굳어지고 있다. 인간의 다양한 가능성 중에 끝 모를 이기심만이 확대되는 사회라면 사회적 방역을 지탱해야 될 지금, 코로나19는 종식되기 어려울 것이다. 잘못된 사회구조의 결과물인 이기심이 질병이라면 타인에 대한 배려와 따스함을 잃지 않는 인간의 태도는 백신이다. 

중국의 사상가 노신의 소설 ‘고향’에서의 한 구절, “희망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은 길이 되는 것이다.”

다시 살아내야 될 2021년 우린 지금, 갓 지은 밥의 고슬고슬한 훈기로 미더운 연대의 길을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함께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코로나19는 여전히 배려의 거리 두기가 아닌 혼자만의 이기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안태환 원장 약력

▪ 강남 프레쉬이비인후과 의원 대표원장
▪ 이비인후과 전문의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 의학박사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 서울 삼성의료원 성균관대학교 외래교수
▪ 대한이비인후과 의사회 前 학술이사
▪ 대한이비인후과 학회 학술위원
▪ 대한미용외과 의학회 부회장
▪ 대한 레이저 피부모발학회 부회장
▪ 2017년 한국의 명의 100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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