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를 졸업한 후 서울에 내 집을 장만하는 과정은 지난하고 버거웠다. 도움을 받을 수도 상속을 받을 수도 있는 집안의 재산은 전무했으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한 청춘의 시간은 색 바랜 문풍지 틈새에서 새어 나오는 황소바람처럼 사나웠다. 돌아보면 참으로 창백한 노동의 시간이었다. 돌탑을 쌓아 올리듯 한 땀 한 땀 공들인 노동의 대가로 가족들이 의탁할 집은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어렵사리 마련되었다. 그 후 내 집을 어렵사리 장만한 모진 경험은 노동의 의미와 성실의 가치를 내재시켰다. 

언론에 보도된 한국부동산원의 통계자료가 눈길을 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 값의 폭등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했던 2020년의 전국 아파트 증여 건수이다. 9만 1866건으로 전년 대비 2만 7476건 늘었다.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06년 이래 최다 규모란다. 부동산 보유세가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증여 건수도 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작년만의 특수한 경우인가를 살펴보았다. 아니었다. 국세청이 발표한 ‘2014-2018년 세대별 부동산 수증 현황’자료에는 2,30대가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주택 또는 빌딩의 증여액이 2014년 9576억 원에서 2018년 3조 1596억 원으로 3.3배 껑충 뛰었다. 증여 건수도 2014년 6440건에서 2018년 1만 4602건으로 2.3배 증가했다. 공시지가 상승과 부동산 관련 세법이 바뀐 최근에는 그 증가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21세기 자본론’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지난 2019년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사유재산 축적은 합리적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작년 부동산 증여 통계는 그가 우려했던 대로 한국 사회는 세습 사회를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19에 의한 고용불안과 자영업의 위기로 우리 사회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는 기우가 아닐 수 있다. 계층 간 선순환적인 이동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반증은 증여가 대표적이다.  부모로부터 자산을 물려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은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심각한 ‘게임의 룰’위반이다. 

고려 후기 승려 일연이 신라·고구려·백제 유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역사서 ‘삼국유사’에는 김유신 관련 문헌이 등장한다. 그중 눈에 띄는 대목은 가문의 종가인 ‘재물을 부르는 우물’이란 뜻의 ‘재매정택(財買井宅)’이다. ‘금이 무시로 들어간다’는 뜻인 ‘금입택’이다. 김유신은 오늘날로 치자면 부동산 재벌이었던 것이다. 막대한 부의 배경에는 삼한통일의 으뜸 공신으로서의 국가적 대우가 있었다.

조부 때부터 이른바 신라의 세습 재벌인 김유신 가문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가문으로도 유명하다. 아들 원술이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살아 돌아오자 김유신은 “내 아들은 신라를 부끄럽게 한 겁쟁이”라고 혹평하며 사형을 주장한다. 다행히 문무왕의 사면으로 죽음에서 벗어난 원술은 집을 떠나 지방으로 낙향한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며 모든 불찰을 싸고도는 오늘날의 부모들 입장에선 김유신의 나라에 대한 충정과 기개는 범접하기 힘들 듯 싶다.

김유신뿐만이 아니었다. 문부왕의 누이이자 그의 부인이었던 지소부인도 김유신 사후 집에 돌아온 원술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막대한 부를 물려주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가부장적 유교문화의 극단적 상황이라 비판할 이도 있으나 김유신 가문의 절개와 나라에 대한 충정은 냉혹하리만치 공과 사를 명확히 분간하였다. 

노동 소득보다 자본소득으로 부가 집중되는 사회는 정상적이지 않다. 자신의 노력 여하가 아닌 태생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면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능력주의를 근본적으로 잠식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집은 노동 소득에서 탄생하여야 한다. 그렇게 탄생한 집은 더 안락하다. 

아 참, 잊은 것이 있다. 서슬 퍼런 부모로부터 배척당한 원술은 그 후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는 부끄럽다며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김유신이 증여한 것은 집과 재산이 아닌 진실 된 충정이었다. 김유신의 아들답다.   

 

 

안태환 원장 약력

▪ 강남 프레쉬이비인후과 의원 대표원장
▪ 이비인후과 전문의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 의학박사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 서울 삼성의료원 성균관대학교 외래교수
▪ 대한이비인후과 의사회 前 학술이사
▪ 대한이비인후과 학회 학술위원
▪ 대한미용외과 의학회 부회장
▪ 대한 레이저 피부모발학회 부회장
▪ 2017년 한국의 명의 100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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