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이 산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이 산을 떠나는 것도 아니었다. 봄은 늘 거기에 머물러 있는데 다만 지금은 겨울일 뿐이다“.

기자에서 작가로 전업한 김훈이 원고지에 써 내려간 글이다. 언젠가 ‘동네책방’이라는 TV 프로그램 속 그의 글이 절로 떠오르는 봄날에 어찌 작가 김훈에 천착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김훈의 신작이 나오는 날 서점 진열대에는 그의 책을 집어 든 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극단적이지만 김훈 덕후들은 현대문학의 경계를 김훈과 비김훈으로 나누기도 한다. 여태 우리에겐 수상자가 나타나지 않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김훈이 늘 거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말처럼 문장에 상을 주는 일이 뭔 대수이랴 만은. 

장편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 단편 ‘화장’으로 이상문학상, 단편 ‘언니의 폐경’으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명실공히 책을 팔아서 생계가 가능한 몇 안 되는 작가이다. “평화로운 꽃밭의 문단에 야수가 나타났다”라는 평단의 감탄과 ‘문장가라는 예스러운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몇 안 되는 글쟁이 중의 하나’라는 시인 남진우의 평가는 낮 간지러운 레토릭은 아니다. 나를 위시하여 이미 수많은 독자들은 그러한 찬사에 격한 공감을 하기 때문이다. 출판시장의 블루칩으로 파급력은 지대하며 그의 글은 이미 시민의 양식이 되었다. 난 늘 그 영향력에 자발적으로 지배당하고 있다. 

김훈이 문장으로 말하고 싶은 삶은 때론 역사적이며 때론 일상적이다. 병자호란 속 주전파와 주화파를 꺼내들기도 하고 전장의 영웅으로서의 이순신과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의 고뇌를 묵직하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자전거 덕후로서 책상 위 글이 아닌 발로 쓴 기행문을 써 내려가기도 한다. 어느 순간 라면을 끓이다가도 인간의 속살을 드러내기도 하고 세월호의 고통과 내면의 성찰을 읊조리기도 한다. 모든 글은 우직하게도 몽당연필을 도구삼아 육필 원고로 한 칸씩 채워나간다. 세상의 모든 글이 쉬이 써지는 것이 어디 있을까 만은 컴퓨터가 아닌 연필은 필력의 내공으로 그렇게 쌓여 가나 보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 유명한‘칼의 노래’의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의 ‘꽃이’와 ‘꽃은’을 두고 치열한 고민을 했다는 이야기는 치열한 작가정신의 표상이다. 첫 문장인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의 힘은 간단명료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어+동사’로만 구성된 문장이 이렇듯 수려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화려한 단어들의 나열의 수사학에서 문장의 힘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주어+동사’가 주는 글의 맛은 사실상 거기에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래서 그의 글은 한 문장도 버릴 게 없고 장독대 속 옹골진 된장처럼 글맛의 깊이를 내어준다. 읽는 이의 후각을 통해 글 향기는 오장 육부로 어김없이 전해진다.

문학이 속도에 지배당하는 시대를 살며 김훈의 글들도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본화된다. 김훈 덕후로서 안타까울 뿐이다. 몇 해 전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를 예약 구매한 독자들에게 양은 냄비와 라면을 하나씩 끼워주었다는 보도는 서글펐다. 국내 출판계를 좌지우지하는 유명 출판사의 야심찬 프로모션이었다. 라면 냄비 받침대로 책을 활용해 달란 뜻은 아니어도 천박하다. 

지식산업에 더해진 건조한 비즈니스 영업 전략, 출판시장을 정상화시킬 도서정가제를 앞장서서 지켜야 할 힘 있는 대형 출판사들이 오히려 편법으로 도서정가제를 어기고 있다는 비판은 그래서 설득력을 지닌다. 독자들에게 양은 냄비를 내어줄 여력이 없는 중소 출판사는 어쩌란 말인가. 김훈도 부끄러웠을 것이다.  

김훈은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에서 “모란이 다시 피는 5월을 기다리듯이 생명들이 바다 밑으로 뚝뚝 떨어져 버린 4월을 기다리면서 나의 악몽을 달래고 있다”며 4월의 세월호를 애통해 했다. 그런 그의 책에 양은 냄비 사은품이라니.

4월의 첫날, 그에게 당신은 어느 쪽이냐고 굳이 묻지 않겠다. 그 또한 출판사의 양은 냄비처럼 경솔하니까. 글은 글대로, 4월의 아픔은 아픔대로.

 

안태환 원장 약력

▪ 강남 프레쉬이비인후과 의원 대표원장
▪ 이비인후과 전문의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 의학박사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 서울 삼성의료원 성균관대학교 외래교수
▪ 대한이비인후과 의사회 前 학술이사
▪ 대한이비인후과 학회 학술위원
▪ 대한미용외과 의학회 부회장
▪ 대한 레이저 피부모발학회 부회장
▪ 2017년 한국의 명의 100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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