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다. 코로나19처럼 거대한 감염병인 페스트는 14세기 유럽을 아비규환으로 내몰았다. 인구의 삼분의 일이 희생당한 커다란 재앙이었다. 딱히 의료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던 봉건사회는 권력구조마저도 와르르 붕괴시켰다. 그 시기 유럽 사회는 지배계층에 대한 신성불가침의 시대였고 오만했다. 작금의 코로나19가 사회 양극화를 한층 더 심화시키는 것도 페스트의 유럽사회와 역방향이기는 하나 계층 붕괴라는 측면에서 참으로 닮았다. 우리 시대도 오만했다.

교회는 페스트의 소용돌이에서 너무도 무기력했다. 역병으로부터의 신의 가호를 간절하게 기도했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교회를 신봉했던 사람들은 좌절하고 낙담했다. 유럽을 지배했던 봉건영주도 무위도식의 호세월을 반납했다. 페스트로 많은 소작농들이 사망하면서 야기된 노동력 부족은 급기야 임금 받는 농민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완벽한 을의 위치에 있던 농민이 갑으로 변모했다. 바야흐로 오만한 권력으로부터 시민의 자유가 요구되는 르네상스의 초입이었다.

그 무렵 페스트의 유행으로 그 유명한 아이작 뉴턴의 발견도 시작된다. 사과에서 비롯되었다. 어찌 보면 인류의 문명사에서 가장 중요한 과일 중의 하나가 사과가 아닐까 싶다. 아담과 이브가 그랬고 뉴턴이 그랬다, 어라,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업의 로고도 사과이다. 아무튼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과 ‘미분적분’도 이 시기에 탄생한다. 기존의 편견으로부터 깨어난 뉴턴은 이 기간을 후에 ‘창조적 휴가’라고 칭했다. 아무렴, 과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을 창조해냈으니 그 작명 적절하다. 

그러고 보니 요즘처럼 집콕의 일상화에서 뉴턴 같은 인물이 등장하기엔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문제는 성찰과 사색의 노동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다. 아무말 잔치가 찬란하게 벌어지는 예능에 천착하고, ‘생각 따위는 하지 마’를 강요하는 먹방으로 소일거리를 삼는다면 아이작 뉴턴의 창조적 휴가는 애시당초 어림도 없다.

늘 바쁘고 분주하게 살아온 탓에 뉴턴처럼 사색할 여력은 없었다. 자위적 변명이라 해도 그건 틀림없다. 어쩌면 뉴턴처럼 창조적 휴가를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지식의 편견이 그 얼마나 집요하고 견고한 것인지 잘 체감하진 못했다. 일단 방향을 정한 생각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완파한 것처럼 오만한 태도로 일상을 지배하기도 했다. 일반인이 범접하기 어려운 의학적 측면에서 의사로서의 지식은 겸양의 미덕을 스스로 물리쳤는지도 모른다. 부끄럽다.

그러나 나를 위시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실제로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세상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매일 먹는 밥 짓기의 원리조차도 모른다. 씻은 쌀에 얼마만큼의 물이 채워져야 꼬들꼬들한 백미 밥이 탄생하는지, 밥은 왜 뜸들이기를 기본으로 전제하는지, 밥을 지을 때의 단계별 열기는 얼마의 화력을 요구하는지를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저 감이다.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전기밥솥의 전능한 기능에 의존한다. 그러다 보니 그 옛날 가마솥 밥의 풍미를 재현해 낼 창조적 밥은 도무지 탄생하기 어렵다.   

까치설날이 아닌 우리 설날이 목전에 있는 새해를 맞으며 늘 장대한 계획을 세운다. 그 면면을 돌아보니 주로 무엇이 되고 싶다거나 무엇을 얻고 싶다는 성취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가지려는 것이 오만한 태도라면 이제 한발 물러나 희끄무레한 마음 위에 명멸하는 존재를 응시해봐야 한다. 그러다 보면 경직된 오만과 얼룩진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으로의 새해 소망이 자리 잡는다. 아이작 뉴턴으로의 풀무질이다. 

여전히 의식은 습관적으로 오만하며 편견에 매몰되어 있다. 그럴 때마다 성찰 그리고 다시 성찰이라는 습관적 자투리 노력들을 모아가야 한다. 그 애씀이 옹기종기 모여 일상을 변혁시킬 날을 꿈꾼다. 그렇게 생각하니 관성에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 나아진다. 창조적 의사의 길은 끝이 없다.

 

 

안태환 원장 약력

▪ 강남 프레쉬이비인후과 의원 대표원장
▪ 이비인후과 전문의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 의학박사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 서울 삼성의료원 성균관대학교 외래교수
▪ 대한이비인후과 의사회 前 학술이사
▪ 대한이비인후과 학회 학술위원
▪ 대한미용외과 의학회 부회장
▪ 대한 레이저 피부모발학회 부회장
▪ 2017년 한국의 명의 100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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