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 시절을 살아온 또래의 사람들은 부모에 대한 애정을 애틋하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가족에 대한 애정 어린 표현이 자연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유교적 문화에서 자란 기성세대에게는 감정대로 애정을 쉬이 드러내는 것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아서이다. 나아가 가부장적이며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던 한국의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더더욱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이셨다. 그래서인지 나이 여든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에게 이렇듯 곰살맞은 헌사를 드리는 것은 크나 큰 결기를 필요로 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난의 시대를 한걸음 앞서 살아온 아버지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늘 데면데면했고 때로는 건조했다. 어쩌면 지난한 의과대학에서의 삶이 아버지의 고행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애써 그리 변명하지만 아버지에게 살가운 아들은 아니었다. 그랬던 내가 아버지의 외로움을 절절하게 느낀 것은 병상에서의 모습이었다. 강건했던 당신의 어깨는 구부정했고 때론 우악스러웠던 손은 쭈글쭈글해졌다. 기력마저 쇠퇴하신 당신의 오늘은 힘겨웠고 애절했다. 은퇴라는 서늘한 경계 앞에서 당신의 인생은 가을 산 지천에 널린 구절초의 늘어진 꽃잎처럼 그리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은 부모의 나이를 먹고 자란다. 자식에 대한 헌신으로 때로는 치열하고 때로는 눈물겨운 고단함은 깊은 세월의 웅덩이로 주름살로 고여 가며 새겨진다. 그 누구보다 세상에 관해 패기 어린 아버지의 청춘은 몇 번의 좌절 끝에 모질고 거친 옹이로 남았다. 그래도 사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한 당신은 굴곡진 인생살이 속에서도 주변 사람들을 언제나 후하게 건사했다. 가족들에게 그런 당신의 후덕함은 모질고 서운했다. 

의혈 청년이라 불리 울만한 아버지는 어느 순간엔가 앞서가는 자식들의 맨 뒤에 쳐져 해지는 그늘에 가려졌다. 호기 있게 무리를 지어 다녔던 당신은 이제는 홀로 인생의 뒤안길에 남았다. 어쩌면 그 길도 이제는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이의 무거움은 누구든 비껴갈 수 없는 인생의 필연 아니던가. 언젠가 당신과 함께한 동네 인근 길 산책에서 눈에 띄게 느려진 아버지의 걸음은 당신이 살아낸 모진 인생을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약삭빠르고 영민하게 살아 내지 못한 당신의 처세는 세상의 빠른 걸음에 역행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아버지는 가족의 뒤에서 이제는 아무런 말없이 걸어야 한다는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그 어떤 상처는 평생 진물 나는 까만 옹이로 남는다. 그 울퉁불퉁한 표면 위에 모진 경험들이 거칠게 쌓여 모난 흉터로 자리 잡는다. 사람들은 그 흉터로 현실을 굴곡지게 응시한다. 나도 그랬다. 아버지 인생의 상처를 보상하는 존재가 될 수 없고, 되지 않아도 된다는 아들로서의 내 졸렬한 한계를 흉터처럼 인정하고 나니 자식으로서의 부채의식은 한결 가벼워졌다. 나의 지독한 이기심을 에둘러 위로하려 ‘그래 자식의 인생을 존중해주시겠지, 내리사랑이니까’라고 말이다. 미덥지 못한 자식으로서 궁색하기 짝이 없다. 

빚진 마음은 가슴 밖으로 꺼내야 한다. 어쩌면 빚진 마음이 들 때 멀리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고 몇 번이고 도망 치곤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시간은 늘 아들과 함께였다. 아버지의 자리는 목석처럼 늘 그 자리였다. 가족을 위해 헌신했기에 좌절도 있었고 실패도 있었을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진실 앞에 이제야 눈물 나게 숙연해진다.    

돌아보면 아버지로부터 ‘물질적 유산’이 아닌 ‘정신적 유산’을 참 많이도 받았다. 속내 깊은 당신의 사랑에 대해 자식을 낳고 살다 보니 이제야 그 깊이와 배려가 새삼 눈물겹다. 아들이 겪는 삶의 무게는 아버지에게 늘 아팠던 것이다. 자식은 종종 부모의 희생 위에 밀어 올려진 지금의 위치를 스스로의 힘이라고 착각한다. 그리고 자만한다. 아버지의 고난이 있었기에 나의 자리가 있으며 당신의 외로움이 곧 들이닥칠 나의 모습이라고 인정하는 나이가 되었다. 아들로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살아야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쾌유를 다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

 

 

안태환 원장 약력

▪ 강남 프레쉬이비인후과 의원 대표원장
▪ 이비인후과 전문의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 의학박사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 서울 삼성의료원 성균관대학교 외래교수
▪ 대한이비인후과 의사회 前 학술이사
▪ 대한이비인후과 학회 학술위원
▪ 대한미용외과 의학회 부회장
▪ 대한 레이저 피부모발학회 부회장
▪ 2017년 한국의 명의 100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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