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명이라 했던가. 나이 오십이 넘어가니 기억은 스멀스멀 해지고 이해는 넓어져간다. 인생이 무탈하게 진행되어 한국인의 평균 수명까지 신체적, 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유지되었다고 가정할 때 내겐 30년 남짓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있다. 물론 개인적 편차는 어쩔 수 없으나 애써 무시하고 30년의 잉여시간을 생각하면 ‘그래도 그 정도면 아직 할 수 있는 일들이 남아있다’라는 막연한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그마저도 평화롭게 인생이 흘러간다는 전제에서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 시간이 예기치 못한 시련을 겪으며 삼분의 일로 줄어 10여 년 남짓 남았다면 어떨까. 생물학적 나이는 사회적 활동에 예속되기에 그에 따른 조급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마저도 의학적으로 30년의 생애 주기 동안 10년은 코마와 같은 수면 상태로 보내게 된다. 10여년은 일을 하면서 보내게 될 것이다. 여기서의 노동은 직업을 포함해 가족을 돌보는 일,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리라. 그러고 나면 자신에게 오롯이 남는 시간은 10여년. 자칫 정해진 시한부 인생 같지만 우리가 삶에 자발적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은 그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니 일말의 서글픔이 밀려든다. 그마저도 근간에는 코로나19라는 해괴한 질환으로 위기에 처해있다. 아, 몹쓸 코로나19.

현재는 과거로부터 종속된 산물이다. 벗어나려 해도 쉽진 않다. 현재는 미래의 과거다. 그러니 온전하게 나를 위해 산다고 해도 결국 인생은 과거, 현재, 미래의 프레임 속에서 돌고 돈다. 현대의 모든 철학이 직접,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역저 ‘존재와 시간’에서는 “우리의 존재는 시간이며, 우리의 시간이 유한하다면 비 본래적으로 살면서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고 설파했다. 뒤통수를 때리는 지극히 맞는 말씀.

현실 속 시간의 씨앗이 우연이라면 미래의 꽃은 인연이 된다. 자연도 그러하고 인간도 예외 없다. 누구나가 과거의 나를 소환하여 미래의 인연 속에 자연스레 투영시킨다. 난해하지만 나를 만든 것은 하나같이 우연이면서도 모두가 인연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부모가 그렇고 가족이 그렇다. 부지불식간의 우연이 모여 인연이 되고 소중한 지인과의 살가운 관계로 승화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우리네 일상은 상실과 희망의 교차로를 갈팡질팡 걸어가고 있다. 3차 대유행의 기로에서 사람들의 강제된 고독은 끝 모를 우울함마저 수반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특별할 것 없는 오십대의 나이는 더더욱 그 경중이 그러하다. 허나, 삶의 동력은 오늘도 내일도 순환을 거듭한다. 현재를 살고 있기에, 하이데거의 성찰처럼 낭비하지 않는 시간을 위해 가파른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호흡은 짧지 않고 길어야 한다. 

소모적이지 않을 생산적 일을 하고 살아도 부족한 시간인데도 나이 오십의 지혜를 자칫 꼰대로 치환하여 간섭하고, 타인의 부족함을 일깨우고, 요청받은 적 없는 조언과 충고는 금물임을 깨닫는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최선의 관심은 때론 미덥게 지켜봐 주는 것도 미덕임을 알았다. 이제 철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오십대의 친구들이여, 꼰대는 되지 말자.

난해하지만 조금 더 하이데거를 꺼내들면 ‘존재와 시간’에서는 존재 구조는 ‘배려’라는 구조 속에 묶이고 이 ‘배려성’은 존재 의미인 ‘시간성’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을 규명한다. 이것이 이 책의 논거이다. ‘배려성’은 자기 이외의 다른 존재를 파악하면서 ‘배려’적으로 살피고 보살핌을 하면서 산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라, 그러고 보니 내게 주어진 시간들 속에 존재를 확인해 주는 ‘배려성’을 구현하기에 의사만큼 좋은 직업이 어디 있나 싶어 행복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브라보 마이 라이프(Bravo, My Life)’를 외친다. 길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말이다.

 

안태환 원장 약력

▪ 강남 프레쉬이비인후과 의원 대표원장
▪ 이비인후과 전문의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 의학박사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 서울 삼성의료원 성균관대학교 외래교수
▪ 대한이비인후과 의사회 前 학술이사
▪ 대한이비인후과 학회 학술위원
▪ 대한미용외과 의학회 부회장
▪ 대한 레이저 피부모발학회 부회장
▪ 2017년 한국의 명의 100인 선정 

※ 여러분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소비자 고발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메일 : webmaster@enewstoday.co.kr

카카오톡 : @이뉴스투데이

저작권자 © 이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