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골드만삭스, 스코틀랜드왕립은행, 빌바오비스카야(BBVA), 바클레이스, 유비에스(UBS), 맥쿼리은행, 인도해외은행에 이어 한국씨티은행 등.

이들의 공통점은 지난 5년 동안 한국에서의 영업을 접고 철수해온 외국계 금융사들이다. 국내에서 소매금융 사업을 영위중인 외국계 금융사는 2016년 168곳에서 지난해 말 기준 164곳으로 줄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정부 여당이 '금융 중심지 육성'이란 구호에 매달리는 동안 외국계 금융사들은 홍콩 사태를 겪은 홍콩에서의 철수대신 한국에서의 철수에 더 적극적이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두고 벌어진 미중 무역 전쟁에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완패했다. 지난 15일 국가보안법 발표 1주년을 맞은 홍콩은 중국의 지배권에 완전히 편입됐다.

미국의 입장을 대변해온 워싱턴포스트(WP)마저도 "홍콩 보안법은 인권과 법치에  가장 심각한 위협 중 하나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제는 보편적이고 인권친화적으로 묘사되고 있다"며 패배를 시인했다.

이런 가운데 홍콩 페그(peg)제는 고스란히 남아 금융자본 이탈을 멈춰 세웠다. 페그제는 기축통화에 대해 교환비율을 정한 고정환율제다. 홍콩의 통화제도인 페그제는 일종의 변형된 고정환율제도로 이 제도 아래에선 다른 통화의 가치가 미국달러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

홍콩정부는 그동안 홍콩달러의 환율을 일정 수준에 고정하고 중앙은행이 개입해 지난 37년간 사실상의 환율 조작 특혜를 누려왔다. 이런 가운데 중국 정부가 마카오 증권거래소 설립 카드를 꺼내놓았다. 졸지에 미국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됐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이라 비난했지만 홍콩 만큼은 페그제를 유지토록 하는 등 이중성을 보여 미국으로선 당황스러운 결과가 된 것이다.

정작, 미·중 갈등 속에서 싱가포르·일본과 함께 외국계 금융사들의 대안입지로 거론되던 한국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미·중 전쟁의 가장 큰 피해 국가로 전락했다. 싱가포르는 이미 만원으로 가득찼고, 동경으로 옮겨 가기엔 너무나 멀었지만 금융사들은 한국을 벗어나는 길을 택했다.

이같은 한국 탈출러시는 오래전부터 예견된 일이다. 지난해 8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홍콩에 있는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조사대상 93개 기업 중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국내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낮은 세율, 최소한의 규제, 자유로운 경제환경, 법에 의한 지배(rule of law), 금융친화적 비즈니스 환경면에서 중국공산당이 장악한 홍콩보다 못해 기업들이 탈출하고 싶은 1순위 국가가 됐다는 우울한 현실을 드러내는 반증이기도 하다.

공자는 주역에서 이런 상황을 천하무도(天下無道, 邦無道)로 규정하며 '하늘과 땅이 닫히면 뛰어난 이들은 숨는다'(天地閉 賢人隱)고 했다. 또 "(군자라면)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서는 살지 말라"고 했다.

일의 이치를 알고 형세를 파악하고 처신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쩌면 외국인들이 느끼는 한국이 딱 공자가 말하는 천하무도, 방무도 아닐까. 돈과 자본이 한국을 떠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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