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홍남기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왼쪽)가 홍남기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코로나19 이후 사상 최대량의 통화를 풀어온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경제위기시 중앙은행의 역할을 놓고 정책적 딜레마에 빠졌다. 

1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주열 총재는 국내경제 상황을 특수한 디플레이션으로 규정하며, 1998년부터 이어져온 물가안정목표제를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해 회의감을 내비쳤다. 지난 4개월 동안 100조가 넘는 돈을 풀어도 인플레이션은커녕 디플레만 눈앞에 보이기 때문이다.

한은 70주년을 맞은 인터뷰에서 이 총재는 “이제는 금리조절을 통한 전통적 통화정책을 벗어나 적극적인 통화정책으로 가야 한다”며 두 정책을 혼합한 현대통화이론(MMT) 적용을 시사했다. 쉽게 말해 정부가 적극적 재정정책이란 이름으로 발행하는 국채를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사들겠다는 뜻이다. 

이같은 MMT는 양적완화를 펼쳐 본원통화(M0) 발행량이 급증해도 인플레가 발생하지 않아 화폐발행과 인플레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논리를 앞세운다. 하지만 주류 경제학에서는 정부부채 급증을 버틸 수 있는 기축통화국에서나 가능한 얘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윤형 한국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코로나19와 같은 갑작스런 위기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활동이 위축되기 때문에 화폐발행이 곧바로 인플레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라며 “그러나 비기축통화국의 무리한 통화 정책으로 화폐 자체가 사라지는 비극이 벌어진 사례는 있다”고 우려했다. 

과거 바이마르공화국, 짐바브웨, 베네수엘라 등은 MMT와 같은 정책을 썼지만 결과는 해당 화폐가 시장에서 사라지고 다른나라 화폐로 대체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유동성은 어려운 기업·가계 중심으로 최소한 푸는게 원칙이다. 무엇보다 중앙은행이 독립성을 포기한 행태를 보여 큰 일”이라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기축통화국인 미국 내부에서도 위험 신호가 들린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추가 발행한 광의통화(M2)는 5조달러(6000조원 이상) 규모로 단 4개월만에 15조달러에서 20조달러로 증가했다.

미국 달러 통화량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매년 1조달러 수준의 증가세를 보이다 코로나19를 만나 로켓처럼 상승하는 모습이다. 미제스연구소 안토니 뮬러 교수는 버냉키에서 파월 의장으로 이어지는 이같은 MMT 기조에 대해 “마구 찍어서 구매력을 상실할 것이 뻔한 화폐를 누가 보유하려고 하겠는가”며 “화폐를 빨리 물건으로 바꿔 갈아타는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코로나19 직후 수직상승 모습을 보이는 미국 통화량. [사진=미국연방준비제도]
코로나19 직후 로켓 상승 모습을 보이는 미국 통화량. [출처=미국연방준비제도]

국내 경제 상황을 보면 더 잘 맞아 떨어진다. 한은 통계를 보면 지난해 12월 약 2912조원 수준이던 일반통화(M1) 평균잔액은 2020년 4월 3019조원으로 100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M1이 3000조원을 돌파한 것은 한은이 통화·유동성 지표를 집계한 2001년 12월 이래 처음이다.

반면 통화량 수직 상승에도 불구하고 5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기대비 -0.3%로, 4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5%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유독 부동산과 주식시장에선 예외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의 2·20 부동산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전후로 풀려나온 돈은 비규제지역인 안산(8.68%), 군포(8.67%), 화성(8.61%), 인천 연수구(8.54%) 등으로 바꿔 갈아타기 바빴다.

주식시장에서도 ‘동학개미’(한국), ‘로빈후드’(미국)로 불리는 개인들의 주식투자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갈 곳 없는 돈이 바이오·비대면·배터리 등 성장주에 몰리더니, 삼성·SK·한화 등 대기업 계열사의 우선주가 연일 상한가를 치는 것도 특정자산 쏠림현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금융권 관계자는 “미국연준은 통화를 재매입하는 식으로 관리할 역량이 있지만 한국은 다르다. 중앙은행이 정부국채를 발행하는 대로 사들이면 화폐 자체가 빚(세금)이 되는 것”이라며 “또 빚으로 찍어낸 돈이 몰린 부동산과 주식시장마저 붕괴되면 나라 경제가 어떻게 될지 앞길을 내다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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