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를 꿰뚫어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대두됐다. 정부가 코로나19 극복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식의 경기 부양책은 내려놓아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따른다. [사진=서울시청]
한국 경제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를 꿰뚫어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대두됐다. 정부가 코로나19 극복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식의 경기 부양책은 내려놓아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따른다. [사진=서울시청]

[이뉴스투데이 유준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경제가 악화되자 세계 각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 예산은 물론 중앙은행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유동성을 풀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위해 1차 추가경정예산 9조9000억원 중 8조9000억원을 집행했고, 2차 추경으로 확보된 긴급재난지원금도 지급개시 한 달여 만에 13조6000억원을 2160만가구에 지급했다. 정부가 지닌 재정역량을 최대한 쏟아부어 코로나발 경제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처하겠다는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시재정을 편성한다는 각오’로 나랏돈을 최대한 풀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이같은 확대재정 기조를 내년까지 이어가기로 했다. 돈을 풀면 소비가 늘어 생산이 증가하면서 경기가 살아나고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자유주의 계열 주류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코로나19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식의 경기 부양책은 되레 더 큰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들은 일방향적 양적 완화 대책을 내려놓고 한국 경제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를 꿰뚫어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본지가 지난 4일 만난 경희대 경제학과 안재욱 명예교수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현행 포퓰리즘식 정책을 과감히 폐기하고, 경제 성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기업에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퍼붓기식 경기 부양책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코로나19는 커다란 경제 쇼크(shock)를 불러일으켰다. 경제가 순환하려면 경제 주체인 국민에 의한 ‘생산’과 ‘소비’가 활발히 이뤄져야 하는데 두 요소를 모두 마비시켜버렸다.

생산 위기는 중국의 서플라이체인(supply-chain)이 무너진 데서 초래됐다. 안 교수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중국에 반도체, 자동차, 기계 등 생산 공장을 두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생산의 연쇄 과정이 무너져버렸다”며 “1970년대 석유수출국들이 원유생산 감산을 결정하며 원유값이 급격하게 오른 오일쇼크 사태와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쇼크는 소비의 위기도 촉발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로 사람들이 집 밖 활동을 벌이지 않는 데다 정부가 락다운(이동제한) 규제를 시행하면서 소비를 일으킬 만한 요소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서플라이체인(생산)이 멈춰선 상황에서 소비 진작을 위해 퍼붓기식 경기 부양 정책을 쓰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생산 구조를 왜곡시키고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결과만 낳게 되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A라는 사람이 빵을 만들고 B라는 사람이 옷을 만들어 서로 화폐를 통해 교환을 해왔다고 가정해보자. 옷과 빵의 생산량은 그대로인데 돈만 많이 풀면 자연스럽게 옷과 빵의 가격이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돈을 풀었다고 해서 소비를 하지 않던 사람들이 갑자기 소비 활동에 나설 것이라는 생각도 착각에 불과하다. 최근 경제 지표가 살아나는 건 나랏돈을 풀어서가 아니고, 코로나가 진정됨에 따라 조금씩 생산망이 회복되고 소비가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을 담보할 수 없는 소비는 저축만 낭비한다. 저축이 줄어들면 결국 투자가 일어나지 않고 정작 미래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시점에 제약을 받는다.

안 교수는 “코로나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쇼크이기 때문에 경제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자금을 퍼붓는다고 이전 수준으로 경제를 살릴 수는 없다”며 “지금 정부가 할 일은 건실한 기업의 생산 구조가 무너지지 않을 정도까지만 서포트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코로나가 지나간 후 유지됐던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회생하면서 공급 체계도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뉴스투데이’와 만난 안재욱 교수가 코로나19 위기를 맞은 한국 경제의 타개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안경선 PD]
안재욱 교수가 지난 4일 ‘이뉴스투데이’와 만나 코로나19 위기를 맞은 한국 경제의 타개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안경선 PD]

한국형 뉴딜 정책 ‘포퓰리즘’ 지양해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기 회복을 위해 국가 프로젝트 ‘한국판 뉴딜’을 제안했다. 이 프로젝트는 디지털 기반 일자리 창출과 경제혁신 가속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디지털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SOC 디지털화 등 3대 프로젝트와 이에 맞춘 10대 중점 추진과제를 발표하고 향후 2~3년 동안 집중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안재욱 교수는 뉴딜 정책에 대해 “장기불황으로 가는 길”이라며 “단기에 끝날 불황을 장기화시키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안 교수는 한국형 뉴딜 정책을 입안한 자들이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과 뉴딜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가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벌인 대규모 국책 사업이 과도한 국세 낭비를 야기해 미국을 파산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그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 성공했다고 알고 있는데 뉴딜은 성공한 정책이 아니다. 주류 경제학자 중에 미국 뉴딜정책이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거의 없다”며 “대공황은 뉴딜로 극복된 것이 아니라 10여 년 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트루만 정부가 뉴딜 요소들을 걷어내기 시작하면서 차츰 회복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책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니 미국 정부가 세금을 올렸고 결과적으로 전 국민적 파산과 실업난을 촉발했다”며 “뉴딜 정책의 본질은 결국 돈만 풀겠다는 것으로, 생산성을 증대시키지 않고 포퓰리즘식으로 돈만 풀면 불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정부가 인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참가자 보호 ‘리스크’ 촉발

정부는 이달 초 35조3000억원 규모의 3차 추가경정예산안 중 23조8000억원은 적자국채 발행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올해 적자 국채발행 규모는 97조3000억원으로 급증해 작년(30조원)의 3배에 이르게 됐다. 홍남기 부총리는 “3차 추경은 불가피하게 편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대부분은 적자국채 발행으로 충당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은 역시 유동성 대책 시행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면서도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처럼 특수목적법인(SPC)를 세워 회사채 매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을 거론했다. 한은은 나아가 발권력을 동원해 10조원 이상의 국고채 매입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안재욱 교수는 한은의 회사채 매입에 대해 “중앙은행의 역할은 시장에 돈이 잘 돌도록 유동성을 공급해 건실한 기업이 파산하지 않을 정도까지로 그 이상으로 가면 금융시장에 혼란만 초래한다”며 “국가와 중앙은행이 회사채를 매입하거나 보증을 서는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지고 거대한 리스크를 떠앉게 된다”고 지적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했던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금융기관의 개입으로 도덕적 해이를 나은 대표적인 사례다.

안 교수는 “당시 도덕적 해이를 낳고 증폭시킨 것이 바로 미국 정부의 주택정책과 금융기관에 대한 보호와 지원이었다”며 “미국 정부는 은행으로 하여금 저소득층에 대한 모기지 대출을 장려하고 정부보증기관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으로 하여금 서브 프라임 모기지를 구입하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정부를 믿고 서브 프라임 모기지를 대거 사들였다. 주택 가격이 폭등하면서 대출을 못 갚아도 담보인 주택을 오히려 팔면 더 돈이 된다는 생각으로 신용불량자나 돈을 갚을 능력이 거의 없는 사람들까지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들였다. 하지만 이후 집을 살 사람이 줄어들자 집값은 폭락했고, 집으로 대출을 갚을 수 없자 서브프라임 대출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파산한다. 결국 대규모 부채가 촉발된 결과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됐다.

反기업주의 내려놓고 기업 장려 정책 펴야

안재욱 교수는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고 경제 성장을 일구기 위해서는 정부가 반(反)기업 정서를 내려놓고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코로나로 내리막길로 치달은 한국 경제는 코로나가 진정되면서 일정 수준으로 회복되게 돼있다”며 “여기서 더 치고 올라가려면 기업 활동을 장려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놔야 한다. 경제 성장의 본질인 생산은 결국 기업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항공‧조선‧해운‧철강 등 각종 산업에 예산을 풀고 있는데 한국 경제가 뒷걸음치고 있는 이유는 생산 환경을 개선해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계속해서 기업 환경을 악화시키는 정책만 썼다. 안 교수는 “소득주도성장 기조 아래에서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 근무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기업 환경을 악화시켰다”며 “반기업·반재벌 정서를 조장하고 국민연금으로 기업을 통제하며 기업을 압박하는 처사가 과연 국가 경제에 어떤 이익이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정부가 2014년부터 관련 법을 재정해 리쇼어링 정책을 꾸준히 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7년간 해외 사업장을 보유한 국내 대기업 중 1곳만 유턴했다.

안재욱 교수는 국내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그는 “강성노조가 껄떡하면 시위하고 파업하는 환경에서 보조금 조금 올려준다고 어떤 기업이 남아 있겠느냐”며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주장했다. 

법인세율 문제도 심각하다. 안 교수는 “오른쪽 주머니에 10만원이 있는데 그대로 왼쪽 주머니로 옮긴다고 가정해보자”며 “우리나라에서 법인세를 징수하면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10만원이 왼쪽으로 옮겨가는 순간 7만원 밖에 안 남는 구조”라고 비유를 들었다. 세금을 걷어 관리하는 비용의 지출과 세금이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민간이 갖고 있는 것에 비해 비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다.

안 교수는 오너경영인에 대한 불신과 선입견을 내려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도 주장했다. 기업의 지배구조는 특정한 정답이 없으며, 기업가치를 높이는 가능성을 가진 지배구조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그는 “외부인사를 영입하는 전문경영인 체제는 대리인 문제(Agent problem)를 수반하기 마련”이라며 “오너경영인과 전문경영인을 놓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어떤 것이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지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재욱 교수가 지난 4일 ‘이뉴스투데이’와 만나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안경선 PD]
안재욱 교수가 지난 4일 ‘이뉴스투데이’와 만나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안경선 PD]

안재욱 교수는?

1954년 출생으로 경희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경희대학교 경제학과에서 화폐경제론을 가르쳤다.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하며 자유주의 경제사상 전파에 매진해왔으며 현재는 자유기업원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매주 유튜브 채널 <자유기업원의 경제 강좌 시리즈 [안재욱 랜선경제]>를 통해 경제 현안을 다루며 국민과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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