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마트 라면 매대에서 소비자가 라면을 고르고 있다. [사진=안경선 기자]
19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마트 라면 매대에서 소비자가 라면을 고르고 있다. [사진=안경선 기자]

[이뉴스투데이 최은지 기자] 식품업계는 올 한해 험난한 경영 환경에 맞닥뜨렸다. 고물가 기조에 정부가 식품업계에 물가 안정 동참을 요구해, 기업의 가격 결정권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이에 기업들은 국내 대비 자유롭게 사업을 전개할 수 있는 해외 시장을 돌파구로 찾아나섰다. 

12일 통계청이 발표한 11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2.74로 전년 동기 대비 3.3% 상승했다. 올해 6~7월 2%대로 떨어졌던 물가 상승률이 8월(3.4%)·9월(3.7%)·10월(3.8%)에 이어 4개월째 3%대에 머문 셈이다. 

이처럼 고물가 기조가 계속되자, 정부는 식품업계를 예의주시했다. 기업 차원에서 소비자 부담 완화에 동참, 가격 인상을 자제하라는 게 정부의 요청이다. 

먼저, 지난 2월에는 소주와 맥주 가격이 도마 위에 올랐다. 소주는 주정(에탄올)과 소주병 등 원·부자재 가격 등의 가격 인상 요인이 있었고, 맥주는 세금 인상 폭이 전년 대비 커져 출고가를 높일 예정이었다. 

그러나 주류업계가 가격 인상 움직임을 보이자,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접 주류업계에 가격 인상 자제를 촉구했다. 여기에 국세청은 주류 업체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어 압박 수위를 높였고 결국 업계는 가격 인상 방침을 철회했다.

6월에는 라면업계가 주목받았다. 추 부총리가 국제 밀 가격이 하락했는데, 라면 가격도 내려야 하지 않겠냐고 언급한 것이다. 이후 라면업계는 밀이 아닌 밀가루를 취급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밀을 가공해 밀가루를 만드는 공급사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제분업체들을 불러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하며 압박을 이어갔다. 

그 결과, 라면·제분 업계는 5% 안팎 가격 인하를 결정했다. 농심은 7월을 기점으로 신라면과 새우깡의 가격을 내렸고, 삼양식품과 오뚜기, 팔도도 가격 인하 행렬에 동참했다. 이후 롯데웰푸드, 해태제과 등 제과업계도 일부 제품의 가격을 내렸다. 

다음으로는 유업계가 정부의 간담회에 초청됐다. 10월부터 흰 우유와 발효유 등 신선 유제품에 사용되는 원유 기본 가격이 올랐는데, 기업이 우유 제품 가격에 이를 반영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불러 물가 안정 동참을 요청한 것이다.

이에 유업계는 가격을 4~6% 수준 올렸지만, 평년 대비 낮은 폭으로 인상했다. 지난해는 원유 기본 가격이 ℓ당 49원 올라 흰 우유 제품이 10% 인상된 반면, 올해는 ℓ당 88원으로 2배가량 올랐지만 인상률이 지난해 대비 절반 수준에 멈췄다. 

정부와 대형마트·중소유통 업계는 대형마트 등의 영업 제한 시간이나 의무 휴업일에도 온라인 배송이 허용될 수 있도록 공동 노력키로 했다. 그러나 관련법안은 아직도 계류 중이다.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정부와 대형마트·중소유통 업계는 대형마트 등의 영업 제한 시간이나 의무 휴업일에도 온라인 배송이 허용될 수 있도록 공동 노력키로 했다. 그러나 관련법안은 아직도 계류 중이다.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러한 정부의 물가 안정 요청은 점차 적극적으로 변하는 모양새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는 물가 관리를 위해 빵, 우유 등 28개 품목 가격을 매일 점검하면서 여러 식품 기업을 찾아 물가 안정 정책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에 제품 가격 인상을 공지했다가, 시행하기 직전에 이를 철회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일례로, 오뚜기는 이달부터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카레와 케첩 등 주요 제품 24종의 가격을 인상하기로 했다가 철회했다. 

당초 오뚜기는 지난해부터 원부자재 가격 인상 등 원가 인상 요인이 발생했으나, 가격을 올리지 않다가 뒤늦게 반영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가격 인상 소식이 전해진 이후, 한나절 만에 오뚜기는 가격 인상을 철회했다.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동참하겠다 게 이유다.

이를 시작으로 가격 인상 철회 소식은 수차례 이어졌다. 풀무원은 편의점에 그래놀라 등 제품 3종의 가격을 이달부터 100원 인상하겠다고 밝혔으나, 마찬가지로 가격 인상을 번복했다. 

롯데웰푸드도 이달부터 편의점 CU에서 파는 빅팜을 2000원에서 2200원으로 10% 올리기로 한 결정을 거둬들였다. 또 롯데웰푸드는 GS25에서 지난 9월부터 해당 제품 가격을 동일한 인상률을 적용해왔기에, GS25에서의 판매 가격도 2200원에서 2000원으로 다시 내렸다. 동아오츠카 역시 비타민 음료 컨피던스의 편의점 판매 가격을 인상하지 않기로 했다. 

단 올 초부터 가격 인상 요인을 눌러왔던 주류업계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앞서 오비맥주는 10월 카스와 한맥 등 주요 맥주 제품의 공장 출고가를 평균 6.9% 인상했고, 하이트진로도 11월 소주 브랜드 참이슬 후레쉬·오리지널 출고가를 6.95%로, 테라와 켈리 등 맥주 제품 출고가도 평균 6.8% 올렸다.

19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라면이 진열돼 있다. [사진=안경선 기자]
19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라면이 진열돼 있다. [사진=안경선 기자]

◇식품업계, 돌파구는 ‘해외 시장’

이처럼 한 해 동안 이어진 정부의 물가 안정 압박에 식품업계는 국내에서 다소 어려운 경영을 이어갔다. 원재료를 포함해 인건비, 물류비 등이 올라가는 데 제품 가격은 올릴 수 없는 상황이 경영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에선 해외 시장을 돌파구로 찾았다. 보다 자유로운 해외 시장에서 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실적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특히 해외 시장은 K-컬쳐, K-팝의 영향으로 한국 제품에 대한 호응이 높다는 평가다. 

먼저 농심은 연결 기준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03.9% 증가한 557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매출은 8559억원으로 5.3% 늘었고, 순이익 또한 76.9% 증가한 500억원이다. 

농심 관계자는 “미국, 중국 등 해외법인의 영업이익이 약 200억원이다, 국내 법인의 수출 이익을 합산하면 3분기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해외 사업에서 거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농심은 미국 사업의 성장세에 주목, 이르면 2025년 미국 3공장 착공한다는 계획이다. 

삼양식품의 3분기 영업이익은 43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24.7% 늘었다. 매출은 3352억원으로 분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삼양식품 또한 해외 사업이 실적을 견인했다. 전체 매출의 약 72%인 2398억원이 해외 사업에서 발생한 것이다.  삼양식품 또한 불닭볶음면 등 주요 제품의 수출 증가세에 힘입어 2025년 밀양에 2공장을 추가로 짓기로 했다.

오뚜기는 3분기 영업이익이 83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87.6% 증가했고, 매출은 9087억원으로 10.6% 늘었다. 오뚜기의 경우 아직 해외 매출 비중이 10% 수준으로 낮지만, 최근 김경호 전 LG전자 부사장을 글로벌사업본부장(부사장)으로 영입하는 등 해외 사업을 강화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라면업계 외에도 여러 식품기업이 호실적을 냈다. 롯데웰푸드의 3분기 영업이익은 80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40.9% 증가했다. 다만 매출은 1조 865억원으로 1.5% 감소했다. 현재 롯데웰푸드의 해외 매출은 전체에서 19.4%를 차지하는데, 오는 2027년까지 30% 이상으로 늘린다는 게 사 측의 계획이다.

오리온은 3분기 영업이익이 140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6% 증가했다. 매출은 7663억원으로 3.4% 소폭 늘었다. 3분기 영업이익 중 1000억원 정도가 해외에서 나왔다. 특히 중국 법인 영업이익이 727억원으로 22.0% 증가했다.

빙그레는 3분기 영업이익이 65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53.9% 증가했다. 매출은 4342억원으로 11.2% 증가했고, 순이익은 529억원으로 162.4% 늘었다. 빙그레 관계자는 “수익성이 높은 해외 사업에서 20% 이상 성장을 이어가며 매출과 수익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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