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식품업계와 수차례 간담회를 진행,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 입장에선 권고이지만 기업 입장에선 강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이뉴스투데이는 현 정부의 시장 가격 개입 상황과 과거 비슷한 사례로 언급되는 MB 물가와 그 결과, 그리고 더욱 어두워진 하반기 물가 전망까지 3회에 걸쳐 살펴본다. - 편집자 주
19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마트 라면 매대에서 소비자가 라면을 고르고 있다. [사진=안경선 기자]
서울의 한 대형마트 라면 매대에서 소비자가 라면을 고르고 있다. [사진=안경선 기자]ㅑ

[이뉴스투데이 최은지 기자] 시장 경제에서 재화와 서비스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수요·공급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가격은 상승하고,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가격이 하락한다. 즉, 수요와 공급의 영향 하에 제품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보이는 손이 등장했다.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면서 정부가 식품업계를 예의주시하면서다. 가격 인상을 자제하라는 게 정부의 입장으로, 이를 통해 기업 차원에서 소비자 부담 완화에 동참하라는 것이다. 

이에 식품업계는 정부의 권고 아닌 권고를 받아들이면서도, 이대로 버티기만 하는 건 정답이 아니라고 토로하고 있다. 가격이 오를 이유만 있는데 인상을 자제하는 것 자체가 기업을 위기에 빠트린다는 이유에서다. 

농식품부가 식품업계 물가안정 간담회를 20일 진행했다. [사진=농식품부]
농식품부가 식품업계 물가안정 간담회를 20일 진행했다. [사진=농식품부]

◇정부, 식품업계와 간담회···“가격인상 자제해달라”

2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는 지난 20일 한훈 차관 주재 하에 16개 식품업체들과 만나 물가 안정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간담회의 핵심은 물가 안정에 적극 협조해달라는 것이었다. 한 차관은 모두 발언을 통해 “지난 9월 소비자물가는 3.7%로 8월(3.4%)부터 다시 상승하고 있고, 가공식품 물가도 9월 기준 5.8%로 전체 물가 상승률 대비 여전히 높다”며 “기상 이변으로 농작물 작황이 별로 좋지 않고,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등 여러 대외여건이 물가 불안을 재차 자극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원유 가격 인상에 따른 ‘밀크플레이션’에 대한 소비자 걱정이 크다”면서 “일부 원료 가격 상승에 편승한 부당한 가격 인상을 자제하고, 경영효율화를 통해 원가부담을 흡수하는 등 물가 안정에 적극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러한 정부의 물가 안정 ‘협조’ 요청은 올해 꾸준히 이어져왔다. 일례로, 지난 2월에는 소주와 맥주 가격이 도마 위에 올랐다. 주류업계가 가격 인상 움직임을 보이자,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업계에 가격 인상 자제를 촉구했다. 여기에 국세청은 주류 업체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어 압박 수위를 높였고 결국 업계는 가격 인상 방침을 철회했다.

6월에는 라면업계가 타깃이 됐다. 추 부총리가 국제 밀 가격이 하락했는데, 라면 가격도 내려야 하지 않겠냐고 언급한 것이다. 특히 그는 “기업들이 밀 가격이 하락한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 정부가 일일이 원가 조사해 가격을 통제할 수는 없으니 소비자 단체가 압력을 행사하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정부가 가격 통제를 못한다고 언급했으나, 사실상 정부 차원에서 기업에 가격 하향 조정을 요구한 셈이다.

이후 라면업계는 기업에서 밀이 아닌 밀가루를 취급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국제 밀 가격이 하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가공해 밀가루를 만드는 공급사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 정부는 제분업체들을 불러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했다. 밀가루 가격에 밀값 하락분을 반영해달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또한 제분업계에는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당시 제분업계 관계자는 “인건비와 물류비, 에너지 비용 등이 늘면서 제분업계의 원가 부담은 오히려 가중됐다”라며 “원맥의 수입 시기와 밀가루 생산 시기도 다르다. 지금 생산되는 밀가루는 원맥 가격이 폭등했던 시점에 구매한 것이다. 살 때는 비싸게 샀는데, 팔 때는 저렴하게 파는 게 말이 되나”라고 토로했다. 

그 다음으로는 유업계가 정부의 간담회에 초청됐다. 이달부터 흰 우유와 발효유 등 신선 유제품에 사용되는 원유 기본 가격이 올랐는데, 기업이 우유 제품 가격에 이를 반영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해당 간담회 또한 핵심 내용은 “유제품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였다. 

서울 시내 한 마트에서 우유를 고르는 시민.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마트에서 우유를 고르는 시민. [사진=연합뉴스] 

◇결국 가격은 멈췄는데···기업 ‘가격 결정권’은 어디로

이러한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은 올해 식품기업들의 가격 인상 소식을 줄이는 데 한몫했다.

먼저 라면·제분 업계는 5% 안팎 가격 인하를 결정했다. 농심은 7월을 기점으로 신라면과 새우깡의 가격을 내리기로 했고, 삼양식품과 오뚜기, 팔도도 가격 인하 행렬에 동참했다. 이후 롯데웰푸드, 해태제과 등 제과업계도 일부 제품의 가격을 내렸다. 

유업계의 경우, 가격이 4~6% 수준 올랐지만 평년 대비 낮은 폭으로 인상됐다. 지난해는 원유 기본 가격이 ℓ당 49원 올라 흰 우유 제품이 10% 인상된 반면, 올해는 ℓ당 88원으로 2배가량 올랐지만 인상률이 지난해 대비 절반 수준에 멈췄다. 

다만, 정부 주도의 가격 인상 제동이 언제까지 긍정적인 결과를 보일지는 미지수다. 기업의 가격 결정권이 약화되면, 기업은 수익성 회복을 가격 변동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이 경우 신제품 개발에 대한 투자 금액이 줄어들 거나, 심할 경우엔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가격 인하 요인, 인상 요인이 있을 때마다 특정 기업들을 불러 물가 단속에 나서고 있다”면서 “최근엔 전방위적으로 물가 안정 협조를 요청하면서 점차 압박 수위가 강해지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 입장에선 원재료 값이 오르면, 그 인상분의 일부를 제품 가격에 반영하면서 실적을 방어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걸 못하게 정부가 꽉 막고 있는 셈”이라며 “이런 흐름이 지속되면 기업은 실적 악화를 피할 수 없고, 사업에 투자하기 힘든 환경이 된다. 결국 소비자의 불편함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는 “고물가 기조는 소비자뿐 아니라, 기업도 겪고 있는 현상이다. 기업도 원재료를 구매하고 이를 가공해서 판매하는 위치라는 걸 잊어선 안된다”라며 “또 식품기업을 불러다가 정부가 간담회를 지속하는 것은 자칫하면 소비자가 고물가의 원인을 식품업계로 보는 부정적 프레임을 씌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여러분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소비자 고발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메일 : webmaster@enewstoday.co.kr

카카오톡 : @이뉴스투데이

저작권자 © 이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