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최은지 기자] 최근 정부가 수차례 물가 안정 협조를 강조하면서 식품업계가 혼돈을 겪고 있는 모양새다. 제품 가격 인상을 공지했다가, 시행하기 직전에 이를 철회하는 사례가 연이어 나타난 것이다. 

다만 기업이 원가 압박을 인내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소비자가 맞이할 부작용은 더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오뚜기는 이달부터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카레와 케첩 등 주요 제품 24종의 가격을 인상하기로 했다가 철회했다. 

당시 오뚜기는 지난해부터 원부자재 가격 인상 등 원가 인상 요인이 발생했으나, 가격을 올리지 않다가 뒤늦게 반영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시장 상황과 유통 유형별 상황이 있어 인상 시기가 늦춰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격 인상 소식이 전해진 이후, 한나절 만에 오뚜기는 가격 인상을 철회했다.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동참하겠다 게 이유다. 오뚜기는 “카레와 케첩 등 제품 24종 가격을 올릴 예정이었으나 이를 철회하기로 했다”며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 속에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민생 안정에 동참하고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시작으로 가격 인상 철회 소식이 줄줄이 이어졌다. 풀무원은 편의점에 그래놀라 등 제품 3종의 가격을 이달부터 100원 인상하겠다고 밝혔으나, 마찬가지로 가격 인상을 번복했다. 

같은 날 롯데웰푸드도 이달부터 편의점 CU에서 파는 빅팜을 2000원에서 2200원으로 10% 올리기로 한 결정을 거둬들였다. 또 롯데웰푸드는 GS25에서 지난 9월부터 해당 제품 가격을 동일한 인상률을 적용해왔기에, GS25에서의 판매 가격도 2200원에서 2000원으로 다시 내릴 계획이다. 

또 동아오츠카 역시 비타민 음료 컨피던스의 편의점 판매 가격을 인상하지 않기로 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오후 서울 이마트 용산점에 방문해 주요 품목 물가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오후 서울 이마트 용산점에 방문해 주요 품목 물가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날선 시선, 식품가에는 큰 부담으로

이 같은 인상 철회 결정의 배경에는 정부의 물가 안정 압박이 컸다는 평이다. 최근 정부가 국내 주요 식품업체들의 현장을 찾으며 가격 안정화를 요청하고 있는 만큼, 가격 인상 철회를 검토할 필요성이 제기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는 물가 관리를 위해 빵, 우유 등 28개 품목 가격을 매일 점검하면서 여러 식품 기업을 찾아 물가 안정 정책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일례로, 김정욱 축산정책관은 지난 28일 아이스크림 업계 대표기업인 빙그레의 논산공장을 찾았다. 빙그레는 올해 초와 지난 10월 원부자재 조달 비용 증가, 인건비 상승 등을 이유로 메로나, 투게더 등의 아이스크림 가격을 올린 바 있다. 이에 김 정책관은 현장에서 “업계 선도 업체인 빙그레도 아이스크림 가격안정에 적극 협조해 달라”고 당부했다.

양주필 식품산업정책관도 같은 날 식재료 유통기업 CJ프레시웨이 본사를 찾아 주요 식재료 가격을 점검했다. 양 정책관은 “지금은 물가 안정을 위해 모두의 협력이 절실한 시기”라고 강조하며 “업계 차원의 원가절감, 경쟁력 강화 등을 통한 식재료 가격 안정 노력에 협조해달라”고 말했다.

또 지난 30일에는 권재한 농업혁신정책실장이 오리온 본사를 찾아 물가 안정 정책에 협조를 요청했다. 권 정책실장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가공식품 물가 안정을 위해 민․관이 함께 협력하자”고 요청했다. 이에 오리온은 “내년 가격 인상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는 후문이다. 

19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마트 라면 매대에서 소비자가 라면을 고르고 있다. [사진=안경선 기자]
19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마트 라면 매대에서 소비자가 라면을 고르고 있다. [사진=안경선 기자]

◇ 풍선 효과, 한 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푼다

이러한 상황 속에 식품업체들의 속앓이는 심해지고 있다. 원가 부담을 그대로 감내해야 하는 데다, 가격 인상에 대한 분위기 자체가 갈수록 엄중해지고 있어서다. 즉, 원가 부담을 감내하며 ‘착한 기업’으로서 시간을 보내도 결국엔 가격 인상이라는 카드를 꺼내야 하는데, 이 경우 ‘악덕 기업’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물가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내년 초까지도 가격 인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언젠가는 가격 인상을 단행해야 하는 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힘들다. 급기야는 가격 인상을 선제적으로 단행한 기업이 부럽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이에 내년 4월에 예정된 총선을 기점으로 도미노 가격 인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특히 인상 요인이 누적된 만큼 인상 폭과 그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지금이 아니면 올릴 수 없다”는 판단하에 선제적인 가격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압박을 우려해 미래 가격 인상 요인을 선반영하는 것이다. 

실제 이러한 사례는 과거 MB정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 MB정부는 현 정부의 물가 억누르기 방식과 가장 비슷한 길을 걸었다는 평을 받는다. 물가 안정을 국가적 과제로 설정하고 생활필수품 52개 품목을 집중 관리는 하는 ‘MB물가지수’를 도입했던 것이다. 

그 결과, MB 정부 말기인 2012년 12월~2013년 1월에 대부분의 식품업계가 가격 인상 소식을 전했다. 밀가루·소주·간장·고추장·두부 등 대부분의 식료품 가격이 뛰었고, MB 임기 동안 가격을 올리지 못한 것을 반영하면서 인상률도 컸다. 

또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는 “가격 인상이 계속해서 억제되면, 풍선효과가 내년 총선 이후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 경우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시장가격을 시장 환경, 공급 및 수요에 따라 변동되게 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러한 풍선효과는 이미 조금씩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가격은 그대로 두고 제품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이 대표적 현상이다. 

이와 관련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가격 인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제품 용량을 줄여서라도 손실을 최소화하는 게 기업 입장에선 하나의 해결책이다”라며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제재도 언급되고 있는데, 사실상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에게 알리라는 게 핵심이다.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이를 준수하면서 용량을 줄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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