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기자는 미국 대선 하루 전 언론계 선배인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주필과 점심 식사를 같이 했다. 식사 중 정 주필의 핸드폰에 SNS 메시지가 들어왔다. 미국에 있는 정 주필의 지인이 보낸 메시지였다. 그는 트럼프 선거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한인 교포였다. 캠프가 자체 실시한 최종 판세 분석에서 선거인단 310명 확보로 트럼프의 승리가 확실시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 때까지의 ‘클린턴 대세’ 전망과는 너무 달라 신빙성이 약해 보였다. 캠프의 기대가 반영된 조사 결과려니 싶었다. 그런데 정 주필 얘기로는 같은 이로부터 이틀 전에는 ‘클린턴에 비해 20명 정도 뒤져 낙선이 예상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설명을 듣고 나니 메시지 내용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겠다 싶었다. 트럼프 캠프가 그만큼 냉정하게 판세를 분석해 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기자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다른 이들보다 덜 놀란 것은 이렇게 미리 ‘예방 주사’를 맞았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실 이전에도 트럼프의 승리를 예상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았다.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위원 같은 이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6월 모 매체에 기고한 ‘우리가 전혀 모르는 트럼프 이야기’라는 글에서 대선 주자로서 트럼프의 강점을 조목조목 열거했다. 이 글에 의하면 트럼프는 그저 유력 후보가 아니라 당선 확률이 86~99%에 이르는 강력한 후보라는 것이다. 이 확률은 미국 뉴욕대학의 헬무트 노스 교수가 지난 104년 동안의 미국 대선 결과를 갖고 만든 ‘프라이머리 모델’을 가동해 산출한 수치였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이춘근 위원의 글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대신 사람들은 이번 대선을 ‘미친 X(트럼프)과 나쁜 X(클린턴)의 대결’ 식으로 희화화 하며 '결국은 클린턴이 승리하지 않겠나'라는 전망 쪽으로 기울었다.

그런데 실은 미친 X과 나쁜 X의 대결이라는 프레임이 진실이라면 더더욱 트럼프의 승리를 예측했어야 옳다. 중요 이슈에서 나쁜 X은 늘 나쁜 결정을 내리는데 비해 미친 X은 좋은 결정을 내릴 확률이 그래도 50%는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미친 X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이는 웃자고 하는 얘기고 실제로 미국 유권자들이 이런 기준으로 투표했을리는 없다.

어쨌거나 이제 파티는 끝났다. 선거의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트럼프 쇼크니 트럼프 패닉이니 하는 소리들도 곧 잦아들 것이다. 선거 직후 급락했던 글로벌 증시가 이튿날 곧바로 반등세를 보인 것도 트럼프 쇼크 등의 수사가 과장된 측면이 있음을 말해 준다.

따라서 지금은 선거 결과를 놓고 패닉이니 쇼크니 호들갑만 떨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보다는 앞으로 트럼프가 지향해 나갈 아메리카 퍼스트 독트린에 차분히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우리가 놓치고 보지 못했던 트럼프의 진면목을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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