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승준 기자] 5~6월을 달궜던 간호법 사태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든 듯해 보이나 간호사들은 여전히 병원에서 소모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간호법 취재를 위해 여러 명의 간호사와 연락했다. 그중에는 중견 현직 간호사도 있었고 1년도 되지 않아 그만둔 전직 간호사도 있었다. 경력은 각각 달랐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간호사들은 병원에서 ‘갈아쓰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3일 전국보건의료노조가 개최한 ‘의료인력 부족이 환자 안전과 의료 질에 미치는 영향 증언대회’에 참석한 간호사들도 하나같이 입 모아 말했다.

신규 간호사 A씨는 “퇴근 시간은 2시간이 훌쩍 넘기 일쑤이며 피로를 풀지도 못한 채 똑같은 하루를 되풀이하기 위해 출근길에 오른다”라며 “붕대, 방수밴드와 다름없는 소모품 같은 하루를 보내지만 우리는 채워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7년간 간호사로 일한 B씨도 비슷한 입장을 전했다. 그는 “입원환자 16명에 대한 검사, 수술, 응급상황, 입원, 퇴원, 컴플레인 대응, 필수 기록 업무 등을 동시에 진행했다”라며 “퇴근하고 나면 다리가 머리카락처럼 흐물거렸다”라고 회상했다.

간호사는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역할을 한다. 병원이 24시간 입원 환자를 돌보기 위해서는 간호사들의 교대근무가 불가피하다.

근무 형태는 3교대가 제일 흔하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의 3교대 비중은 50% 수준이나 우리나라에서는 82%에 달한다. 이러한 근무 강도는 간호 인력 유출로 이어진다. 높은 근무 강도를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간호사들의 증언이 이를 방증한다.

문제는 이것이 악순환의 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고강도 업무에 지쳐 떠난 간호사가 고연차라 하더라도 그 자리는 신규 간호사로 채워진다. 신규 간호사에게는 업무 적응 시간이 필요하지만 현장에서는 그럴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신규 간호사에게 처음부터 고강도 업무가 주어지니 버티기가 어렵고, 퇴사해도 제2의 신규, 제3의 신규로 채워질 뿐이다. 의료계에서도 이것이 의료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에 정부에서는 PA·교대제 개선 등 간호사 근무여건에 힘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제2차 간호 인력 지원 종합 대책’을 통해 교대제 개선 시범 사업을 조기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간호사들에게 와닿는 바는 많지 않다.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이것이 ‘간호법 폐기 달래기’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나오는 형국이다.

의료계 동료들의 인식도 간호사들을 떠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대한의사협회는 3일 간호법 저지 비상대책위원회 해단식을 개최했다. 그러면서 간호법 폐기를 성과라며 자축했다. 병원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조차 이렇게 생각하는 상황 속에서 간호사들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간호사들이 아무리 소리쳐도 여전히 간호사들은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 병원에서 환자와 가장 가까이하는 존재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소모에는 한계가 있다. 조기퇴사·해외취업 등으로 이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실질적인 인식부터 바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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