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대담 김정규 IT과학부장·정리 이승준 기자] 모든 산업기술 영역의 기초가 되는 정밀과학은 이제 디지털 컴퓨터 시대에서 쓰임을 넘어 나노테크놀로지로 들어섰다. 핵심이 되는 데이터 집적 단위도 이제 10억분의 1미터인 나노미터(㎚)까지 작아지더니 10억을 뜻하는 기가(G)와 1조를 뜻하는 테라(T)를 넘고 있다. 기술의 핵심에는 과학이 있고 기술의 무한함은 기초과학의 중요성과 함께한다. 이 중심에 양자나노과학이 있다. 지금의 디지털로도 불가능한 미래 기술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자연의 원리를 설명하는 ‘양자’ 개념은 물리학의 세계에서 실생활로 넘어오며 양자나노 기술 적용이 가져올 기대 효과에 관심이 집중된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화여자대학교 양자나노과학연구단(QNS)에서 주한스위스대사관과 공동으로 ‘한-스위스 양자과학기술 포럼’을 개최, 양자과학기술 협력을 도모했다. 1월 윤석열 대통령이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에서 가진 ‘양자석학과의 대화’의 후속조치로 오태석 과기정통부 1차관이 참석하며 주목을 받았다. 양국의 양자나노연구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기초과학연구원(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장(이화여대 석좌교수)을 지난 1일 연구단장 집무실에 만나 양자나노연구의 현재와 미래를 들어봤다. 통역은 김선희 연구단 대외협력팀장이 맡았다. [편집자주]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양자나노과학연구단 단장. [사진=이승준 기자]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양자나노과학연구단 단장. [사진=이승준 기자]

[이뉴스투데이 대담 김정규 IT과학부장·정리 이승준 기자] “연구단이 지금 이 모습으로 세워진 데 굉장히 자랑스럽고 기쁘게 생각한다. 세계 어디를 가서 보더라도 여기만큼 잘 채워진 곳이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어려운 과정이었고 도전적인 순간들이 많았지만 잘 극복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양자나노과학연구단(QNS) 단장은 그동안 활동을 이같이 요약하며 인터뷰의 서두를 열었다.  

QNS는 2017년 출범한 기초과학연구단(IBS) 산하 외부연구단이다. 표면 원자단위 양자효과 제어 분야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목표 아래 IBS에서 수행한 첫 5개년 성과평가에서 최고등급을 받는 등 해당 분야에서 주도권을 확보해 가고 있다. 

이어진 우리나라의 양자나노과학 연구를 글로벌 수준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질문에 그는 냉철한 진단을 서슴지 않았다. “양자 분야는 크게 양자과학과 양자컴퓨팅으로 나눌 수 있다. 양자컴퓨팅에 국한해 얘기하자면 미국과 중국이 양대 산맥을 이루는 가운데 유럽이 쫓아가고 우리나라는 많이 뒤처진 수준이다. 여기엔 현실적으로 한국이 본격적으로 투자하지 않은 면도 있다”면서 “양자나노과학은 양자과학의 하위분야이자 양자과학과 나노과학의 교집합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분야에 한해서는 우리가 리딩(Leading) 센터다. 현재 양자과학 그 자체로 미국·중국을 따라잡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양자과학의 특정 분야에서 선두 주자가 된다면 그것을 토대로 더 영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했다. 

이어진 스위스의 레벨에 대해서는 “초전도체 양자컴퓨팅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다. 스위스는 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생소한 개념으로 분류되는 양자컴퓨팅을 쉽게 설명해줄 수 있는지 궁금했다. “일반 컴퓨터, 메모리, 텔레비전 등은 비트로 정보를 통신한다. 비트는 0과 1 중 한 가지 상태로 저장·연산한다. 양자컴퓨팅은 비트 대신 큐비트를 사용한다. 여기서 큐비트가 퀀텀 비트, 즉 양자비트”라며 “큐비트는 0과 1뿐 아니라 그 사이 상태로도 저장할 수 있어 가질 수 있는 양이 훨씬 많다. 정보 저장량과 연산 속도가 일반 비트보다 훨씬 높다”고 설명했다. 

학계에서는 일반 컴퓨터에서 10억 개의 비트가 요구되는 연산을 양자컴퓨터로는 100개의 비트로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로 계산할 수 있는 분야는 제한적이다. 양자컴퓨터가 활용될 수 있는 계산·알고리즘이 별도로 존재하기 때문. 

하인리히 단장은 “양자컴퓨터가 일반컴퓨터를 대체하는 건 아니다. 학계에서는 10년 후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더라도 일반컴퓨터가 못하는 것들을 양자컴퓨터가 담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를테면 그래픽 분야의 어려운 시뮬레이션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양자컴퓨터가 현재 컴퓨터의 진화 또는 대체물이 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컴퓨터가 이미 하고 있는 일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컴퓨터가 못하는 일을 새롭게 개척한다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양자컴퓨터의 활용성에 대해서는 조심스런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당장 확정적으로 예측할 순 없다. 하지만 제약 분야에서 분자의 모양·성질 시뮬레이션을 양자컴퓨팅에서 활용할 여지가 있다. 분자 자체가 양자학적 성질을 가지고 있어 일반컴퓨터로는 계산하기 힘들기 때문”이라며 “제약에서 쓰이는 분자는 분자 하나하나가 꽤 큰 편이다. 그래서 그 큰 분자들 각각의 원자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큐비트로 계산하면 더 잘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분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 그것이 신약개발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하지만 아직 실현하기에는 가야 할 길은 멀다”고 전망했다.   

이어 “우리 연구단에도 분자의 상호작용·성질을 계산하는 팀이 있다. 우리 팀은 현재 일반컴퓨터로 계산하지만 양자컴퓨터가 갖춰진다면 더 큰 분자를 시뮬레이팅해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며 “컴퓨터로 풀기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이동경로의 최적화다. 양자컴퓨터는 그 특성상 그런 계산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비즈니스를 예로 들자면 영업사원의 이동경로 최적안 또는 물류 시스템 시뮬레이션 등이 해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자컴퓨터의 생산성에서는 ‘큐비트’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물론 양자컴퓨터의 생산은 기업의 몫이다. 우리는 그들이 참고할 수 있는 근본적인 기초연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실마리는 주는 것이다. 지금 양자컴퓨터의 흐름이 이미 공학으로 많이 넘어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큐비트를 만들 수 있나’,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큐비트를 만들 수 있나’와 같은 접근이 강세를 띤다”며 “하지만 양자컴퓨터 역사가 워낙 짧아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그 큐비트가 과연 최선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조차 없는 상황이다. 이미 큐비트가 존재하지만 이외의 전혀 다른 방식의 큐비트도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고 그러한 맥락에서 남들이 해보지 않은 것들을 해보는 기초과학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 연구단은 기존에 없었던 방법을 찾는 쪽으로 접근하고 있다.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것이 아닌 양자컴퓨터를 위한 새로운 방식, 새로운 큐비트를 만드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의 양자나노과학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단장. [사진=이승준 기자]
한국의 양자나노과학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단장. [사진=이승준 기자]

하인리히 단장은 원자 하나에 디지털 정보의 기본 단위인 비트를 저장하는 데 성공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메모리를 만들고 단일 원자의 자기공명영상(MRI)를 측정하여 세상에서 가장 작은 MRI를 선보인 것 등이 대표적 업적으로 꼽힌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관통한 보다 작은 입자와 소형화에 대한 연구 철학을 “30년 동안 원자·분자를 연구하며 이해도가 높아져 갔다. 30년에 걸쳐 새로운 장비를 개발하고 그 장비를 통해 이전에 얻지 못했던 데이터를 얻고 그 데이터로 가설을 확증하고 탐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장비를 만드는 식이다. 이것을 반복하고 있다. 실제로 전 STM과 ESR 기술을 융합한 ESR-STM을 직접 개발하고 수상한 바 있다”며 “처음부터 양자컴퓨팅을 연구했던 건 아니었다. 내 전문적 분야는 표면 위 원자·분자를 관찰·분석·측정·조절·통제하는 연구다. 연구를 통해 이 원자 하나가 큐비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점을 규명했다”고 정리했다. 

하인리히 단장은 IBS의 차별성을 특히 강조했다. “IBS는 다른 정부출연연구기관들과 성격이 다른 조직이다. IBS 안에 우리 같은 작은 연구단들이 서로 공존하고 있는 형태다. 우리는 50명 정도 된다. 이 50명이 한국 안에서 활발하게 교류하는 가운데 해외 연구진들과도 공동연구를 많이 진행한다”며 “IBS가 받은 미션은 한국의 기초과학이 얼마나 훌륭한지 세계적으로 알리고 그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IBS는 한국의 기초과학을 알리는 데 맡은 바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는 일반적으로 해외 연구진들이 연구차 출장을 한국으로 오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런 추세와 달리 IBS에는 출장 오는 해외 연구원들이 많다. 짧으면 일주일 길게는 3개월까지 머물다 간다. 그러면서 한국의 기초과학연구 역량에 좋은 인상을 받고 돌아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인리히 단장은 “IBS는 하나의 조직으로서 명망을 올리는 것도 있겠지만 그 안에 속한 연구단 하나가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그 분야 안에서 인정받고 한국이 그 분야를 선도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강력한 파워라 생각한다”며 “양자과학을 비롯한 IBS 산하 각각의 분야가 세계 최정상에 다다랐을 때 우리나라 전체 기초과학의 위상이 올라갈 것이라 기대한다. 분야별로 최고의 기관을 만드는 것이 IBS의 최대 강점”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IBS에는 하인리히 단장 외에도 32개의 연구단 중 6명의 외국인이 연구단장으로 역임하고 있다. 그는 “IBS 산하 연구단 단장을 맡은 것은 굉장히 귀한 기회라 생각한다. 내 주력 분야로 연구소를 지으면서 시간과 예산을 안정적으로 지원 받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어떤 한 사람에게 연구단을 세울 권한을 일임해주는 경우가 많지 않다. 한국이 매우 훌륭한 수를 둔 덕에 빠른 시간 안에 효과를 낼 수 있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STM 랩 장비를 설명 중인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단장. [사진=이승준 기자]
STM 랩 장비를 설명 중인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단장. [사진=이승준 기자]

인터뷰는 연구단 건물 안내로 이어졌다. 하인리히 단장은 “연구단 건물 설계 과정에도 참여했다”며 “우리 원자 스케일로 정밀한 우리 연구에 최적화된 방향으로 설계했다”고 말하며 STM 랩으로 이동하는 과정에도 연구단의 최신 장비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STM은 뾰족한 팁으로 표면을 점자 읽듯이 스캔해 감지하는 원리를 띤다”라며 “원자의 위치와 특징 등을 파악할 수 있다”라면서 또 “(대부분의 연구소들은) 이런 정밀장비들이 수리 중인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관리를 잘 해서 대부분의 장비가 항상 실험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연구 상태를 유지하는 연구단의 성실함을 피력하기도 했다.  

현재 연구단이 쓰고 있는 연구동은 이화여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2019년 준공됐다. 설계 과정에서부터 참여한 하인리히 단장은 연구동에 대한 깊은 애정을 나타냈다. 독일에 위치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초과학 연구소인 막스 플랑크 연구소를 벤치마킹한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만큼 앞으로 연구 결과로써 막스 플랑크와 버금가는 위치에 오르겠다는 각오를 내비친 속뜻으로 풀이된다.  

이동 중 하인리히 단장에게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에서 가장 독보적이거나 매력적이었던 부분에 대해 질문을 던지자 “IBS 서울대의 김빛내리 교수도 월드클래스 석학이라 생각한다. 그 분야에 속해 있진 않지만 전 세계에서 정상급으로 경쟁하고 있는 분이란 것은 확실히 안다. IBS가 잘 세운 기조 중 하나는 산하 연구단들의 경쟁상대를 세계무대로 잡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연구단은 당연하고 전 세계에서 경쟁했을 때 선두주자가 되는 것이다. IBS에서 내린 미션이기에 그런 면은 매우 의미가 있다”며 “20년 전만 해도 한국 연구진들은 한국 최고에 만족했다. 그 틀을 깨고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측면에서는 IBS의 기조가 굉장히 큰 발돋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기초과학 연구의 중요성에 대한 끊임없는 신념을 밝혔다.

QNS 휴게실에서 담소를 나누는 연구원들. [사진=이승준 기자]
QNS 휴게실에서 담소를 나누는 연구원들. [사진=이승준 기자]

마지막 동선으로 연구동 휴게실로 향한 하인리히 단장은 15여 개국에 온 연구원들과 자연스런 소통을 이어갔다. 연구단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공간으로, 그곳에서 양자나노과학단은 우리의 미래 기술을 고민하면서도 창의성을 위한 자율을 공감하고 있었다.

그는 “IBS가 받은 미션은 한국 기초과학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그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며 “IBS 산하 연구단 하나가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그 분야 안에서 인정받고 한국이 그 분야를 선도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며 “분야별로 최고의 기관을 만드는 것이 IBS의 목표”라면서 “양자나노과학연구단(QNS)도 IBS 산하 연구단으로서 양자나노과학의 선두주자 위치를 공고히 하며 연구를 이어갈 것”이라고 소명 의식을 밝히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 약력

하인리히 단장은 IBM 알마덴 연구소에서 18년간 연구경력을 쌓으며 원자 수준 양자역학적 효과 제어 분야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비탄성 전자 터널링 분광법을 개발하고 2018년 미국물리학회 조셉키슬리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등 관련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특히 주사터널링현미경(STM)으로 원자·나노구조물에서 발생하는 전자들뜸현상을 연구하며 세계적 관심을 받았다. 지난 2월에는 독일에서 ‘훔볼트 연구상’을 수상했다. 훔볼트 연구상은 독일 알렉산더 본 훔볼트 재단이 자연과학, 공학, 인문사회 분야에서 연구 업적을 남긴 학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현재까지 훔볼트재단의 지원을 받은 학자 중 59명이 노벨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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