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지난달 29일 오후 10시 15분께 발생한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 [사진=김찬주 기자]
사진은 지난달 29일 오후 10시 15분께 발생한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 [사진=김찬주 기자]

[이뉴스투데이 김찬주 기자] 이태원 참사 유족의 ‘전체 동의’ 없이 실명을 공개해 물의를 빚는 자칭 ‘시민언론’ 민들레가 창간 하루 전날 사망자 명단을 공개한 데 대해, ‘매체 이름 알리기 목적’이라는 비판이 유가족으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특히 해당 매체는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기자협회가 제정한 ‘재난보도준칙’을 무시한 채 보도해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15일 한기협 재난보도준칙에 따르면 재난보도는 ‘사회적 혼란이나 불안을 야기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재난 수습에 지장을 주거나 피해자의 명예나 사생활 등 개인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야한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해당 매체는 창간 하루 전날인 14일 홈페이지에 ‘이태원 희생자, 당신들의 이름을 이제야 부릅니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내보내고 이태원 참사로 인한 사망자 158명 중 155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매체는 “얼굴 사진은 물론 나이를 비롯한 다른 인적 사항에 관한 정보 없어 희생자들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진 않는다”면서도 “유가족협의체가 구성되지 않아 이름만 공개하는 것이라도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양해를 구한다”고 밝혔다.

이후 매체는 반발이 일자 일부 사망자 이름을 익명으로 수정하면서 “(실명 공개를) 원치 않는다는 뜻을 전해온 유족 측 의사에 따라 희생자 10여명의 이름은 삭제했다”고 적었다.

이 매체는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참여해 최근 출범한 매체로 알려졌다.

유 전 이사장은 이날 이뉴스투데이가 ‘이번 명단 공개 경위에 논란이 일 것 같은데, 본인의 의견이 반영됐는지’ 묻자 “그건 제 일이 아니라서요~”라고 답했다.

그는 지난 10일 ‘뉴스외전 포커스’에 패널로 출연해 “유가족들이 동의하는 범위에서는 참사 희생자들의 얼굴을 포함한 사망자 명단 등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있어야 맞다”고 주장했다.

진보를 표방하는 인터넷 매체 '시민언론 민들레'가 14일 이태원 압사 참사 사망자들의 명단을 유족들의 동의 없이 공개해 파장이 일 전망이다. [사진=시민언론 민들레 기사 갈무리]
진보를 표방하는 인터넷 매체 '시민언론 민들레'가 14일 이태원 압사 참사 사망자들의 명단을 유족들의 동의 없이 공개해 파장이 일 전망이다. [사진=시민언론 민들레 기사 갈무리]

◇일방적 실명공개에 ‘유가족 항의’·‘보도윤리 불감증’ 맹비난

유가족은 매체의 보도 행태를 언론사 ‘이름 알리기’로 봤다.

참사 사망자 한 유가족은 SBS에 “유가족들만큼 이 사람들이 슬프겠느냐”라면서 “유가족들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전 국민에게 애도를 강요한다는 건 본인들 언론사의 이름을 알리고자 하는 일밖에 더 되지 않나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고발도 잇따르고 있다.

이종배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은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에 ‘시민언론 민들레’에 대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 의원은 “민들레 측은 ‘유가족협의체가 구성되지 않아 이름만 공개하는 것이라도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양해를 구한다’면서 유족 동의 없이 무단으로 희생자 실명을 공개했음을 인정했다”면서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고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한 경우에 해당, 개인정보보호법 제17조 및 제18조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는 살아 있는 자연인만 해당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 해설서에 따르면 사망자의 정보라고 하더라도 유족과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정보는 유족의 개인정보에 해당한다”면서 “유족은 희생자 성명만으로 친인척 또는 주변 지인들로부터 특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각한 보도윤리 불감증의 결과’라는 질타도 나왔다.

민노총 산하 전국언론노동조합은 14일 논평에서 “이들 매체는 한국기자협회가 무수한 사회적 재난과 참사를 겪으며 제정한 재난보도준칙을 보았는지 의문”이라면서 “이번 명단공개는 재단보도준칙 제11조, 제18조, 제19조를 모두 위반한 심각한 보도윤리 불감증의 결과”라고 맹폭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성명서를 통해 “일부 희생자 유가족의 위임을 받은 대리인으로서 희생자 유가족의 진정한 동의 없이 명단을 공개하거나 명단을 공개하려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희생자 유가족이 합치된 의사를 표명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동의 없는 명단 공개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유가족의 돌이킬 수 없는 권리 침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지도부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긴급 최고위원 회의를 마치고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기에 앞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지도부가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긴급 최고위원 회의를 마치고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기에 앞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소극적인 민주당

정치권에서도 날선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당초 사망자 명단과 사진공개 필요성을 주장해 논란을 일으킨 더불어민주당은 정작 침묵하는 분위기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5일 SNS에 ‘민주당의 이태원 희생자 명단 공개,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유족의 동의 없는 일방적 희생자 명단 공개에 분노한다”면서 “반드시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유족 대부분이 공개를 원치 않는 것을 누가 함부로 공개했는지, 여러 법률적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유족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무단공개는 법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 국민의힘 참여를 촉구하고 있는 정의당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희생자 명단 공개는 정치권이나 언론이 먼저 나설 것이 아니라 유가족이 결정할 문제”라면서 “정의당은 유가족 동의 없는 명단 공개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죽음의 정치를 그만하라”고 당부했다.

민주당은 이번 사안과 관련 대변인 명의의 서면브리핑을 내놓지 않는 등 다소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14일 이재명 대표가 유가족 몇 분을 만났는데 이들 중 ‘국민적 추모가 있으면 한다’는 요구도 있었다”고 주장하면서도 “다만 전체 유족들의 동의를 못받은 채 명단이 공개된 점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재난보도준칙’이란

한편 재난보도준칙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언론이 지켜야 할 세부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며, 한국기자협회가 세월호 침몰 참사를 계기로 지난 2014년 9월 16일 제정했다.

재난보도준칙 제11조(공적 정보의 취급)는 ‘피해 규모나 피해자 명단, 사고 원인과 수사 상황 등 중요한 정보에 관한 보도는 책임 있는 재난관리 당국이나 관련 기관의 공식 발표에 따르되 공식발표의 진위와 정확성에 대해서도 최대한 검증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제18조(피해자 보호)는 ‘취재 보도 과정에서 사망자와 부상자 등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나 희망 사항을 존중하고 그들의 명예나 사생활, 심리적 안정 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신상공개 주의에 관한 규정인 제19조는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 사람들의 상세한 신상 공개는 인격권이나 초상권, 사생활 침해 등의 우려가 있으므로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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