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영화관에서’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집에서 75인치 UHD 화면으로 감상하는 시대가 됐지만 영화관이란 공간이 주는 특별한 경험까지 가져오지는 못한다. 좋은 영화를 제 때 극장에서 즐길 수 있길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번 주에 개봉하는 신작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
[이뉴스투데이 이지혜 기자] 제목 ‘공포분자’가 북한 말처럼 느껴졌다. 한자 발음으로 읽은 것인데 중국어로 테러리스트를 뜻한다. 이 단어 자체로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보다 세세히 들여다보면 누군가의 일상을 망가뜨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소설가 주울분(무건인)에게는 어느날 걸려온 장난전화 한 통이 테러처럼 일상을 덮쳤다. 수화기 너머 정체불명의 어린 소녀는 자신이 남편과 바람을 피워 임신을 했고,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 전화를 받은 주울분은 병원 검사실에서 일하는 남편 이립중(이립군)과 결혼한지 7년이 됐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아이를 원해 일을 관뒀지만 아직 임신하지 못했다.
때문에 그는 남편 외도보다 불륜녀의 임신에 더 충격을 받는다. 이어 부부는 제대로 대화하지 않은 채 별거에 이르고 의도치 않은 불행으로 치닿는다.
소녀는 앞서 범죄자들과 어울린 탓에 경찰을 피해 도망치다가 부상을 입는다. 같은 동네 사는 소년은 사진 촬영이 취미인데 다리를 다친 소녀를 찍게 되고, 병원에도 데려간다. 다리가 부러진 소녀는 어쩔 수 없이 집에 갇혀 지낸다. 이 무료함을 달래려고 장난전화를 걸어 엉뚱한 대화를 이어간다.
이러한 정황을 알 길이 없는 이립중은 억울하기만 하다. 결국 장난전화 한 통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파악하지만 아내 마음은 돌이키기 어려워보인다.
‘공포분자’는 우리에게 ‘하나 그리고 둘’로 알려진 에드워드 양(양덕창) 감독의 1986년 영화다. 앞서 개봉한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과 ‘타이페이 스토리’(1985년)와 함께 타이베이 3부작으로 불린다. 관객들의 꾸준한 호응에 힘입어 17일 마지막 한 편인 ‘공포분자’도 영화관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
34년 전 영화이지만 양 감독 특유의 미학적 성취를 만날 수 있다. 빛과 어둠을 다루는 독창적인 영상미와 정교한 연출력으로 일상을 위협하는 고독과 불안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아름다운 영상에 매혹되면서도 막상 관람 후에는 먹먹한 기분이 되곤 하는 이유다.
역설적으로 2007년 작고한 후 그의 묘비명은 이러하다. ‘사랑과 희망에 대한 꿈은 잠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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