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그를 두고 ‘준비된 은행장’이라고 했다. 은성수 신임 수출입은행장 얘기다. 그의 성이 은 씨인 점을 두고 하는 우스갯소리였다.

은 행장이 15일 취임식을 갖고 업무를 시작했다. 노조가 ‘낙하산 인사’라며 출근을 저지한 지 닷새만이다.

마침 하루 전인 14일 저녁 선배 언론인의 상가에서 그를 조우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입담이 좋은 그는 “기자와 만나고 나면 꼭 ‘괜한 얘기를 했다’고 후회하게 되더라”라면서도 예나 다름없이 수은의 현안에 대해 술술 자신의 생각을 풀어놨다.

그 중에도 인상적인 것은 부실 여신과 관련된 인사 방침이었다. 그는 “여신 부서가 기피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집행된 여신에 대해서는 사후에 부실이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 인사 정책을 펴겠다는 얘기였다.

수은 안팎에서는 최근 조선 해운 등 대형 부실기업 사태를 겪으면서 임직원들 사이에 ‘보신주의’가 퍼져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금융판 ‘변양호 신드롬’인 셈이다. 은 행장은 자신의 친정인 옛 재무부에서도 “이재국 출신 선배들이 각종 금융 사고에 연루돼 곤욕을 겪는 사례가 잦아 직원들이 이재국을 기피하는 경향이 나타났었다”며 “불법적 행위가 없이 발생한 부실여신은 면책하는 문화가 조성돼야 금융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수은과 같은 정책금융기관이 리스크를 떠안아 줘야 국가 경제가 원활히 작동된다며 국회와 정부에 이에 대한 이해를 구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수은이 수출산업 지원 기능을 적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자본 확충 등에 협조를 부탁하겠다는 뜻인 듯 했다.

수은은 지난 상반기에 4453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도 6월말 12.44%로 경영실태평가 1등급 기준(10%)을 충족한다. 하지만 산은으로부터 현물출자 받았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주가가 최근 폭락하면서 자본건전성을 훼손할 위험성이 대두됐다.

게다가 수은은 성동조선 STX 대선조선 등 중소형 조선사 구조조정도 아직 진행 중이다. 특히 성동조선의 경우 대우조선해양과 달리 거의 수은 혼자 구조조정을 끌고 나가야 하는 케이스여서 더욱 부담이 되고 있다.

은 행장은 이밖에도 중소 수출기업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방안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힌 뒤 자리를 떴다. 그를 보내고 돌아서는데 문득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미처 물어보지 못한 이슈가 떠올랐다. 이른바 ‘소득주도 성장’ 체제에서 수출입은행의 역할론이 그것이다.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은 그간의 수출주도 성장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수출의 국민경제 파급효과가 과거에 비해 떨어졌다는 분석에 근거한 것이다. 과도한 수출의존도는 우리 경제를 글로벌 금융위기 등 외부 충격에 취약하게 만들고 수출이 잘 돼도 그 이득은 수출 기업에게만 돌아간다는 문제의식도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자원부족 국가이자 소규모 개방경제국가(SOME)인 한국에게 수출은 여전히 중요한 성장의 원동력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수출의 성장 견인력을 다시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는 수출산업의 전후방 산업연관 효과와 부가가치 창출력을 제고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향후 수출입은행의 역할도 바로 이 같은 수출의 성장 견인력 제고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은 행장도 이런 문제를 포함해 수은의 과제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근 저지 기간 중 그에게 업무현황을 보고한 한 본부장은 “수은의 업무 전반에 대해 이해도가 상당히 높아 한편으론 긴장감을 갖게 되더라”라며 “수은 입장에서는 좋은 행장이 온 것 같다”고 평했다.

이 본부장의 평가처럼, 그리고 앞서의 우스갯소리처럼 은 행장이 ‘준비된 행장’의 역량을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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