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칼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제2제정을 두고 이렇게 비판했다. 삼촌 나폴레옹의 제1 제정이 영웅의 비극이었다면 조카 루이의 제2 제정은 보잘 것 없는 인물에 의한 우스꽝스러운 희극이라고 비꼰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몰락은 이 말을 상기시킨다. 박정희 시대는 주인공이 자신의 부하에 의해 시해되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이에 비해 박근혜 시대는 최순실 사태라고 하는, 다시 생각해도 어이없는 사건으로 끝을 맺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은 두고두고 많은 개그나 풍자극의 소재가 될 것 같다.

이제 우리는 그 ‘웃픈’ 드라마를 뒤로 하고 ‘문재인 시대’라는 새 드라마의 서막을 지켜보고 있다. 이 드라마가 과연 어떤 결말을 맺을지 미리 궁금해 하는 것은 비단 기자만의 성급함은 아닐 것이다.

그 궁금증은 필연적으로 노무현 시대의 결말에 눈길을 돌리게 한다. 주지하다시피 노무현이 꿈꿨던 개혁은 미완으로 끝났고 그 자신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앞서 마르크스의 역사 법칙대로라면 노무현의 계승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우스꽝스러운 희극의 주인공이 될 차례다. 물론 그래서는 안 되고 그리 될 것으로 예단할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문재인 시대는 어떻게 해야 마르크스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도하 각 언론이 ‘대통령에게 바란다’ 같은 제목의 사설과 기사를 통해 열거하는 이런 저런 당부들이 그 답이 될 수도 있다. 국민 통합, 탕평책, 정치 개혁 등등이 그 것이다.

그러나 기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에게 먼저 당부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대선 직후 언론들은 관행적으로 ‘문재인의 사람들’ 식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독자들이 그런 류의 기사에 관심을 갖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다.

대선 캠프의 규모가 컸던 만큼 거론되는 인물 또한 부지기수다. 김부겸 박영선 송영길 강기정 전병헌 노영민 등등…일일이 거명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언론이 열거하는 이런 인물들 외에 스스로 여기저기 다니며 “나도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일조했다”며 자가발전하고 다니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기자가 이런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는 ‘일단은 거기까지’라는 한 마디다. 다시 말해 대통령을 만든 공로를 십분 인정한다 해도 국정 운영에 참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여겨야 한다는 뜻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대통령을 만드는데 필요한 역량과 국정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역량은 그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박근혜 시대를 우스꽝스런 희극으로 만들어 버린 것도 자칭 타칭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이전의 YS, DJ 또한 대통령 본인의 잘못보다는 대통령을 만든 이들의 과오로 흠집이 났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은 이 시점에서 자신의 역량과 자질에 대해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그리하여 스스로 국정에 참여할만한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설사 대통령의 요청이 오더라도 사양하고 물러서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것이 문재인 시대가 마르크스의 역사 법칙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조건이 될 것이다.

사족; 사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든 공로를 따지자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그리고 친박 정치인들의 공 또한 무시할 수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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