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1970~80년대 수출입국을 견인해온 한국의 종합상사들이 경제 위기 극복과 저성장의 늪 탈출을 위한 최전방에 섰다.

포스코대우는 글로벌 철강왕을 목표로, 삼성물산은 바이오에 사활을 걸었다. 현대종합상사는 열대과일에까지 손을 뻗치고 SK네트웍스는 중동 상품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동시에 전세계를 아우르는 물류 거점을 구축한 LG상사 등 종합상사들이 신성장 동력 발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 등 선진국 기업들의 대체투자 비중은 20~30%에 달하지만 국내기업들의 대체투자는 평균적으로 10% 내외를 밑돈다. 동시에 일본의 5대 종합상사가 보유한 연결 자회사의 수가 2700개를 넘고 있어 각종 규제에 막혀 사업재편 한번 하기도 어려운 한국과는 대조를 이룬다.

2011년 동일본 대진이 덮친 일본의 경제를 일으킨 것은 종합상사들이었다. 미쓰비시‧미츠이‧이도추‧스미모토‧마루베니상사는 대재난을 계기로 전통의 제조업으로부터 해외 대체 투자로 사업 구조를 전환하면서 연 250조엔 이상의 투자를 선도하고 있다.

적극적 인수합병을 통한 사업 재편과 대체 투자는 더 이상 '대체'가 아닌 '필수'가 됐으며, 한국의 종합상사들도 기존의 자원개발 부문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한편, 바이오, 인프라, 생활에너지 등에 대한 신규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다.

포스코대우의 미얀마 가스전

먼저 해외 에너지개발 분야 선두주자는 대우인터내셔널을 품에 안은 포스코대우다.

2010년 5월 포스코가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할 당시만 해도 제철소가 상사를 왜 건드느냐는 비아냥이 있었다. 하지만 인수 이후 대우인터내셔널은 글로벌 네트워크의 힘으로 아시아‧중동‧중남미 시장을 개척해 3년 만에 포스코의 수출을 274만톤에서 390만톤으로 42.3% 증가시켰다.

특히 2013년 본격 양산된 미얀마 가스전은 대우가 2000년 워크아웃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성공시킨 사업이었다. 전 대우그룹의 한 임원은 "미얀마 가스전은 이듬해 영업이익을 1500억원대에서 3000억원대로 뛰어 올리며 3억~4억 달러의 꾸준한 수익을 가져다주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이어 올해 3월 포스코P&S까지 흡수‧합병할 예정이다. 연 매출 3조원에 달하는 포스코P&S의 철강 가공 서비스와 함께 트레이딩 물량을 1300만톤으로 증가시켜 글로벌 톱3에 오르겠다는 게 포스코의 목표다.

포스코대우는 지난해 유통‧관광 사업에도 진출해 영국 최대의 약국 브랜드인 부츠(Boots)사의 220여개 매장과 온라인 쇼핑몰에 카오리온, 스킨푸드 등을 입점하는 계약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올해 7월부터는 미얀마 수도 양곤에서 호텔 서비스 사업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생산 라인 내부

1975년 5월 19일 종합상사 1호로 탄생한 삼성물산은 바이오약품 생산을 통한 신성장 동력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글로벌 바이오산업 전문 분석 기관인 '이벨류에이트그룹(Evaluate group)'에 따르면 지난 10여년간 바이오시밀러 제품의 연평균 성장률이 4.6%로 1%대의 기존 합성의약품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오의약품은 전세계 1조 달러 약품시장 가운데 벌써 20%대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20년 안에는 시장점유율이 70%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삼성의 바이오 도전은 처음부터 전략적이었다. 삼성은 2011년 덴마크의 바이오시밀러 개발회사인 바이오젠과 합작법인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해 원천기술 개발에 몸을 담았다. 하지만 '브렌시스', '렌플렉시스' 등과 같은 제품 대부분이 덴마크 등 유럽 공장에서 생산돼 왔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을 생산거점으로 만들기 위해 2011년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설립, 국내 공장을 꾸준히 증설해 왔다. 지난해에는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위탁 생산계약(CMO)을 체결했고, 2018년이면 세계 최대 규모의 생산 능력(36만L)을 갖출 전망이다. 이는 미국의 론자(26만L)나 독일의 베링거인겔하임(24만L) 등 다국적 제약사의 생산 규모를 뛰어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바이오의약품 세계 위탁생산(CMO) 분야 세계 1위가 되겠다는 것이 삼성의 계획이다. 바이오산업이 성장할수록 대량생산을 통해 비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위탁 생산이 경쟁력에서 앞설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삼성은 반도체를 통해 성공을 이뤄낸 경험도 있어 시장의 페러다임도 생산전문업체 주도로 이끌어 가겠다는 포석이다.

여기에 발맞춰 지난해 12월 식품의약안전처도 인천송도경제자유구역 내 제3공장의 준공과 함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바이오시밀러 생산을 허가한다는 영문심사결과를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등 간접지원에 나섰다.

삼성은 적자를 감수면서도 미래 먹거리를 위해 바이오 사업에 5조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총괄 지휘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7일 구속됨으로써 위기에 빠진 상황이다.

지난해 창사 40주년을 맞은 현대종합상사는 일찍이 글로벌 삼각 무역으로 사업의 중심을 이동시켰다. 본업인 선박·철강 품목 트레이딩 외에 신사업 발굴을 통해 성장을 꾀한다는 전략이다.

현대상사는 2014년부터 동남아 열대과일 시장에 뛰어들어 지난해부터는 캄보디아에 농산물유통센터 건립하고 있다. 검역 시설까지 갖추게 되는 이 센터는 앞으로 캄보디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분류, 세척, 가공, 포장 상품화 과정을 담당하게 돼 지속적인 수익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상사는 1976년 창립 이후 현대그룹의 간판회사 역할을 했으나 IMF 이후 계열사 분리 과정에서 외형이 축소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부터 정몽혁 대표이사 체제가 안정되면서 사업별 전문화를 추진했다.

자원개발, 무역, 비무역 부문으로 핵심사업을 재편했고, 2015년 10월에는 지주회사인 현대씨앤에프를 설립했다. 이후 자원개발 부문은 무역 부문인 종합상사와 합병했다.

동시에 대기업 제품뿐만 아니라 국내 중소‧중견기업 제품과 서비스를 적극 발굴해 오거나이징 전문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에 있다.

은행권 차입 규모가 2015년 기준 약 67억원밖에 되지 않아 사실상 무차입 경영이라 불릴 정도로 탄탄한 재무상태를 바탕으로 지속성장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게 현대상사의 방침이다.

SK네트웍스는 올해 중동 네트워크를 거점으로 한 수출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회사에 따르면 1984년 테헤란 지사를 설립하면서 이란에 첫발을 내디딘 SK네트웍스는 불안정한 정치‧경제 환경으로 대부분의 한국기업들이 이란에서 철수하는 속에서도 중동 시장의 잠재력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단 한 번의 사업 중단도 없이 현지 사업 파트너들과의 신뢰를 다져왔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지난해에는 이란 2위 자동차 생산업체인 사이파(SAIPA)와 자동차 연관 사업에 대한 포괄적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등 철강, 화학 등 기존의 상품을 넘어선 사업 부분으로 영역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는 새롭게 출범한 SK매직의 가전제품 수출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작년 동양매직을 인수한 SK매직은 최근 5년 중동지역에 50만대 이상의 식기세척기를 수출해 온 회사로 중동시장 공략을 노리고 있다.

SK매직 출범행사에 참석한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은 '글로벌 기업 도약'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2020년까지 매출 1조원, 영업이익 1300억원이라는 사업 목표를 밝혔다.

SK네트웍스는 지난해 신규 면세점 추가 선정에서 탈락하고 패션사업 부문을 현대백화점 계열사인 한섬에 매각하는 등 사업재편 과정에서 일시적 비용이 발생하며 지난해 영업이익이 11% 감소하기도 했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올해는 사업 재편 등으로 인한 불안정 요소가 완전히 해소되면서 주력사업 및 미래 핵심사업의 영업력 증대를 통한 확실한 턴어라운드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LG상사의 인도네시아 칼리마탄 유연탄광 전경

LG상사는 국내 민간기업 중 중국, 인도네시아, 오만 등지에 가장 많은 석탄 광산을 보유한 회사다. 2015년 인도네시아 하상 수력발전소 개발 사업, 중국 간쑤성 석탄 열병합 발전소 합작 투자 등 신흥국 내 인프라사업을 확대해오고 있다.

특히 2010년부터는 2차전지의 등장과 함께 제2의 석유라 불리는 '녹색광물'을 신성장 동력으로 낙점하고 광물개척을 위해 아르헨티나 북부 살데비다(Sal de Vida) 리튬 광산 개발 프로젝트에 참가해 왔다.

유럽 도이치은행 등은 2025년 리튬 수요가 현재의 3배 수준인 53만~57만톤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며, 캐나다의 광산투자회사인 크루즈 캐피탈은 전지용 코발트 수요가 2025년에 현재의 2.3배 수준인 12만 1000톤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LG화학이라는 세계 최대 2차전지 업체의 소재 공급처 역할을 하는 동시에, 다양한 자원확보, 신사업 발굴 등의 차원에서 관련 사업을 확대, 발전시킨다는 게 LG상사의 계획이다.

또한 2012년부터는 식량자원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해 인도네시아 현지에 '팜유(oil)' 가공공장을 준공해 지난해까지 생산량을 7만톤까지 늘려왔다.

LG상사 한 관계자는 "화석연료 시대는 저물어가고 이제는 재생에너지 둘러싼 새로운 자원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전기차 등의 확산 과정에서 태양전지, 풍력 터빈, 2차전지, 고효율 모터, 고효율 전구 등에 사용되는 핵심원료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주목되는 것은 지난 2015년 5월 자회사로 편입한 물류회사 범한판토스와의 시너지 효과다. 법한판토스 인수와 함께 지난 2015년 538억원이던 LG상사의 물류 부분 영업이익은 지난해 744억원으로 206억원이나 증가했다.

구정인회 LG창업회장의 동생 고(故) 구정회 회장이 1977년 창립한 범한판토스는 현재 아시아, 미주,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 전 세계 34개국에 걸친 125개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국내 물류기업 가운데 최대 규모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시 언제든지 대체 루트를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LG상사 한 관계자는 "물류비는 아무리 많이 줄여도 비용 절감 규모는 1~2%에 불과한 반면 재고 관리는 조금만 잘못해도 20~30% 손실을 보게 된다"며 "범한판토스의 합류와 함께 LG상사는 물류 부문에서도 CJ대한통운 및 한진 등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을 펼쳐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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