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희일 기자] # 경기도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이모(32)씨는 3년 전 식당을 개업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은행대출 4000만원을 받았다. 처음 6개월은 장사가 잘 돼 아버지가 이자를 갚는 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이자 납부가 조금씩 늦어졌다. 급한 대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돌려 막기를 했지만 연체 이자가 쌓이면서 점점 감당키 어려워졌다. 신용 등급까지 떨어져 더는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된 이씨는 저축은행과 카드론, 캐피털, 대부업체 문을 차례로 두드렸다. 이씨의 빚은 6000만원까지 불어났으며 이씨는 신용불량자라는 낙인까지 찍혔다. 급기야 이씨는 신용회복위원회가 있는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찾아야 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씨처럼 3곳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쓴 '다중채무자'들이 금융권에 진 빚만 올해 9월 기준 413조 2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중채무자는 금융기관 3곳이상에서 돈을 빌려 쓴 채무자를 말한다. 다중채무자들이 가진 빚은 전체 가계부채(1350조 8000억원)의 30%가 넘는 규모다.

정작, 다중채무자는 계속 증가하고 부채의 질은 계속 악화되는데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금융감독 당국이 나서 다중채무자 문제 해결을 천명했지만 '최순실게이트', '박근혜 탄핵' 정국속 에서 리더십을 기지고 금융정책을 제대로 펼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감만 커지고 있다.

국회 정무위 소속 지상욱 새누리당 의원이 최근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다중채무자수는 369만명이었다. 이는 지난 6월말의 333만명에서 10.8%나 증가한 것이다. 가계부채 차주가 모두 1820만1000명임을 감안시 가계부채 차주10명 중 2명은 다중채무자라는 얘기다.

다중채무금액 역시 2012년 308조7000억원에서 올해 6월 말 400조2000억원으로 3년6개월 동안 91조5000억원(29.6%)가량이 늘었다. 6월말 기준 가계부채 대출잔액도 총 1312조5000억원으로 다중채무금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30.5%에 달했다.

금융 업종별로 살피면 저축은행권에서의 다중채무자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지난 6월말 기준 저축은행권의 다중채무자 수는 89만명에 채무잔액은 13조3000억원이었다. 이후 9월 들어선 저축은행 채무자 10명 중 7명(92만명, 65.7%)이 다중채무자가 됐다. 다중채무잔액 비중도 66.2%였다. 보험사 대출을 받은 채무자의 48.4%(60만명)도 다중채무자였다.

결국 제2금융권을 이용하는 채무자의 절반은 다중채무자라는 것이다. 은행에서 대출이 어려운 저신용자들이 저축은행을 찾는다는 점을 감안시 이들이 지닌 나머지 대출은 고금리 대부나 카드 대출 등 부채의 질이 더욱 안 좋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특히 다중채무자들이 저축은행에서 빌린 돈은 지난해 말 11조 5000억원에서 올 9월까지 14조2000억원이었다. 3분기 만에 23.5%(2조 7000억원) 늘어난 것이다. 올 들어 은행권에서 여신심사 강화 등으로 대출이 어려워지자 대출수요는 저축은행 등 2금융권으로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실제 저축은행 대출자만도 10만명가량이 늘었다. 일부 은행 대출자들이 ‘저금리 파티’를 벌이는 동안 은행을 이용치 못하는 저신용자들은 독배를 든 채 제2, 제3금융권을 찾았던 것이다.

정작, 큰 문제는 다중채무가 우리 경제에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금리가 1% 포인트 오를 경우 한계가구(금융자산보다 부채가 많고,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이 40%를 넘는 가구)는 134만 2000명(2015년 기준)에서 143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부동산과 금융 자산을 다 팔아도 빚을 갚을 수 없는 부실위험가구는 5만 9000가구가 증가한 117만 3000가구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전체 가계부채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20%가 넘는다.

금융전문가들은 저소득·저신용 채무자들에 대해 정부차원에서 별도로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가계부채의 근본적 문제가 소득이 늘지 않는 상태에서 빚만 늘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저소득층과 저신용자들에게 재정 지원을 확대해 별도의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덴마크나 네덜란드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아도 공공 임대주택이나 사회 안전망을 잘 갖춰서 부실 위험이 그다지 크지 않다.

반면, 우리나라경제는 다르다. 경제성장 둔화와 미국의 금리 인상, 여신심사 강화가 가계부채 취약계층인 다중채무자들의 부실화를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크다. 급격한 여신 회수보다 연착륙을 위한 금융기관 리스크 관리가 시급한 것이다.

금융감독당국도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해 금융권 다중채무자에 대한 실태 조사에 나섰다. 금리 인상이 제1금융권에서의 대출이 어려운 다중채무자들에겐 직격탄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제2금융권 대출이 많은 다중채무자에 대해 정책자금을 지원하거나 제1금융권으로의 대환을 유도키 위해 골몰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권 다중채무자에 대한 실태 조사를 진행중인데 이에서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다중채무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중채무가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감독당국 역시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한국 금융당국은 물론 금융권에 고민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기준금리 인상에대한 압박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정작, 금리인상은 가까스로 이자를 갚아 온 채무자들에겐 숨이 막히는 사안이다. 금융전문가들은 ‘금리가 오르면 일반 금융기관에서 대출 받기 어려운 저신용·저소득자들이나 다중채무자들이 제일 먼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단연, 정부가 나서서 이에 대한 긴급 처방을 만들어 주길 바라는 심정이다.

실제, 금리가 오를 경우 저소득·다중채무자는 ‘이자 부담 중압감’이 늘어난다. 이자 부담을 경감키 위해 결국 추가 대출을 받게 된다. 대출을 해결하는 상환 과정에서 또 다른 대출을 유도하는 악순환 고리에도 빠지게 되는 것이다. 금리 인상으로 저소득·다중채무자의 대출이 부실화 될 경우 금융사들 역시 연쇄적으로 동반 부실 위험에 빠질 우려가 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금리가 1%포인트 오를 경우, 금융자산보다 부채가 많고 가처분소득에서 대출 원리금 상환액의 비중이 40%를 넘는 한계 가구가 134만 2000명(2015년 기준)에서 143만명으로 13.3% 늘어난다고 전망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12일 정부 합동 리스크 점검회의에서 “저소득·다중채무자들의 부실화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돼 금융사들의 경우 ‘리스크관리’나 ‘자금중개자’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감독당국은 금융권 다중채무자에 대한 실태 조사가 끝나는 대로 다중채무자 지원 대책에 나설 방침이다.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면 다중채무자의 대출·이자 상환을 일시 유예해 주거나, 제1금융권으로 대환 가능토록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금융사가 대출이 많은 다중채무자에 대해선 원금의 일부 또는 전액을 조기 상환토록 유도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는 “가계부채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저소득층과 다중채무자 등 금융 취약계층에 대한 종합 대책을 논의중이다”며 “서민금융 정책자금을 늘려서라도 금융 취약계층을 지원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소비자단체측은 최근, 문제 되는 가계부채가 저소득층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세대가 갖는 문제로 부동산정책, 노동정책과 연관 돼 쉽게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발표했어도 전반적인 소득이 늘지 않은 상태에서 가계부채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소득향상 대책과 재무건전성 강화, 고소득층의 감당키 힘든 부동산 대출의 점진적 축소, 상호금융권의 상가나 토지담보대출 강화 등 정부의 종합적인 대책과 함께 그 이상의 광범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금융회사는 자율적으로 상환능력 심사를 개선하고 모니터링과 사후관리를 통해 가계부채 리스크 대응에 적극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금융당국의 정책이 그동안 빚을 권하는 사회를 만든 정책으로 전락했고 금융시장도 단연 채권자 중심으로 운영되어 온 만큼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과 신용평가제도 개선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부채관리 역시 생애설계를 중심으로 어떻게 대출을 상환하고 어떤 삶을 살지 전체적으로 생각하는 틀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정부와 금융기관, 학계가 친밀히 연계한 ‘전국민 부채 극복 프로젝트’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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