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만큼 참았다. 이제는 터질 때도 됐다."

외국계 기업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 도를 넘은 '갑질'에 그동안 쌓아놨던 분노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한국 시장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은 '눈 감고 귀 닫고' 식의 안일한 경영을 펼쳐왔다.

어떠한 상황이 발생해도 한국시장에서는 꼬박꼬박 매출이 나오기 때문이었을까. 이들 기업들은 불합리한 정책과 차별대우의 강도를 점점 높여갔다.

한국 소비자들은 그동안 '큰 문제는 없다'는 듯 순응해 왔고 이 과정에서 '호갱(호구+고객)'이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외국계 기업을 바라보는 국내 소비자들의 시각이 점점 바뀌고 있다. 한국시장과 한국소비자를 우롱하는 불성실한 태도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본지는 폭스바겐과 옥시, 이케아, 애플 등 한국 시장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기업들이 그동안 우리나라 시장에서 벌여 온 추악한 행태, 그리고 그 기업들을 마주해 온 우리 정부와 국내 소비자들의 인식과 자세 등을 심도있게 분석하며 향후 대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이뉴스투데이 이세정 기자] 독일 폭스바겐은 지난해 하반기 발생한 '디젤게이트'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소비자를 위한 최종 배상안을 확정했다.

폭스바겐은 지난 28일(현지시간) 미국 법무부, 환경보호청(EPA) 등과 배출가스 논란에 연류된 2000cc급 디젤차 소유주 47만5000명 등에게 총 147억달러(17조4077억원)을 배상하기로 합의했다. 당초 예상 금액인 100억달러(11조5400억)를 뛰어넘는 액수다.

전체 배상액 중 100억달러는 소비자 배상에 쓰일 것으로 알려졌다. 각 소비자들은 차량 제조년도, 평가액에 따라 1인당 최소 5000달러에서 최고 1만달러(약 600만원~1200만원)가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배상액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환경 개선비용과 노후버스 교체 비용, 배출가스 저감 장치 개발 등 친환경차 연구비용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폭스바겐은 최대 규모의 배상책을 내놓으며 최근 판매량이 급감한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미국 내 폭스바겐 판매량은 지난 10월부터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달에 미국 시장에서 팔려나간 폭스바겐은 총 2만8779대로, 전년 동기 대비 17.2% 감소했다.

또 올해 들어 지난 5월까지의 누적 판매대수는 12만5205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1% 줄었다. 같은 기간 동안 미국 신차 판매량이 1.1% 증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 폭스바겐의 두 얼굴?…한국에선 '철면피'
반면 '디젤게이트' 사태로 피해를 입은 국내 소비자들을 위한 리콜과 보상안은 아직 답보상태라 폭스바겐을 향한 비난의 화살은 그칠 줄 모르고 있다.

폭스바겐의 한국 법인인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한국 정부의 리콜명령에 따라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 세 차례에 걸쳐 리콜계획서를 환경부에 제출했지만 모두 반려됐다.

지난 1월 14일에는 결함 원인을 두 줄로 설명하는 등 불성실하게 계획서를 제출해 퇴짜를 맞았다. 3월 23일에는 임의조작을 했다는 사항을 명시하지 않고 리콜차량을 고치기 위한 소프트웨어도 포함돼있지 않아 불승인 됐다.

지난 7일 세 번째로 제출한 리콜계획서 역시 반려됐지만 폭스바겐은 추가 제출에 대한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당시 환경부는 "폭스바겐이 제출한 서류에는 환경부가 핵심사항으로 요구한 임의설정을 시인한다는 문구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는 폭스바겐이 임의설정을 시인해야만 최종적으로 리콜을 승인해주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폭스바겐 측이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현행법 상 1차 때에만 리콜 명령일로부터 45일 이내에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어 폭스바겐 측이 임의설정을 시인하는 내용이 담긴 리콜계획서를 언제 제출할지 미지수라는 의견이다.

더욱이 "폭스바겐이 네 번째 리콜계획서를 내지 않는다"고 환경부가 압력을 가하거나 강제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권한도 없다.

국내 리콜에 있어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폭스바겐은 정작 자국에서는 최종적으로 리콜 승인을 받아내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2일(현지시각) 폭스바겐은 독일연방자동차청(KBA)으로부터 파사트, 티구안, 골프, 아우디 A3, A4, Q5 등 370만대가 넘는 피해 차량에 대한 리콜 계획을 승인을 확정했고, 회사는 리콜 대상자들을 상대로 통지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국내 소비자들에 대한 정확한 보상계획이나 배상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어 불만의 목소리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앞선 지난 9월에는 미국과 캐나다 피해 고객들에게 1인당 1000달러 상당의 상품권과 바우처를 제공하고 3년간 무상수리를 약속하는 내용이 담긴 보상안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 소비자들을 위한 보상안은 단 한 번도 거론된 적이 없다. "별도의 배상 없이 무상수리에 그칠 것"일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에 국내 소비자들은 자체적인 집단행동을 통해 권리 찾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 27일 법무법인 '바른'은 휘발유차인 7세대 골프 1.4 TSI 차종의 소유주들을 대신해 부당이득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바른은 국내 피해고객 4000여명을 대리해 폭스바겐그룹과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국내 판매대리점 등을 상대로 매매계약 취소 및 매매대금 반환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1차 소송은 오는 9월 치러진다. 지난해에는 미국 로스엔젤레스 연방지방법원에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이수진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부장은 "절대로 한국과 미국 소비자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미국의 경우 타 국가에 비해 법적 기준이 엄격하고 질소산화물 배출 규정도 6배 높다. 수리를 하더라도 이후 차량의 연비와 성능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돼 관리당국과의 합의를 통해 배상을 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이 부장은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의 경우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만으로 충분히 배출가스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금전적인 보상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부장은 "고의로 리콜계획서 제출을 늦추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선 "절대 아니다"며 "배출가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국형 소프트웨어는 개발을 마친 상태이고 바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환경부와 긴밀히 협의를 하고 있지만 '임의설정'이라는 문구에 대해서만 문제가 있다 밝혔고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코멘트를 전혀 주지 않고 있다. 한국과 유럽에서는 법적으로 임의설정이 해당되지 않으며 미국에서만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며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네 번째 계획서 제출 시기와 관련된 타이밍은 환경부가 결정할 것"이라며 "우리는 모든 준비를 마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와 관련 "국내 소비자들에게 할 말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폭스바겐은 이번 디젤사태와 관련해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고 있다"며 "조속한 처리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고 환경부와도 끊임없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이다"고 답했다.

◇'정부·시민단체·국민' 총체적 불협화음
자동차 업계는 폭스바겐 사태가 한국에서만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이유로 '총체적 불협화음'을 꼽고 있다.

우선적으로 우리나라 법과 제도가 허술해 자동차 제조 업체들이 큰 위협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국내에 '임의설정'을 금지하는 조항이 들어선 것은 지난 2012년 환경부 고시를 통해서다.

2011년 현대·기아차의 디젤 SUV 차량 12개 차종, 총 87만대가 인증시험 때와 달리 에어컨 가동 등 특정 조건에서 질소산화물을 과다배출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를 금지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환경부는 현대·기아차에게 권고 형식으로 자발적 리콜을 실시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후 같은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법 임의설정 금지 조항을 신설했다.

하지만 과징금은 상한선이 차종 당 10억원에 불과해 '솜방망이 처벌'이란 비난에 시달렸고 정부는 지난 1월 자동차 안전기준 위반에 대한 과징금을 10억원에서 100억원 한도로 상향한다는 내용이 담긴 '자동차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오는 7월 28일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자동차 업체 입장에서는 '가벼운 벌금형'에 그치는 수준이다.

내수 시장에서 폭스바겐이 매년 판매하는 자동차는 연간 3만대에 달한다. 차 한대 가격을 3000만원으로 잡고 계산하면 한국에서만 매년 90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9000억원에서 과징금 100억원은 1.1%에 불과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들에게 100억원의 과징금이 주는 타격은 아주 미미한 수준"이라며 "업체들이 벌을 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업체들이 빠져나갈 법적 구멍이 많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실제 폭스바겐의 경우 세 번이나 리콜계획서를 퇴짜 맞았음에도 당황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1차를 제외하고는 리콜계획서 제출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리콜을 불이행하면 제조사는 10년 이상의 징역 또는 5000만원의 벌금을 부과 받지만, 폭스바겐의 경우 환경부에서 리콜 최종 승인을 내리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법적 제재를 받을 이유가 없다.

다른 이유로는 타 분야와 다르게 유독 시민단체 활동이 적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시민단체가 대대적인 불매운동과 같은 적극적인 움직임을 통해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켜야 하지만, 자동차 업계의 경우 시민단체들의 개입이 거의 없었다는 것.

자동차학계 한 관계자는 "자동차 배기가스 임의조작과 같은 내용은 상당한 전문성과 지식이 요구된다"며 "자동차 업체가 저지른 불법 등은 일반인이 파악하기 어렵다보니 시민단체들의 이해도가 떨어지고 진입장벽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디젤게이트 파문에도 불구, 제품 수요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실제 폭스바겐은 배기가스 논란 이후에도 꾸준히 판매량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15년 내수시장에서는 BMW(4만7877대), 메르세데스-벤츠(4만6994대)에 이어 3만5778대를 판매하며 수입차 TOP3에 이름을 올렸다.

'티구안 2.0 TDI 블루모션'은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링카에 등극하기도 했다.

특히 배출가스 조작 논란이 발생했던 지난해 10월 내수시장에서 947대 판매에 그쳤던 폭스바겐은 11월 들어 전월 대비 무려 337% 증가한 4517대를 팔았다. 폭스바겐이 60개월 무이자 할부, 현금 구매 시 최대 1772만원 할인 등의 파격 프로모션을 펼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정부 부처 간에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과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허술한 법망, 소비자와 시민단체의 소극적인 움직임 등 여러 문제점들이 있다"며 "이런 태도들 때문에 수입차 업체들이 한국 시장과 소비자들을 만만히 보고 악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부의 경우 단순히 일회성 처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법적 허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조속한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면서 "소비자들도 '저렴하면 산다'와 같은 인식을 변화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교수는 "미국에는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을 하게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있다"며 "천문학적인 벌금과 보상을 통해 소비자가 우선이 될 수 있는 한국형 징벌적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키워드
#N

※ 여러분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소비자 고발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메일 : webmaster@enewstoday.co.kr

카카오톡 : @이뉴스투데이

저작권자 © 이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