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대미를 장식했던 한 드라마의 흥행은 추억만이 줄 수 있는 따뜻한 체온을 대중이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 것은 아니었을까? 드라마 방영이후 감각적인 최신 곡들을 밀어내고 노래방에서 10대들의 마음까지 점령해버린 드라마 OST 속 많은 옛 노래들이 그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1988년을 그리워하는 것만큼 20년 후엔 2016년을 그리워할 수 있을까? 그 때만큼 그리워할 사람냄새가 남아있을까? 오랜 시간 최고의 자리에서 대중을 울리고 웃게 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그 자리를 지킬만한 자타공인 최고의 아티스트들을 만나 그 해답을 찾아본다.

talk? talk!

 

 

"저는 그 기본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이 직업인 음악가에게 콘서트는 기본적인 일이라 생각해요."

 

 

 

이은미는?
1989년 신촌블루스 3집에 참여하며 데뷔한 이래 1992년 1집 앨범 'Twelve songs'까지 모두 11장의 음반을 발표한 그녀는 국내 여자 가수로는 최대 공연기록을 세우고 있다. 데뷔 당시 그녀를 부르던'신촌괴물'이란 별명을 생각하면 지금의 '괴물 보컬'손승연을 떠올리게 한다.
'디바'라는 호칭을 우리나라 여가수 중 최초로 얻을 만큼 폭발적 에너지를 지닌 그녀의 많은 노래들은 오랜 시간 꾸준히 많은 가수들을 통해 리메이크 되어졌으며 <애인 있어요>는 2005년 발표 이후 지금까지 최고의 애창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김: 여전히 맨발이신가요?
이: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구요.

김: 공연을 마치시고 잠들기 전에 떠오르는 콘서트 장면이 있다면요?
이: 저는 지금 데뷔 27년째인데 한 번도 변함없이 저희 밴드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연습은 치열하고 맹렬하게 그리고 무대에 오르는 순간 잊어라. 본능에 맡겨라. 그렇게 말하죠. 그래서 저는 공연을 마치고 더 이상 공연을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기를 노력합니다. 

 

 

우리는 ‘신촌 블루스’라는 팀을 통해 정통 블루스 특유의 끈끈함과 자유로움을 만날 수 있었고 오늘도 여전히 맨발의 디바 ‘이은미’를 통해 전통 블루스의 자유로움를 만끽할 수 있다.  

 

 

 

김: 연습을 혹독하게 하는 걸로 유명하세요. 너무 연습을 해서 잃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좋은 공연을 위해서 연습 리허설을 하는 거거든요. 저는 리허설이나 연습을 너무 지독하게 하다 솔직히 공연을 망친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후회하지 않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완성도 있는 것을 만든다 확신하거든요. 

김: 이젠 가수들도 예능에서 인기를 얻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대세와 상관없이 꾸준히 콘서트를 통해 활동하고 계세요. 왜 꼭 콘서트여야 하나요?
이: 그게 가장 음악가가 해야 할 기본 적인 일이예요. 저는 그 기본적인 일을 하고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안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이 직업인 음악가에게 콘서트는 기본적인 일이라 생각해요.

 

그녀의 콘서트엔 쇼가 없다. 삶의 모든 순간이 조명되고 진정이라는 눈물과 함성이 있을 뿐. 명품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 세월의 흔적마저 또 하나의 가치가 된다. 그녀에게 팬들은 소망한다. “오래오래 노래해주세요.”  

김: 명품 공연을 위해선 목 관리 잘 하셔야겠어요. 연습은 매일 하세요?
이: 매일 안하죠. 지금도 제 목소리는 많이 변형되었고 마구 변형되어가고 있어요. 장기공연이 많았기 때문에... 이미 몇 번의 왜곡을 거친 상태예요. 그게 연습이라 하더라도 무리한 사용은 빨리 그만두겠다는 것 밖엔 안되죠.
김: 그래도 매일 연습을 안 하면 실력이 줄지 않을까요?  
이: 대신 머릿속으로 노래하죠. 

윤: 아주 오래전...셀린디옹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저를 보고 미소만 짓고 목례만 하더군요. 제 기분이 좋을 리 없었죠. 그 때 데이빗 포스터가 디렉을 보고 있었는데 제가 물어봤죠. 왜 말을 안 하는지. 목을 아끼는 거래요. 노래를 하는 내내 녹음실 안에서도 아주 기본적인 말만 하고 목소리는 오직 노래할 때 만 쓰는 거예요.
김: 일상에서도 거의 말을 안 한다는 건가요?
윤: 네 거의 노래할 때만 목소리를 쓴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앨범 녹음할 때는 말이죠. 
이: 전 그렇게 까진 아니예요. 그건 사는 게 아니죠. (웃음) 패티김 선생님이 하루 2시간 꼭 운동 하고 남산 산책을 하고 와인도 한모금도 안 드시고 심지어 무대에서 신는 신발은 무대 밖에서 신어본 적도 없다고 하셨죠.
김: 경외심까지 느껴지네요.

김: 이은미씨도 목소리 보호에 더 신경 쓰셔야겠어요. 인터뷰부터 빨리 끝내야겠네요.(웃음)
이: 그렇게 살아도 누구나 평생 전성기일 수 없어요. 조금 안 좋아지는 진행속도만 늦출 뿐이지... 전 그렇게 해서 평생 노래하고 싶지는 않아요. 

김: 아티스트에게도 직업병이 있을 것 같아요? 
이: 오른손으로만 마이크를 잡고 노래했더니 그래서 그런지 살짝 몸이 오른쪽으로 틀려 있죠. 거의 30년을 오른손으로 마이크를 잡았더니 아무리 필라테스하고 PT하면서 잡아도 소용 없어요.  

김: 히든싱어 어떠셨어요? 참가자 분들은 이런 가수의 어려움과 외로움을 아시던가요?  
이: 그분들이 정말로 내 음악이나 표현을 신중하고 진중하게 들어주셨음에 감사하죠. 방송되지 않은 곳에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는데요, 소리로는 흉내 내지 못하는 부분까지 듣고 또 들으며 저의 열정과 표현을 이해해주시고 사랑해주셨다      는 걸 생각하면 울컥해요. 큰 위로였어요.

김: 히든싱어를 통해서 다시 초심을 가질 수 있었다는 분들 많으신데 어떠세요?
이: 초심은 무서운 말이예요. 절대 가질 수 없어요. 입밖으로 내 뱉는 순간 다시 가질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같을 수도 없고 ... 그리고 같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김: 윤일상씨는 본인의 에세이 <나는 스무살이다>에서 ‘프로페셔널은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고 하셨는데요.
이: 아직 일상씨는 50이 안되서 그러는 거구요. (웃음)
이: 초심은 몸이 기억하고 있다고 봐요. 제 안에 스며들어 있다고 봐요. 저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아요.
김: 아~ 초심이란 것은 잃거나 어디에 놓을 수 없다는 거네요. 내 피부에 뼛속에 초심이 있다는 거죠? 와~ 정말 예술가시네요.
이: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돼요. 늙어간다는 건 누구도 거스를 수 없어요. 거스를 수 없는 그 변화가 누구나의 초심에 계속 녹아들게 되는 거죠. 그게 당연한 거예요. 세상에 다시 가질 수 있는 완전한 초심은 없어요.  

김: 이런 디바에게도 애송이 시절이 있었을까요?
윤: 90년대 초 누나에 대해 처음 들었던 얘기가 신촌에 괴물이 나타났다고들 했죠. 그러면서 테이프를 하나 형들이 틀어주는데 정말 대단하더라구요. 한 16년전의 이은미가 지금보다 나은 면도 있었고 정말 잘 했습니다. 

김: 노래가 운명이라고 느껴본 적 있으세요?
이: 솔리스트가 힘이 들어요. 솔리스트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더군다나 90년대 초에는 여성뮤지션이 많지 않았던 때라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만 두고 싶었던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저 혼자 포기하고 나름 칩거하고 사람도 안 만나고 있다가도 다시 또 돌아오고 정원형 선배 때문이든 <애인 있어요>란 노래 때문이든 다시 또 돌아오고 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아 이번 생애엔 이게 내 운명이구나. 해야겠구나. 했던 거죠.

김: 운명같은 음악에 너무 혼신의 힘을 다하셨나봐요. 번 아웃 증후군으로 오래 힘드셨죠?
이: 네 마음에 감기를 오래 앓았죠. 마치 껍데기만 남은 나를 지켜보는 것 같은 시간이었죠.

김: <애인있어요>란 노래를 부르시면서 번아웃증후군에서 회복하시게 된 건가요?
이: <애인 있어요>란 노래를 부르고 4년 반을 칩거했죠. 철저히 혼자 지냈어요. 하지만 <애인 있어요>를 워낙 많은 분들이 불러주셔서 통장은 따뜻했었죠. 그리고 다시 <녹턴>이란 노래를 받고 부르게 되었는데 그 곡을 받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내 노래란 걸 알았죠.

김: <녹턴>을 쓰실 때 윤일상씨도 울면서 쓰신 곡 아닌가요?
윤: 네 저도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때 만든 곡이예요. 공교롭게도 누나와 힘든 시기가 딱 맞아떨어지네요.   

김: 윤일상씨도 입원을 하셨을 정도로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던 걸로 알고 있어요.
윤: 책에서도 말했었는데요. 일이 힘든 건 이겨내겠는데 사람은 못 이기겠더군요. 관계라는 게 참 힘든 거 같아요. 어린 나이에 음악을 시작하다보니 무시당할까봐 나를 지키기위한 행동들이 오해를 사고 나중엔 감당못할 협박까지 이어지고... 그 땐 정말 안좋은 생각까지도 했었죠.

김: 우울증, 번아웃중후군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분들게 도움이 될 말씀을 해주신다면? 
이: 핸드폰 안의 세상은 허상 이예요. 빨리 깨고 나와야죠. 직접 만나서 체온을 나누고 얘기를 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내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더라구요.

김: 이렇게 힘든 노래를 어느 날 내가 그만 두면 그만 둘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이: “오래오래 노래해 주세요.” 백이면 백분이 그렇게 말씀해 주세요. 대중 음악가는 찾아주는 분들이 있어야만 존재 이유가 있는 직업이죠. 그런데 제 스스로 은퇴를 결정하는 것은 지금까지 제 음악을 아껴주시고 들어주신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라 생각해요. 더 이상 볼만한 가치가 없어서 도태될 때 그만두는 게 정상이라 여겨요.

김: 가수의 삶에서 놓여 지면 뭘 하고 싶으세요?
이: 산에도 실컷 다니고 스카이다이빙도 너무 하고 싶고 여행도 다니고 싶고 아직 히말라야도 못 가봤어요. 꼭 히말라야도 가보고 싶고 그런데 항상 좋은 철엔 공연을 해야 하죠. 

 

이은미 스타일은 다 음악에서 출발한다. “‘소리를 걷다’ 음반에서는 일부러 모공이 보이도록 짙은 파운데이션을 발랐다.  다시 지워가며 자켓 사진을 찍었죠. 모공을 최대한 넓게 때가 껴보이게 찍고 싶었거든요. 쉽지 않은 삶의 궤적을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김: 제 삶이 지루하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이은미씨처럼 해보라 권하더라구요. 사람들 마음엔 자유롭고 아티스트적인 이은미만의 스타일이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이은미 스타일은 어떤 거죠? 본인도 알고 계신가요?

이: 제 스타일은 다 음악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노래를 해오면서 음반을 만들고 공연을 준비하며 자연스레 생긴 것 같아요. 음반을 만들면 그 안에 담긴 의미나 내용을 앨범 자켓에 담고 또 공연에서 표현을 해야하니까 의상이나 헤어 등에 스타일로 나타나는 거죠. 소리를 걷다 음반에서는 일부러 모공이 보이도록 하려고 짙은 파운데이션을 발랐다 지워서 찍었죠. 모공에 때가 껴보이게 찍고 싶었죠. 그리고 의상은 어땠으면 좋겠다. 그러면 헤어는 어땠으면 좋겠다. 하는 과정에서 스타일은 만들어 진 것 같구요. 아무래도 매칭이 좋은 것들은 대중의 기억에도 오래 남게 되는 것 같고, 그렇게 기억에 남은 제 모습을 제 스타일로 기억해주시는 것 아닐까요? 

김: 진정성이 느껴진 거겠죠?
이: 굉장히 집요할 정도로 열심히 해요. 곡을 만들고 노래 녹음하는 일부터 자켓 만들기까지 음반을 듣기 전에 이은미가 저 음반을 통해서 어떤 음악을 담았겠구나 짐작하고 느껴지는 것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전체적인 그 그림과 콘셉트를 짜고 포토그래퍼랑 따로 얘기하고 한마디로 프로듀서나 영화감독이 되어 그 한가지 느낌만 담아내려 노력하는데 진정성이 느껴졌을 겁니다.

김: 두 분이랑 따로 인터뷰를 했는데 마치 한 분과 얘기한 것 같아요. 두 분이 결혼했다면 정말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요? (웃음)
윤: 사사건건 부딪히고 영 아니었을 거예요. 이런 피곤함 나 하나로 족하죠.(웃음) 
이: 작업할 때 보는 걸로 족해.(웃음)

김: 이은미씨가 윤일상씨의 20주년 기념음반에서 부르신 <Steal away> 잘 들었습니다. 듣고 있자니 직접보고 싶다는 맘이 들 정도로 좋았습니다. 윤일상씨가 다른 가수에게 줬던 곡 중에 부르고 싶은 곡 또 있으세요? 
이: 많죠. 하지만 워낙 맞춤 곡을 쓰기 때문에 제가 불러서 안 어울릴 확률이 크죠.
윤: 기성복이 아니라 맞춤복이야?(하하)
이: 윤일상은 써놓은 곡이 있긴 있는데... 이러고 안줘요. 
윤: 누나뿐만 아니라 다른 가수들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죠. 그렇게 미발표된 곡이 1000곡이 넘어요. 오직 그 가수를 위해 썼기 때문에 다른 가수에게 줄 수가 없는 거죠.

김: 가장 ‘이은미답다.’ 하는 노래가 있다면? 
이: 그럼에도 감히 말할 수 있는 노래는 <녹턴>이예요. 녹턴은 처음 들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저에게 다른 감정을 요구해온 적이 없어요. 제가 나이 들어가면서도 다른 감정이 끼어들지 않아요. 신기하죠. 그런 진심이 전해져 요즘 많이들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김: 팬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이: 다른 음악들 많이 들어주시길 당부드려요. 세상엔 다양하고 많은 음악들이 있으니 이은미에게만 잠식당하지 말라고요. 분명 이은미만이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지만 제가 잘 할 수 없다고요. 그러면 삶도 풍성해질 뿐 아니라 제 음악을 느끼실 때 다른 각도로 느낄 수 있어요.

 

기획/글 김태희

고려대 언론대학원 방송전공 석사.
1995년 ‘페이지’ 객원싱어. 
1993년부터 작사가로 활동. 김종국<별 바람 햇살 그리고 사랑> 주영훈<노을의 연가> 포지션<BLUE DAY> 박효신<메아리> 등의 가요와 <여우와 솜사탕> <장희빈> <히어로> <역전의 여왕> <태양을 삼켜라>등의 드라마 OST 350여곡 작사. 
현재 국민대콘서바토리와 서울문화예술대학, 한국 예술원, 서울종합예술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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