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일 금융부장 >

[이뉴스투데이 김희일 금융부장]소위, 언론계에는 불문율이 있다.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가 그것이다. 기자와 홍보(취재원)의 관계는 소위 ‘불가근 불가원’의 관계라고 일컬어진다. 너무 가까워도 안되고 너무 멀어도 안되는 하지만 뗄래야 뗄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필자 역시 기자일에 입문후 경륜이 쌓여가며 많은 홍보관계자들과의 만남과 이별을 반복해 왔다.

수많은 인연중에는 현재도 그 인연을 이어가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본인이 언론에 있을 때나 언론을 떠나 기업에 있을 때도 한결같이 그 관계를 유지해왔다. 여전히 그사람들은 나에게 좋은 선배이자 후배였다.

반면, 필자가 언론을 떠났을 때 철저히 외면했던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언론에 돌아와 다시 기사를 쓰고 이해관계가 얽혔을 때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필자와의 연줄과 친분을 강조한다.

어쩌면 참으로 웃긴 세상이기도 하다.

업계에 처음 돌아와 홍보관계자들을 만날 때 들은 이야기가 있다.

부모세대가 잘못하면 자식이 기자의 길을 걷는다고 한다. 하지만, 조부모세대가 잘못하면 그 자식이 기자에서 홍보의 길을 걷는다고 한다. 나아가 조부모의 부모세대 즉 증조부 증조모 세대가 잘못하면 그 손자는 기자하다가 홍보로 갔다가 다시 기자를 한다고 한다.

정작,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필자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바로 저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필자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업계에서 필자를 겨냥해 만들어낸 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실제 필자의 아버지도 기자일 하시다가 홍보를 하셨었고 필자 역시 기자일 하다가 홍보로 갔다가 기자로 복귀한 탓이다. 결국 필자의 조상이 잘못이 많은 탓?

과거, 기자일을 하면서 ‘기자일에 대한 긍지’가 적었던 탓에 홍보업무를 하는 친구들을 마냥 부러워 하던 시절이 있었다. 마감시간에 쫓겨서 하루살이와 같은 삶을 사는 필자와 달리 그들은 마감같은 압박에 시달리지도 않고 뭔가 여유가 있어 보인 탓이다. 자연히 홍보부 직원들이 필자에겐 동경의 대상이었다.

결국, 필자도 솔개가 인생을 다시 재정립하는 그 40대에 홍보부에서 인생 전환 기회를 맞았다. 모기업 홍보부 과장으로 새출발 했던 것.

새출발 당시 하루 하루가 설렘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같은 설렘과 행복도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바로, 우리 회사를 출입처로 하는 기자들이 써놓은 비판 기사들 때문이었다.

사실 확인 여부를 떠나 의도성을 가진 기사도 많기 때문에 이의 처리에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당시 홍보맨으로서 의욕이 앞선 필자는 기자와 홍보맨 간 ‘창과 방패’의 역할에서 나름대로 본인이 가진 경험치를 바탕으로 날카로운 창을 막는 튼튼한 방패를 가졌다고 자신했다.

그런 탓에 찌르는 창끝을 휘어버리게 만드는 방패 역할을 하기위해 많은 무리수를 두었다. 결국, 필자 때문에 기자일을 접게 된 후배 기자들도 몇몇 나왔다. 사실이 아니라는 이유로 오히려 기자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탓에 그들이 지쳐 나가 떨어지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나름대로 뿌듯함과 자신감을 가졌다.

하지만, 이는 거꾸러 ‘기자와 홍보의 관계가 뛸래야 뛸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망각한 우를 저버린 것이다.

이같은 일이 반복 되며, 오히려 출입 기자단과 언론사 데스크들이 당시로선 홍보업무에 충실하다고 자긍심까지 컸던 필자에 대해 성토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필자가 몸담고 있는 회사에 대한 사실 근거 확인 없는 안좋은기사들이 마구 쏟아지는 구실도 됐다.

당시 홍보업무를 맡은 필자로선 홍보를 통해 ‘호된 신고식’을 치르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이후, 필자는 과거에 해보지 않은 소위 ‘진정한 홍보맨’으로 거듭나는 훈련을 하게 된다. 설사, 잘못된 기사라 하더라도 기자를 윽박 지르고 강하게 부인하기 보다는 ‘죄송합니다’ ‘기자님 잘 좀 봐주세요’ 등등 일찍이 해보지 않은, 먼저 저자세로 다가가는 훈련을 하게 된다.

굽히는 성격이 아닌 필자입장에서 굽혀야 한다는 데 따르는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와중에 몸담고 있는 회사가 중국에 진출케 되면서 필자의 선택은 ‘중국내 홍보’였다. 중국의 언론 환경은 한국과 사뭇 다르기에 기대가 컸다.

정작, 필자가 경험한 ‘중국의 홍보 환경’은 한국과 사뭇 달랐다. 이곳은 한국의 기자들처럼 관심 갖지 말아 달라고 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관심을 끌려면 소위 ‘거마비’라는 것을 줘서 취재를 요청해야 했다. 홍보 업무의 역할도 한국처럼 막는 것보다는 웨이신 웨이보등을 통한 인지도를 높이는 것에 치중해야 했다.

이같은 중국에서의 언론 홍보 경험 등을 뒤로 한 체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필자가 선택한 삶은 또 그 짓이었다. 속된말로 ‘기자질’인 것.

수레바퀴 쳇바퀴 돌 듯 필자는 공교롭게도 기자, 홍보를 거쳐 다시 기자로 돌아오는 삶을 선택케 된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이 우물을 다시는 안 먹겠다고 침을 뱉었지만 결정적인 순간 목마름 때문에 그 우물을 다시 찾게 된다는 것.

필자가 홍보 업무를 담당하던지 혹은 기자일을 하던지, 이 역시 일하는 이 순간이 정말 소중한 순간이다. 다만,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를 위해서 혹은 신문사를 위해서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다보면 서로 다투기도 하고 화해도 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힘든 순간이 올수도 있고 좌절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는 이 일이 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진 시간속에서 가장 보람된 순간이라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주어진 일을 해 나간다면 내가 현재 기자이든 혹은 홍보맨이든 가장 보람된 순간이 되지 않을까?

그동안 거쳐간 그리고 현재 만들어 가는 소중한 인연들을 한 번 씩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리고 그들에게 좋은 기억을 심어주자. 이것이 먼 훗날 우리 자신에게 '좋은 추억'이자 보람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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