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툰 김성인 대표

지난 한 주, 전세계의 모든 시선은 작은 바둑판 위로 향했다. 1202개의 CPU로 이루어진 인공지능 '알파고'와 '인류의 대표'격인 이세돌 9단의 맞대결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구글'의 천재 개발자 허사비스가 만든 이 인공지능은 1초에 최대 10만 수를 내다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이 만든 이 인공두뇌가 인간의 두뇌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에 대한 호기심이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마저 이 대결에 집중케 했다.

사실 알파고의 승리는 어느 정도 예견된 사실이다. 일반적인 프로 기사가 1년 동안 약 1천 번의 대국을 한다면, 알파고는 그 1천 배인 100만 번 이상의 대국을 그것도 한 달 안에 해낸다. 모든 점에서 인간의 능력을 웃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세돌 9단은 기어코 승리를 따냈다. 비록 4번의 패배가 있었지만, 인간의 두뇌가 인공지능에 비해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알파고가 언젠가는 모든 바둑 기사들을 이긴다 하더라도 한 가지 절대 깨달을 수 없는 한 수가 있다. 바둑판 위에 인간의 삶이 있다는 것. 

바둑은 우리네 인생을 그대로 옮겨놨다. 처음엔 작은 점이지만 점차 몸을 키우고 경쟁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인생의 기승전결이 그려진다. 그래서 돌이 펼쳐진 형태와 양상을 일컬어 '삶'이라고 칭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 중에서도 '무리수', '꼼수', '사활'처럼 바둑 용어에서 파생된 것들이 꽤 많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최근 바둑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웹툰계에서도 '미생'을 필두로 바둑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 단연 주목 받고 있다.

바둑을 소재로 한 웹툰을 논할 때 '미생'을 빼놓고 말할 수 있을까? 2012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미생'은 바둑에 사회인의 삶을 그대로 녹여내 대한민국에 '미생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된 드라마는 시청률 기록을 세웠고, 이전까지 생소했던 '미생'이란 단어의 의미와 용도를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미생'은 집이나 대마 등이 살아있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윤태호 작가는 사회초년생인 주인공 장그래 뿐만 아니라 사회라는 바둑판 위에서 자신의 삶을 완성시키지 못한 모든 이들이 미생이라고 이야기한다. 종합 상사를 배경으로 철저한 취재를 통한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지만, 프로기사 지망생이었던 장그래를 통해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을 바둑 용어로 풀어내는 섬세함이 신드롬까지 불러일으킨 원동력이라 할 수 있겠다. 매회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89년 응씨배 결승 5대국 조훈현과 녜웨이핑의 대국 기보를 덧붙여 완결까지 보고 나면 마치 멋진 바둑 경기를 관전한 것 같은 개운함도 느껴진다.

짬툰에서 연재 중인 '명인'은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소년 이정호가 바둑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통해 스스로 명인의 길을 걷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바둑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진 삼촌이 정호가 바둑을 두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 되지만, 정호는 삼촌 몰래 학교에서 바둑 동아리를 만드는 등 그 열정을 잠재우지 못하고 더욱 키워나간다. 이 과정에서 소년이던 정호는 점점 어엿한 바둑 기사가 되어간다. 바둑이라는 소재를 통한 일종의 성장 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다. 

 

파란에서 연재됐던 '바둑 삼국지'는 실존 인물인 조훈현을 주인공으로 한중일 바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김종서 작가의 '전신 조훈현'이라는 책을 원작으로 조훈현의 유년 시절부터 바둑계의 정점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 많은 인기를 얻었다. 삼국지라는 제목처럼 대국 장면을 마치 장수들의 '일기토'처럼 묘사한 연출이 돋보인다. 수읽기에서는 치밀한 심리 묘사로 독자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작가의 건강 악화로 인해 완결을 보지 못한 채 연재가 종료된 점이 두고두고 아쉬울 따름이다.

장편은 아니지만 네이버에서 선보였던 단편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을 꼽자면 신인인 오민혁 작가의 '화점'이 아닐까. 단편의 매력을 맛깔나게 살린 신인 작가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놀라움을 선사한다. '화점'은 바둑판에 표시되어 있는 아홉 개의 검은 점이다. 과거에는 검은 점이 아닌 꽃잎 모양으로 표시되었었기 때문에 화점으로 불리게 됐다. 작가는 이 화점을 돌아가신 스승님과 살아있는 제자가 멋진 대국을 시작하게 만드는 착점으로 이용해 승패와 상관 없는 휴머니즘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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