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 분야에 걸쳐 트랜드의 영향이 확대되면서 광의적으로 트랜드가 곧 '생활' 자체로 변화하고 있다. 트랜드를 통해 오늘날의 삶의 모습을 정의하고 내일의 삶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게 된 것. 이에 이뉴스투데이는 트랜드 전문가 인터패션플래닝의 박상진대표를 통해 트랜드 변화를 진단하는 장을 마련했다. 

박상진대표

(주) 인터패션플래닝 대표이사

(주) 트렌드포스트 대표이사

에이다임 인터패션플래닝사업부 前 본부장

매일경제리서치 / 트렌드모니터 前 경영이사

지난 5년 동안 발표됐던 가요의 평균 수명은 10주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공급과잉이었다. K팝이란 기치아래 발표된 곡도 가수도 너무 많았다. 한류에 편승해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가수와 가요의 소비가 급증했지만 소비 대상으로서의 유효기간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고 가요에 대한 소비 빈도와 만족도는 반비례 하게 됐다.
 
그나마 가요시장에서 장수(?)를 누렸던 곡들은 두 종류였다. 싱어송라이터의 수작이거나 기성 가수의 노래를 재해석해 새롭게 구성한 곡이었다. 싱어송라이터의 곡은 가수의 경험과 지식, 열정이 오랜 시간의 숙성으로 태어나기 마련이다. 리메이크 곡은 원곡이 가진 탄탄한 구성과 흐름을 담보로 전개된다.
 
시퀀싱 프로그램이라는 게 있다. 컴퓨터를 이용해서 작곡을 할 때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다. 이 프로그램 덕분에 작곡은 쉬운 일이 됐다. 음악에 대한 기초 공부와 경험이 부족해도 얼마든지 작곡가로서 이름을 알릴 수 있다. 작곡뿐만이 아니다. 작곡된 노래에 가수의 목소리와 악기의 연주를 입히는 프로듀싱 역시 쉬워졌다. 미디사운드를 익숙하게 다룰 줄 안다면 개별 악기에 대한 이해 따위는 무의미하다.
 
노래 한 곡이 만들어져서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1995년이 평균 1년이었다면 2005년은 6개월, 2015년은 3개월에 불과하다. 이는 시장에서 활동하는 모든 사람의 평균 학력과 지적 능력이 과거보다 월등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소비자 역시 그렇다는 점이다. 소비자는 감성 소비에 대한 경험이 충분하고, 가치 소비를 판단할 줄 알게 돼 3개월 만에 나온 노래의 값을 직관적으로 매긴다. 그 값의 최대치가 10주인 셈이다.
 
요즘 가요의 수명이 왜 이렇게 짧은지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가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의 양이 딱 그 만큼이기 때문이다. 이전보다 많은 사람이 가요시장의 생산자 또는 공급자로 살아한다. 하지만 음악인으로 불리는 수는 현격하게 줄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란 자본주의적 체제에 가요계 전문가의 맥은 끊어질 위기다.

‘집방’시대가 왔다. 이 흐름의 선두주자는 스웨덴 브랜드 이케아였다. 이케아는 2014년 12월 한국 시장에 문을 열었고, 9개월 만에 매출 3천 억 원을 돌파했다. 언론에서는 이케아가 ‘부담 없이 살 수 있고, 더 쉽게 더 자주 바꿀 수 있는 가구 시대’인 ‘패스트리빙(Fast Living-방탕한 생활 ?)'을 몰고 왔다며 난리법석이었다. 값싸고 디자인이 좋은 상품이 쏟아질 것이라며 시장의 일대 혁신을 예고했다. 절반은 맞았다. 홈인테리어 시장이 제대로 들썩이고 있다.
 
소비자는 이케아에 대한 시중의 평판에서 ‘값 싸고 디자인 좋은 가구’보다 ‘손쉽게 만들 수 있다’에 가치를 뒀다. 한 눈에 봐도 괜찮은 가구를 저렴한 가격에 쓸 수 있다면 직접 조립하는 번거로움은 감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막상 조립을 해본 소비자는 조립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대부분이 예상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아이러니 한 건 그 결과 상품에 대한 만족도가 기대치를 웃돌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뤼디거 융블루트가 쓴 ‘이케아, 불편을 팔다’는 의미가 큰 책이다. 이케아는 가구를 비롯한 삶의 일상에서 소비되는 소품들의 가치가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의 애착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았다.

즉 소비자가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고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담아 소품을 완성시켰을 때 사용에 대한 만족도와 기쁨을 크게 느낀다는 점에 천착했다. 가히 천재적이다. 사람은 본디 그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물이든 수고를 넣은 만큼 애착을 갖기 마련이다. 수고는 그 대상에 ‘귀하고 아름다운’이란 콩깍지를 씌운다.
 
우리의 공간(집, 사무실 등)에는 몇 개의 사진액자가 있을까.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 중에 온라인 상태가 아닌 곳에서 볼 수 있는 사진은 얼마나 있을까.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사진을 보여주려 마음 편하게 핸드폰을 상대방에게 맡길 수 있는가.

너무 쉽고 편리하게 찍은 여러 장의 사진 중 하나를 골라 저장하는 것은 필름을 넣고, 카메라 뚜껑을 열고, 초점을 잡고, 빛을 가늠하는 것과 수고를 비교할 수 있는가. 사진을 통한 ‘공유와 공감’의 가치가 ‘제공과 동의’의 가치로 둔갑한지 오래다.
 
우리가 암기하는 전화번호는 몇 개 일까. 핸드폰이 꺼졌는데 전화해야 할 대상이 생겨 힘들었던 경험은 몇 번인가. 그깟 전화번호,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우리는 친구라고 부르거나 가족처럼(형, 누나 등) 부르는 상대에게 그 정도의 수고도 할 마음이 없는 건 아닐까.

겉만 번지르르한 관계의 틀에서 적당한 예의로 만족하는 건 아닐까. 상대와 나, 둘 중 하나가 어렵고 힘들 때 그깟 전화번호의 소용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팝핀(poppion)에 열광했던 10대가 오래된 가수의 노래를 찾는다. 리메이크된 곡에 반했지만 가사에 대한 매력을 느끼며 원곡에 심취한다. 아버지 세대를 풍미했던 가수에게 갈채를 보내고, 누군지도 모를 작사가의 글재주에 탄복한다. 떡볶이 집으로 바뀐 고택에서 이런 집을 어떻게 만들 수 있냐며 수선을 떤다.

우리가 생산성 제일주의 아래서 살아남으려 기꺼이 팽개쳤던 수고의 값을 신세대가 찾아 나섰다. 기성세대는 자신이 아는 것을 얘기해 줄 수 있어 반갑다. 수고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체감 가치를 증폭시킨다. 이제 수고를 알아주는 소비자가 많아졌으니 수고에 대한 제 값이 거래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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