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상민 기자]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계속 중고차 시장에 서 있을 것입니다.” 서울 가양자동차매매단지 오엠씨모터스에서 일하는 홍순문 전무(53.사진)의 얘기다.
 

우리나라에선 불행하게도 ‘중고차 딜러’하면 흔히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부모까지 속일 수 있는 사람이 중고차 딜러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정도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를 마주 대하면 이런 생각은 곧 사라지게 될 것이다. 얼굴이 믿음이고, 말이 곧 신뢰이기 때문이다. 


만약 중고차 시장에서 홍 전무와 같은 딜러들만 만날 수만 있다면 고객들은 아마도 굳이 신차를 살 이유가 없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중고차 딜러인 그가, 지금까지 자동차와 인연을 맺고 있는 사연은 이렇다. 
 

지난 1983년 현대그룹에 입사하면서 군 입대 전에 따 놓은 운전면허증 덕분에 현대차로 발령을 받고 울산 공장 사무실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당시는 포니2 5마일 범퍼가 캐나다에 수출이 되면서 상승 분위기였고 스텔라도 당대 최고의 베스트 셀링카로 등극하는 등 현대차의 도약기였다. 7년 8개월 정도의 현대차 직장생활을 접고 선배의 권유로 1991년 서울로 올라와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동차정비업체 관련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낯선 분야의 일이라 결국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후 조그만 카센터를 설립해 운영했지만 이 역시 IMF의 된서리를 피하기 어려웠다. 결국 1989년 자본금이 들지 않는 자동차 보험업에 뛰어 들게 됐다.

 
하지만 주변의 연고가 없다보니 생각을 해 낸 방법이, 대단지 아파트에 ‘자동차 무료감정’이란 현수막을 내 걸어보자는 것이었다. 아파트 한 단지만 잡으면 자동차가 족히 수천 대 될 것이라는 단순한 계산법이었다. 말 그대로 단순했고 순진했다.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할 정도로 보험영업 결과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그의 자동차보험 고객으로 남아 있다고 하니, 그가 어떤 성격의 사업자인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일단 무료감정 일을 철수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던 중 중고차를 구매한 한 고객이 “지방에서 서울로 명의 이전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때 생각해 낸 것이 ‘중고차 무료 감정’이었다는 것. 그 고객의 말에 따르면, 중고차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이 바로 지금의 중고차 딜러 ‘홍순문’을 만들게 했다. 

 
이렇게 1990년대 중고차 무료 감정이란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이 바로 홍 전무다.

당시 유니텔이나 하이텔, 천리안 등 PC통신의 자동차 게시판에서, 직접 자신이 만든 홈페이지를 통해 ‘중고차 무료감정’을 홍보하면서 고객들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물론 감정에 대한 대가로 받은 수수료는 없다. 

 
가끔 욕심이 나서 “대충 차를 구입하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이 빠질 때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고객이 중고차를 잘못 구입한 후 인터넷을 통해 “이 아저씨가 차를 엉망으로 감정해준다”는 불만의 글들이 도배되기도 하는 날에는 한방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던 것. 그는 매 순간 “차 한대를 감정하더라도 냉정하게 판단하자”는 의지로 유혹을 이겨냈다. 

 
오히려 중고차 구입을 말리고 돌아오는 날에는 고객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기도 했다. 한 푼의 수수료도 받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헛걸음을 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보람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커져가면서 이 일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그는 “약 9년 동안 600여명의 고객에게 중고차 구입을 도와드렸지만 불만의 글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보면, 고객들이 오히려 저를 많이 이해를 해 주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중고차 무료 감정과 관련해 다양한 일들을 해 왔다. 한 중고차 사이트에 시 운전을 하지 않고도 버젓이 ‘오토미션 정상’이라고 올라 와 있는 것을 보고, 게시판에 글을 올려 시 운전을 하도록 유도하기도 한편, 고객으로부터 감정 의뢰가 들어오면 차를 꼼꼼하게 점검한 뒤 구입 결정을 했더라도 "다른 차를 더 찾아 보자"며 말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는 “무료점검 초창기에 차라리 중고차 딜러를 했으면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지내놓고 보면, 자신의 나이 40대를 고스란히 중고차 무료감정이라는 ‘봉사 활동’에 받친 것에 대해선 후회는 없다고 했다.

 
무조건 고객의 입장에서 자동차를 점검하는 습관이 이때 만들어 진 것이다.
그후 2004년엔 여러 단지의 딜러들이 좋은 차를 안내해 보자는 취지로 ‘중고차드림팀’이란 모임까지 만들면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이 사이트에서 ‘구입후기’ 게시판을 만들어 중고차 판매자에게 맘껏 욕을 하도록 했다. 사실 중고차는 꼬투리를 잡으려면 한도 끝도 없는 법. 드림팀 회원들에게 “차라리 차에 대해 자신이 없으면 차를 팔지 말라”는 조언도 서슴지 않았다. 고객에게 “좋은 차를 찾아 드리자”는 의지로 시작했지만, 초창기에는 여러 시행착오도 겪었다. 

 
그후 2007년부터는 ‘중고차드림팀’ 운영에만 매달렸다. 그러던 중 “허위매물을 올리는 딜러들로 인해 정상적인 딜러가 피해를 많이 보고 있다”는 드림팀의 제보로 ‘허위매물’이란 용어를 세상에 알리게 된다. 

 
그가 서울시 가양자동차매매단지에서 중고차 딜러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지난 2011년. 순전히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그의 영업 방식은 남다르다. 자동차의 가격에 딜러 마진을 넣지 않고 수수료만 받는 방식이다. 즉, 박리다매로 차를 판매하면서 많은 고객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는 “한대만 아니라 여러 대의 자동차를 보는 방법을 설명하다 보면 나중에 고객 분이 스스로 좋은 차를 찾게 된다”면서 “시운전을 해 보고 차주 딜러와 같이 만나 마지막 가격을 정하게 하고, 남은 이전비도 돌려 드리고 있다”고 했다. 

 
지난 3년간 중고차 딜러 일을 하면서 거래한 차량은 약 250대 정도. 아직까지 고객과 언성 한번 높여 본적 없다. 250대의 중고차를 거래했다면 엄청난 돈을 벌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착각. 수수료만 받은 거래이어서 큰 마진은 없다.

 
그는 자동차를 만나면 고객의 입장에서 감정한다. 단점을 먼저 찾는 것이 다른 딜러와 다른 점이다. 이렇다보니, 그를 찾는 고객들은 항상 줄을 잇는다. 바쁠 때에는 오전 10시, 오후 2시로 각각 나눠 예약 손님을 받고 있다.

 
그의 목표는 명쾌하고 단순하다. “하루에 한대씩 좋은 차를 찾아 고객에게 거래를 성사시키는 일”이다. 또 그가 만든 중고차드림팀도 불신이 깊은 중고차 시장에서 신뢰를 받고 중고차 시장의 대표 브랜드로 우뚝 서게 하는 것이다. 

 
흔히 중고차 딜러에 대해 ‘쉽게 돈 벌러 왔다가 쉽게 포기하고 돌아가는 직업’이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1년 이상 시간을 투자할 여력이 있어야 하며,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지 못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은 직업이라는 것의 그의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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