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경 금융통화위원. [사진=한국은행]
서영경 금융통화위원. [사진=한국은행]

[이뉴스투데이 염보라 기자] “산업·고용 등 미시적인 영역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는 동시에, 금리 정책 외에 여타 보완 정책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내달 20일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서경영 금융통화위원은 26일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점차 복잡해지는 통화정책 환경을 언급하며 이같이 제언했다.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 물가 상승 등으로 인플레이션 재확산 우려가 커지며 전통적인 통화정책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워지면서다.

거시·미시 영역의 복합적인 연구와 함께 국고채 단순매입 등 대차대조표 정책을 비롯해 한국은행법상 추진할 수 있는 각종 시장안정 정책을 과거 대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서 위원이 금통위원 임기를 보낸 4년간 한국은 사상 최저 금리와 최고 금리를 모두 경험했다.

2020년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팬데믹 충격에 대응해 사실상 ‘제로금리’ 시대를 열었고, 저금리 장기화는 인플레이션을 야기했다. 

물가상승률이 관리 목표 수준(2%)을 넘어서며 2021년 8월 금리인상이 단행됐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새로운 물가 자극 요인으로 등장하며 ‘쉽게 잡힐 줄 알았던’ 물가가 6%대까지 치솟자, 금통위는 더 긴박하게 움직였다.

전례 없는 두 번의 ‘빅스텝(0.50%p 인상)’을 포함해 사상 첫 7회 연속 인상 기록을 썼다.

빅스텝은 물론 세 차례의 ‘자이언트스텝(0.75%p 인상)’까지 밟은 미국에 비해서는 완화된 인상폭이었지만, ‘부채 의존도’가 높은 국내 여건에는 부담이 됐다.

그렇게 금통위의 또다른 고려사항으로 떠오른 게 ‘금융안정’이다.

서 위원은 “초저금리 기간 중 누적된 가계부채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로 인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간 상충문제가 어느 나라보다도 컸다”고 회상했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101.5%로, 미국(73.1%)보다 월등히 높다. 게다가 2022년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 시장에 자금 경색이 오면서 부동산PF를 중심으로 시장 불안이 확산됐다.

물가안정과 금융안정간 상충 문제를 학계는 ‘두 마리 토끼’로 묘사했다. 어느 토끼를 먼저 잡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경제학자들간 의견이 분분했다. 

‘물가안정 우선’을 강조하는 측은 “물가안정 하나만 생각할 수 없는 금통위의 고민이 이해된다”면서도 “금리인상을 머뭇거리고 있다는 신호로 작용할 경우 금리인상 효과를 낮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금융안정과의 균형을 강조하는 측은 “국내 상황, 가계부채와 기업자금시장이 버틸 수 있나를 봐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만큼 까다로운 난제였던 셈이다.

26일 한국은행에서 진행된 서영경 금융통화위원 기자간담회 모습. [사진=한국은행]
26일 한국은행에서 진행된 서영경 금융통화위원 기자간담회 모습. [사진=한국은행]

이 가운데 금통위가 꺼낸 묘수는 금리 정책과 시장안정화 정책의 투트랙 접근이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는 한편 △국고채 단순매입 △증권사 대상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중·저신용 기업에 대한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기구(SPV) 대출 등 한국은행법상 활용할 수 있는 각종 정책을 활용해 금융불안에 대응했다.

서 위원은 “금리인상 기조를 유지하면서 물가안정에 집중하되 금융불안 문제는 시장유동성 공급 정책을 통해 보완하는 것이 고금리의 파급 경로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는 방법이라 판단했다”면서 “한은 내에서도 거시적인 긴축 대응과 배치되는 것 아니냐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분리 대응한 게 효과적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전했다.

문제는 금통위의 노력에도 좀처럼 잡히지 않는, 이른바 ‘sticky(끈적끈적)’한 물가다.

지난 1월 2%대로 내려온 물가상승률은 지난달 다시 3%대로 뛰었으며, 향후 1년간의 물가 전망치인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전월 대비 0.2%p 상승했다.

한국 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출신인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화)정책 방향이 바뀌면 물가도 올라갈 때 빨리 올라갔듯 내려올 때 빨리 내려와야 하는데 (현재는)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요즘 ‘sticky(끈적끈적)’라는 용어를 쓴다.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학계가 관심을 갖는 연구 주제”라고 뒤띔했다.

이와 관련, 서영경 금통위원은 물가를 결정짓는 복합적인 요인에 대한 다각도 연구를 강조했다. 산업의 지형 변화와 저출산 등 구조 변화 등이다.

서 위원은 “(인플레이션) 위기 기간이 산업지형, 고용구조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통화정책의 어려움이 가중됐으며, 중장기적으로는 기술변화, 저출산·고령화, 글로벌 공급망 변화, 기후변화 등 구조변화로 통화정책 여건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면서 “이에 대응해 앞으로도 거시경제상황은 물론 산업·고용 등 미시적 영역에 대한 연구도 강화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또 “통화정책의 파급경로 축소 등 여건변화를 반영하는 동시에 대차대조표 정책, 거시건전성정책, 외환정책 등 여타 보완적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 여러분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소비자 고발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메일 : webmaster@enewstoday.co.kr

카카오톡 : @이뉴스투데이

저작권자 © 이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