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최은지 기자] 정부가 식품업계에 물가안정 협조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가격 인상 자제는 기본, 국제적으로 원재료 가격이 내려간 경우에는 이를 반영해 제품 가격 인하를 고려해달라는 게 핵심이다. 

20일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에 따르면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17.3으로 전월 대비 0.7% 하락했다. 이 지수는 지난해 7월 124.6에서 꾸준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곡물 가격지수는 113.8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인 2022년 3월(170.1) 대비 33.1% 하락했다. 유지류 가격지수 또한 2022년 3월 251.8로 고점을 찍은 뒤, 지난달(120.9)에는 절반 수준으로 내렸다. 

이처럼 국제 원물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자, 정부는 국내 식품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내릴 수 있는 배경이 생겼다고 봤다. 실제 한훈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는 지난 13일 19개 식품사 대표 및 임원과 간담회를 열고 “국제 원재료 가격 변화를 탄력적으로 가격에 반영해 물가 안정에 협조해 달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한 차관은 코스피 상장 식품 기업 37곳 중 23곳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전년 대비 개선됐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사실상 영업이익률이 개선된 만큼 기업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되라는 의미다. 

서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설탕 제품들. [사진=연합뉴스] 
서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설탕 제품들. [사진=연합뉴스] 

◇밀가루부터 설탕까지···‘원재료’ 가격 압박

가장 먼저 백기를 든 곳은 제분업계다. CJ제일제당은 다음달 1일부터 소비자 판매용 밀가루 제품 가격을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10년간 CJ제일제당이 소비자용 밀가루 가격을 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상 품목은 중력 밀가루 1㎏, 2.5㎏ 제품과 부침용 밀가루 3㎏ 등 3종으로, 대형마트 정상가격 기준 제품별 3.2∼10%, 평균 6.6% 수준 인하된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국제 원맥 시세를 반영하고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에 적극 동참하는 차원에서 가격을 내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CJ제일제당이 국내 밀가루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 만큼, 다른 제분 업체들도 조만간 인하 대열에 합류할 전망이다. 실제 대한제분과 삼양사도 밀가루 가격 인하 시기와 인하율에 대해 내부 논의에 돌입했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이를 시작으로 식용유·설탕 등 다른 원재료에 대한 가격 인하 압박도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단 식용유는 밀가루처럼 가격 인하 요인이 있다는 점에서 유력하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일 물가관계장관 회의에서 “최근 국제 곡물 가격이 2022년 고점 대비 절반가량 하락했지만, 밀가루·식용유 등 식품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고물가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있다”며 밀가루와 함께 식용유를 직접 거론한 바 있다. 

설탕의 경우, 다양한 가공식품에 활용된다는 이유로 주목받고 있다. 우선 정부는 설탕 가격이 담합 등의 이유로 과도하게 오르지 않았는지 확인에 나섰다. 전날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 국내 제당 3개 업체에 대해 조사관을 보내 설탕 판매 관련 자료를 확보한 것이다. 

이와 관련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설탕은 가격 인하 요인 없이 국제적으로 상승세가 지속되는 상황”이라면서 “다만 설탕의 활용처가 다양한 만큼 국민들의 식생활과 직결되는 품목이라는 판단하에 우선 점검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19일 오전 서울의 한 대형마트 라면 매대에서 소비자가 라면을 고르고 있다. [사진=안경선 기자]
서울의 한 대형마트 라면 매대에서 소비자가 라면을 고르고 있다. [사진=안경선 기자]

◇식품업계 “지난해 인상요인도 반영 안했는데···”

이러한 정부의 행보는 결국 밀가루, 식용유, 설탕을 활용해 가공식품을 생산·판매하는 식품업체들을 타겟으로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정부가 지난해에도 라면 가격 인하를 이끌어내기 위해 선제적으로 제분업체들을 압박, 밀가루 가격을 내리게 만든 전례가 있어서다. 

다만 식품업계가 이번에도 가격 인하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밀가루 이외에 다른 원부자재 가격과 인건비·운송비 등의 비용 부담이 커, 밀가루 가격 인하 이유만으로 제품 가격을 낮추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특히 라면의 경우, 이미 지난해 가격을 내린 바 있어 또다시 가격 인하를 결정하기 무리라는 평가도 나온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에 인건비 등의 인상 요인이 발생해도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고 견뎌왔다”면서 “제품 가격에 인상 요인은 반영하지 않고, 인하 요인만 반영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선 말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실제, 지난해 말에는 식품업체들 사이에서 원부자재 부담 등을 이유로 가격 인상을 발표했다가 이를 철회하는 현상이 줄이어 나타난 바 있다. 정부가 국내 주요 식품업체 현장을 방문하며 물가 안정 협조를 여러 차례 요청한 결과다. 이에 제때 가격 인상 요인을 반영하지 못한 식품업체들로서는 이번만큼은 가격 인하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이번 밀가루 인하가 소비자용에 한정돼 이뤄졌다는 점도 주목할 사안이다. 기업에 납품하는 용도의 밀가루 가격은 기업 간 개별적인 계약으로 이뤄져, 대외적으로는 밀가루 가격이 낮아진 것으로 보이지만 식품업체 입장에선 지출 변동이 크게 없는 상황이다. 

또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는 “가격 인하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난해보다 더 결정하기 힘든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라며 “최근 소비자들의 부담이 가장 크다고 하는 건 과일 등 신선식품이다. 장바구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농수산물을 두고, 가공식품의 가격을 압박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을까 의문도 든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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