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반도체의 약진에도 관련 소부장 기업들의 부침은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VCG]
우리나라 반도체의 약진에도 관련 소부장 기업들의 부침은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VCG]

[이뉴스투데이 고선호 기자] 인공지능(AI) 메모리의 폭발적인 수요 등 ‘국산’ 반도체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가운데 정작 시장의 성장을 이끌어 왔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은 정체기를 맞았다.

세제 지원과 인프라 구축 등 정부 차원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지만, 추가 예산 편성은커녕 관련 기업들의 육성을 위해 편제됐던 연구개발(R&D) 예산마저 대거 삭감되면서 대기업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12월 및 연간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생산은 5.3%가 감소해 2001년 이후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올해 1월 들어서도 D램과 시스템 반도체 등 생산량이 크게 줄었고 반도체 재고도 1.8%가량 증가했다. 설비 투자 규모 역시 반도체 제조용 기계 수입액이 지난해 12월 일평균 8130만달러에서 1월 6190만달러로 급감하는 등 전반적인 하락세를 기록했다.

정부는 반도체 생산량 감소에 대해 분기 초 생산이 감소하는 경향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지만, 소부장 업계의 부침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소부장넷과 현대경제연구원이 연도별 산업 현황을 집계한 ‘한국의 소재·부품·장비 산업 현황’을 보면 지난 20년간 소부장 산업은 부품 산업이 사업체 수, 종업원 수, 생산액, 부가가치액 모두 60%를 상회하면서 성장을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부장 산업의 생산액과 부가가치액은 지난 2001~2020년까지 연평균 6% 이상의 성장을 이어왔다.

반면 ‘2024 소재·부품·장비 산업 무역통계 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소부장 산업의 무역수지는 902억 달러로 전년 대비 17.85% 감소했다. 2016년 997억 달러를 기록한 이후 처음으로 소부장 무역수지가 1000억 달러 아래로 내려갔다. 소부장 수출액은 전년 대비 10.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별 소부장 교역 무역수지를 보면 중국 무역수지가 101억달러 흑자로 전년 254억 달러와 비교해 절반 이상 감소했다. 대일본 교역에서도 202억달러에 달하는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대미국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248억달러로 전년 242억달러와 비교하면 소폭 증가했으나, 반도체 시장의 성장세를 감안했을 때 전체적인 대외 무역 규모는 기대치를 밑돌았다.

하지만 소부장 업계의 어려움에도 정부의 R&D 관련 지원 예산 규모 중 8할 이상이 증발하면서 업계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의 올해 예산안 중 소부장 R&D 관련 예산은 84.6%가량 감소했다. 금액 규모로 보면 지난해 2183억원에서 올해 336억원으로 1년 만에 1800억원가량 줄었다. 소부장 특별회계를 비롯한 예산은 반도체와 관련 기업들의 기술 자립을 위해 만들어진 지원 예산으로, R&D 지원 위주로 투입된다.

소부장 업계 관계자는 “삭감된 예산에 맞춰 새로 협약을 맺어야 하는데 금액은 줄었지만, 사업 방향은 유지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있다”며 “줄어든 예산에 맞춰 계획서를 다시 만들 경우, 재평가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예산도 줄었는데 눈치까지 봐야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사진=삼성전자]
[사진=삼성전자]

우리와는 대조적으로 해외 주요 국가들은 자국의 반도체 기업을 중심으로 시장 성장에 발맞춰 전폭적인 지원에 나선 상태다.

전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을 보유 중인 미국은 정부 주도로 산업육성법 등을 통해 자금을 공격적으로 투입 중이며, 일본도 자국 내 소부장 기업에 대한 성장에 집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자생력 강화와 R&D 기반 조성, 대기업들의 적극적인 시설 투자 유도 등을 위해 세액 공제 혜택과 보조금 지원 등 체감도 높은 육성책이 투입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규복 한국전자기술연구원 부원장은 “정부가 수년간 반도체 양산 환경 개선에 노력하고는 있지만 소부장 기업들의 육성에 필요한 세제 혜택과 자금 지원, 연구개발 지원 등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며 “보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들의 성장을 도모하고, 이를 관련 산업과 연계한 지속적 지원 시스템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기업들 간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HBM 설비투자 확대에 따라 일부 기업들의 집중적인 수혜가 예상되지만, 다수의 장비사들의 경우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설비 투자 기조 변화에 따라 매출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편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지난해부터 D램 선단 공정과 HBM 관련 장비 발주 규모를 꾸준히 늘리고 있는 상황으로, 특히 삼성전자가 대대적으로 HBM 생산능력(CAPA) 확장에 나서면서 세메스, 램리서치 등의 주요 장비사들이 대규모 공급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세메스에 수십대의 TC본더 발주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TC본더는 열 압착 본딩 장비로 D램을 적층하는 데 사용된다. HBM과 DDR5 D램 양산에 필수적인 장비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한미반도체에 수십대 규모의 TC 본더를 발주한 바 있다.

SK하이닉스는 인공지능(AI) 메모리 반도체로 각광받고 있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올해에만 첨단 반도체 패키징 약 1조3316억원을 투자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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