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니 다들 ‘탄소중립’을 말하고 있다. RE100(재생에너지 100%)은 그 용어조차 낯설다. 하지만 우리는 겨울철 심한 미세먼지를 경험하고 점점 더 강한 태풍이 한반도를 덮치는 여름을 보내며 기후위기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곤 한다. 2024년을 맞아 석탄부터 신재생에너지까지 에너지원을 차례로 짚어보며 우리나라가 탄소중립시대 에너지산업 강국으로 나갈 수 있는 방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GS칼텍스 여수공장 전경. [사진=GS칼텍스]
GS칼텍스 여수공장 전경. [사진=GS칼텍스]

[이뉴스투데이 김덕형 기자] 박정희 군사정부가 지난 1962년 1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국내 석유산업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석유산업은 눈부신 발전을 계속해 산유국이 아닌 대한민국이 세계 6위 정유산업국에 올라섰다.

25일 한국기업평가의 업종별 분석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의 합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90조원(2022년 214조원), 5조원(2022년 14조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유가 하락 영향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었음에도 석유제품은 수출액 519억9900만달러로 국가 주요 수출품목 중 3위를 기록했다. 최근 3년 연속 상위 5개 품목 안에 자리하며 수출산업으로서 위상은 여전히 공고하다.

오늘날 석유산업 대국으로 자리매김한 우리나라에 석유가 처음으로 사용된 시기는 1880년이다.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맺으며 조선 조정에서는 사절단을 미국이나 일본에 파견해 새 문물을 들여오던 때다. 당시 승려이자 외교관이던 이동인이 일본에서 석유와 석유램프, 성냥을 가지고 귀국하면서 이 땅에 처음 석유가 상륙했다.

이후 ‘서양기름’이라 불린 등유는 한미수교 2년 뒤인 1884년부터 미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정식 무역이 이뤄지고 미국 상인과 선교사들이 석유를 대량 수입하면서 삽시간에 국내 등잔기름 시장을 장악했다. 우리나라 고유의 아주까리나 송진 기름등잔은 석유등잔으로 대체됐고 밭에서 흔히 보였던 아주까리, 들깨 농사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됐다. 등유는 아주까리나 들깨기름보다 2배나 더 오래 쓸 수 있었고 값은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에서 서양기름의 가치가 증명되자 1897년 미국 공사 알렌은 조선 조정에서 이권을 획득했고 이를 통해 당시 미국 최대 석유회사이던 스탠다드오일 석유가 ‘솔표’ 상표를 달고 전국으로 판매에 나서게 됐다.

이후 국내에 처음 정유공장이 세워진 건 일본에 의해서다. 한반도를 병참기지화한 일본은 1935년 조선석유를 세우고 연산 30만톤(일산 약 6000배럴) 규모의 원산정유공장을 건설했다. 1938년 원산공장이 완공된 후 조선석유는 미국에서 유조선으로 원유를 운송해 정제하기 시작했다.

◇1962년 국내 석유산업 본격화

해방 후 미군이 국내 모든 석유제품의 수입과 배급을 통제하자 조선석유도 미군정의 관리를 받게 됐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1년이 지난 1949년에야 모든 석유류의 저장과 판매 업무를 주관하는 대한석유저장주식회사(KOSCO)가 설립되며 석유 주권이 우리에게 돌아오게 됐다.

하지만 국내 정유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출범과 함께다. 당시 정부는 정유공장 건설을 최우선사업으로 채택하고 1964년 4월 일산 3만5000배럴 규모의 대한민국 최초 정유공장을 경상남도 울산에서 가동하기 시작했다.

정유공장이 가동되면서 1960년 초만 해도 주종 에너지원이었던 석탄을 물리치고 1962년에 9.8%에 불과했던 석유 소비는 1971년에 50.6%를 차지하게 됐다. 바야흐로 석유가 국내 소비 1위 에너지원으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현재 우리가 주유소를 이용하며 쉽게 접할 수 있는 석유회사 4곳 모두 1962년 박정희 군사정부가 산업 기반을 닦기 시작한 이후 기업의 역사가 시작됐다.

SK이노베이션의 정유 부문 자회사인 ‘SK에너지’는 정부가 1962년 ‘대한석유공사법’을 제정해 같은 해 10월 대한석유공사를 설립하며 시작됐다. 국내 최초 정유업체이자 현재도 4대 정유사 가운데 1위 정제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1980년대 초 정부는 대한석유공사를 민영화하기로 결정하고 주식회사 선경을 대상자로 선정했다. 선경은 1982년 대한석유공사의 사명을 ‘유공’으로 바꿨고 2011년 1월 석유지주사로 전환해 SK이노베이션이 됨에 따라 또다시 물적분할 돼 정유 부문 자회사인 SK에너지가 됐다.

현재 세계 3위 정제능력(하루 85만배럴)을 가진 울산 콤플렉스(CLX)를 보유하고 있다.

GS칼텍스의 전신은 ‘럭키’다. 정부가 1966년 제2차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제2정유공장 건설 실수요자를 공모한 끝에 선정돼 미국 칼텍스사와 합작으로 호남정유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1969년에 여수 정유공장을 준공하며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성장을 거듭하며 1996년 사명을 LG칼텍스정유주식회사로 변경했고 2005년 LG그룹으로부터 분리 독립해 GS칼텍스로 사명을 변경했다.

여전히 전라남도 여수시에 정유공장과 인천광역시에 윤활유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사진=이뉴스투데이DB]
[사진=이뉴스투데이DB]

◇정유 ‘빅4’의 시작과 현재

‘에쓰오일’은 쌍용그룹이 1970년대 석유파동으로 쌍용양회의 벙커C유 공급이 끊어져 어려움을 겪자 이란국영석유공사(NIOC)와 50대 50으로 합작정유공장 건설계약에 합의해 1976년 한이석유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에 정유공장을 건설하며 시작됐다.

하지만 정유공장 완공 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으로 원유공급계약이 파기되자 이란 측 주식을 전량 인수하고 1980년에 사명을 쌍용정유주식회사로 변경했다. 이후 1991년 사우디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와의 지분참여 계약을 체결하고 중질유 크래킹 센터를 건립했고 1999년 쌍용그룹에서 계열분리를 해 2000년 사명을 현재의 에쓰오일로 바꿨다.

HD현대오일뱅크는 전신인 ‘극동석유공업’이 고급윤활유를 주로 공급해 온 회사로 세계적인 정유사 로열더치쉘과 합작투자계약을 체결하고 1969년 상호를 극동쉘석유로 변경하며 역사가 시작됐다. 1977년 극동석유주식회사로 상호 변경하고 쉘이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합작계약이 해지되자 쉘의 지분 50%를 현대가 매입하게 된다. 1988년에 상호를 다시 극동정유주식회사로 변경한 후 1989년에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등지에 정유공장을 준공했다.

그러나 공장 준공 후 심각한 재정난으로 1993년 현대그룹이 극동정유를 인수했고 최근 HD현대오일뱅크로 사명을 변경했다.

지금도 국내 석유산업은 견조하고 수출 규모도 전체 산업 가운데 항상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지만 석유산업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원유는 언젠가는 고갈될 수밖에 없는 자원이기 때문이다. 또 화석연료의 과도한 사용이 환경에 심각한 부담을 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인류가 최근 새로운 에너지원 확대에 나서고 있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석유는 기본적으로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시키는 원인이다. 이로인해 지난 1997년에 채택된 ‘교토의정서’에서 세계 각국은 온실가스 배출에 의한 지구온난화를 늦추겠다는 합의를 맺었고 석유업이 본격적인 격랑에 빠지기 시작했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내놓은 전망보고서를 보면 전기자동차와 신재생에너지 등의 급부상에도 석유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면서 석유는 2040년까지 주종 에너지원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지금부터 10~20여년이란 기간이 석유 산업계에 주어진 새로운 성장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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