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포항제철소 열연공장.[사진=포스코]
포스코 포항제철소 열연공장.[사진=포스코]

[이뉴스투데이 김종현 기자] 국내 건설업계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로 위축되면서 주요 자재를 공급해온 철강업계까지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주요 산업 구축 프로젝트에서 금기시 되어온 중국산 자재 사용이 가시화돼 관련 산업 붕괴 및 시설 안정성 논란까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19일 한국신용평가의 주요 철강업체 평가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포스코, 현대제철, 세아베스틸, 세아창원특수강, 현대비앤지스틸 등 5개 철강사 합산 매출액은 15조3000억원으로 전분기에 이어 둔화세가 이어진 가운데 영업이익이 472억원 적자를 기록하며 사실상 해당 분기 실적이 뒷걸음질 쳤다.

연간 실적에서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66조원, 2조9000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8.9%, 26.6% 감소했다.

이에 대해 한신평은 매출 감소 요인으로 판매단가 하락 영향이 컸는데 판매량은 2022년 태풍 힌남노 피해 때보다는 증가했으나 대외환경 저하가 철강 수요를 제한한 결과 개선 폭은 기대에 미치치 못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수요 부진과 수입재 유입 증가가 철강 가격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판가는 약세를 거듭했고 업계 전반의 외형 감소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들은 4분기 철강업계 수익성 악화의 주된 요인으로 ‘고원가 저판매’ 구조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했다.

◇ 4분기 주요 철강사 합계 영업익 적자로 돌아서

다만 한신평은 주요 업체들이 우수한 자본 완충력과 순이익 기조 아래 부채비율 100% 미만의 재무구조가 유지되고 있어 재무부담은 각사 이익창출력 및 재무역량 안에서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익수 한신평 수석애널리스트는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에도 원활한 판매가격 인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 따른 롤마진 축소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정 수석애널리스트는 “봉형강과 특수강은 고철 및 니켈 가격 약세 등에 기인한 판가 약세가 지속되면서 부정적 레깅효과가 수익성이 악영향을 미쳤다”며 “일회성 노무비, 재고자산평가손실 등 비경상적 비용도 수익구조에 부담을 가중시켰다”고 판단했다.

그는 판매단가 하락 요인을 두고는 “글로벌 경기 둔화에서 촉발된 전방수요 부진, 저가수입재 범람이 철강가격을 끌어내리며 판매가격은 약세를 거듭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부진한 건설업이 올해도 철강업계의 실적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주요 철강업계는 지난해 건설업이 시황 부진과 원가 급상승까지 겹치며 부진하자 수요가 급감하면서 실적에 타격을 입었다. 더욱이 하반기 들어 부동산 PF 부실 여파가 거세지면서 올해 철강업계도 실적 부진에 고심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 수석애널리스트는 “부동산 PF 리스크 부각과 함께 본격화되고 있는 국내 건설업의 부정적 업황이 철강 내수의 주된 하방 위험으로 작용할 전망”이라며 “올해도 수출 실적의 유의미한 반등을 기대하긴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이런 상황에서 업계는 이제 저렴한 중국산 자재와 싸워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며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간 건설업계에서는 주로 주택용 건축에 중국산 자재를 일부 사용해 왔지만 석유화학 설비 구축 등 품질 우려가 있는 주요 설비구축에는 국내산 자재만 이용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형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일부 자재를 중국산으로 대체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논란을 키우고 있다.

실제 에쓰오일이 사우디 아람코와 합작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 사업으로 불리는 울산 샤인프로젝트 건설 현장에서 중국산 자재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자재 납품업체들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샤인프로젝트는 에쓰오일과 아람코가 9조2000억원을 투자해 진행 중인 프로젝트로 현재 전체 공정률 20%가 진행됐다.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공장 건설 공사를 앞두고 이를 수주한 대형 건설사가 중국산 자재 사용을 허용하면서 안팎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 현대건설은 최근 중국 강철 제조업체와 파이프 공급 계약을 맺고 석유화학 공장설비에 중국산 파이프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중국산 파이프의 가격이 국산 제품의 70% 수준으로 알려지면서 사실상 건설사들이 폭등하는 국내 자재 가격을 대신해 중국산을 전격 도입한 상황이다. 또 핵심 부품인 볼트와 너트도 중국산을 도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에쓰오일은 그간 설비 구축에 단 한 번도 중국산 자재를 사용하지 않았다. 더욱이 에쓰오일이 작성해 배포한 현장 시방서에는 중국과 인도, 헝가리, 루마니아 산 원자재를 사용하지 말라고 명시돼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에쓰오일의 경우) 중국산을 한 번도 써 본적이 없다”면서 “갑자기 현대건설이 중국재를 자기들이 보증할테니 쓰도록 해달라고 해서 승인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 급등한 자재값에 건설사 중국산 사용으로 돌아서

업계는 그간 석유화학 공장 건설 때 중국산 자재 사용에 대한 명확한 금지조항은 없지만 안전사고 우려 때문에 지금까지 사용을 제한해 왔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에쓰오일 관계자는 “해당 프로젝트가 광범위해서 사실 확인이 제대로 안 된 상태”라며 “자세한 내용은 시공사에 문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중국산 자재가 정밀시공이 필요한 부분까지 침투하게 될 경우 국산 자재 업체뿐만 아니라 철강업계도 후폭풍이 거세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더욱이 안전문제에 대한 논란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같이 정밀시공이 필요한 상황에서 아직 품질을 확인하지 못한 중국산 자재가 사용될 경우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철저한 점검과 감시를 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불량률 및 품질 등을 고려했을 때 중국산 자재 사용에는 심사숙고가 필요하지 않겠냐”며 반문했다.

하지만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산 자재값이 급상승하고 있어 시공사로서는 책정된 비용을 맞추기 쉽지 않은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면서 “중국산의 경우 국내산보다 최고 5~10% 이상 저렴하게 책정되고 있어 원가절감을 위해서 이를 외면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더욱이 대표 철강재인 열연강판의 경우 그 자체로도 사용되지만 후공정을 통해 자동차구조용, 강관용, 고압가스용기용 등으로 제조돼 자동차·건설·조선·파이트·산업기계 등 산업 전반에 걸처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최근 들어 국내산과 수입산의 가격 차가 벌어지면서 특히 저렴한 중국산을 중심으로 국내 시장에서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어 철강사들로서는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가격 인상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다. 올해 들어 주요 철강사들이 열연강판 가격 인상을 추진 중이지만 제값 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열연강판 수입량은 422만톤으로 전년(339만톤) 대비 24.5% 늘었다. 더욱이 수입산 열연강판은 국산보다 5~10% 싼값에 유통되고 있다.

철강업계에서는 건설시장을 중심으로 중국산 철강재 및 자재 사용을 확대할 경우 철강업계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며 위기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품질 면에서 국내산과 중국·일본산 등과 차이가 거의 없다”면서도 “최근 철강 유통 시장이 과거 공급자 위주 시장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어 이 같은 변화에 맞춘 선제적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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