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유은주 기자] 기초는 누군가에게는 원칙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철학이다. 기초는 조직에게는 근간이고 학문에선 연구의 바탕이 된다. 지식이든 사람이든 기초를 튼튼히 한다는 것은 이제 지을 누각을 모래가 아닌 굳건한 지반 아래 세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기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당위다. 이곳에 효율성과 경제성의 잣대를 객관적 평가 없이 함부로 들이대면 땅은 물러지며, 모래에 물이 스며들 듯 그곳으로부터 세운 학업과 사상과 구조의 틀은 잦은 바람에도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내년도 R&D 예산안을 5조2000억 줄인 가운데 우리나라의 과학분야 미래를 이끌 바탕이 되는 기초과학 연구 예산도 2천억이나 줄였다. 이러자 최근 기초과학 분야 학회와 협의회는 예산 삭감을 되돌려달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10만명이 넘는 과학자들이 동참한 목소리다.  

기초과학은 응용과학에 대응한 순수과학으로, 자연과학의 기초원리와 이론에 대한 학문을 통틀어 일컫는다. 공학의 기초로 기술 연계를 고려하지 않은 경우를 지칭하기도 한다. 

최근 과학기술 발전의 가장 기초가 되고 뿌리가 되는 학문이 위기에 빠졌다며 기초연구분야 대학과 출연연, 관련 기업들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번 예산 삭감에 대해 심각성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기초과학계 인사들은 산업의 선진화됨에 따른 단순 모방이 아닌 기초 연구의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구 예산 삭감이라는 시대 역행적 정책 기조에 깊은 유감을 표하고 있다. 

2024년도 기초연구 예산안 분석에 따르면 과기정통부의 예산 가운데 풀뿌리 개인기초연구를 포괄 지원하는 생애기본연구사업 중 신규 연구를 중심으로 한 ‘기본연구’와 ‘생애첫연구’ 예산은 책정되지 않았다. 생애첫연구의 경우, 최초 신규에 한해 일생 단 한 번 지원받을 수 있기에 신규 과학자를 위한 도움닫기라고 할 수도 있는데 예산 삭감으로 젊은 과학자 양성을 위한 첫 번째 사다리도 사라졌다. 더 들어가 내년 1억원 미만의 신규과제 지원 연구는 자취를 감췄다. 이 점이 과학자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정부의 시각대로라면 기초과학은 바로 돈이 되지 않는다. 기초과학 신진연구자들도 바로 빛을 보기도 하고 늦게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위한 지원이 사라지게 돼 연구자 육성을 위한 프로세스가 사라질 처지에 놓인 것이다. 

기초과학의 다양성 증진은 신진 연구자들을 성장시킨다. 지금의 상황은 연구생태계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장 연구책임자들의 고용안정성도 위협을 받고 있다. 이인력을 다시 육성하려면 향후 몇 년 안에 회복은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의 지원체계는 비교적 촘촘히 잘 정립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년부터 급격히 지원체계가 바뀌게 된다면 출연연, 학계는 공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목소리를 의식한 듯 지난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10명의 젊은 과학자들과 대화를 통해 연구자들의 오해를 풀겠다며 간담회를 개최했다. 초대된 이들은 바이오, 반도체, 에너지 분야의 연구자, 박사후연구원, 학생연구원 등이다. 

그 의도를 십분 이해하더라도 대표성에는 의문이 든다. 신진연구자들은 화려한 조명 아래 커다란 카메라와 마이크를 앞에 두고 과기정통부 장관 앞에서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기초과학 R&D는 카르텔이라는 오명 아래 효율화를 목적으로 제단에 올랐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누워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정부의 정책 입맛에 맞을 때까지 당기거나 잘릴 그 무엇이 된 것이다. 기초과학이 말이다. 정작 연구자들은 어떤 카르텔이 어떤 비효율을 불러왔는지 알지 못한 채로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노벨상 시즌이 돌아왔다. 매번 이웃나라 일본의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 소식에 부러움과 시기를 섞어 연구 매진을 독려했던 우리였다. 기초과학은 성격 급한 정부가 바라듯이 단기의 성과로 돌아오지 않는다. ‘성과가 나올 것 같으니 지원하자’는 식으로 과학을 바라보는 것은 천박하다. 기초과학에 대한 이해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연관적 우(愚)는 우리는 이미 사회적 갈등으로 2005년, 2008년 그리고 지금도 환산하고 있으며 범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한결같이 기초과학의 미래를 100년을 보고 투자하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카르텔’이라는 프레임 하나로 연구인력의 생계와 생존을 흔들고 연구의 길을 초입부터 차단했다. 이유는 있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해와 동의는 없었다. 기초과학이 ‘사상누각’이 될 첫 삽이 떠졌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다시 한번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기대한다. 돈 되는 산업도 기술도 학문도 모두 출발점은 하나다. 기초 실력은 게임을 좌우하고 조직의 명운도 가른다. 나라라고 다를까. 

※ 여러분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소비자 고발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메일 : webmaster@enewstoday.co.kr

카카오톡 : @이뉴스투데이

저작권자 © 이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