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안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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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번호 알려드릴게요. ‘툭’하고 톡 주셔요. (월간CLO 4월호, 23. 4. 28)

조직이 변화하기를 바란다면, 그 변화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기를 원합니다. (월간CLO5월호, 23. 5. 30)

[이뉴스투데이 노해리 기자] 김영태 코레일유통 대표는 지난 4월 3일 공식 취임 이후 매달 ‘월간CLO’란 제목의 편지를 1000여명의 임직원에게 발송했다. 내용은 다채롭다. 날씨 얘기 안부 같은 스몰 토크부터 변화와 혁신에 대한 강조, 저명인사들의 명언까지 길지 않은 이메일 속엔 무심코 읽었을 때 도움 되는 내용으로 가득 채웠다. 개인 휴대전화 번호 공개도 이 편지를 통해서다. 반응은 성공적. 아직 많은 직원들에 문자 메시지나 전화를 받진 못했으나 이런 행보에 대해 직원들 간엔 “그간 겪어보지 못한 형태의 소통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새롭다”는 평이 오갔다는 후문이다.

김영태 대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메신저 익명 채팅방을 열어 직원들을 초대했다. 여기선 실명을 가린 익명의 대화명을 쓴다. 익명의 직원들은 사내 복지와 시스템, 일하며 궁금했던 내용들을 가감 없이 질문한다. 대화방서 유일한 실명, 김영태 대표는 정기적으로 대화방을 열어 직원들과 대화한다.

◇“혁신은 청취에서 나와···나는 최고청취책임자”

김 대표가 이처럼 소통을 중요히 여기는 이유는 이청득심(以聽得心), 혁신은 청취에서 나온다는 지론에서다. 취임사에선 자신을 최고청취책임자(CLO:Chief Listening Officer)라고 했다.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전국 지역 현장을 돌며 직원들과 나눈 ‘커피챗’. 업무효율성 제고를 위해 복장규정도 폐지했다. 오픈채팅 외에도 수시로 브라운백 미팅을 하고, 주니어보드와 회의한다. 모두 직원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김 대표가 취임하고 바뀐 건 또 있다. 매출목표를 올려 잡았다. 사상 최초로 6000억원 달성을 새 목표로 삼았다. 22일 만난 김영태 대표의 집무실 한 켠엔 ‘매출 달성 6000억원’ 글귀도 걸렸다. 공기업으론 이례적인 수치다. 김영태 대표는 “목표를 높게 잡으면 무슨 수라도 내지 않겠어요?”라며 웃는다. 우선 매출 목표를 잡고 이후 달성 방향을 잡되, 위험마저 감수하는 전형적인 ‘벤처’ 스타일 경영 방식이다. 여기 까지라면 조금 무리다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속내는 따로 있다. 그는 “초고속으로 성장하는 조직의 일원들의 눈이 얼마나 반짝였는지, 그 안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는지를 기억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경영혁신과 변화관리 전문가로 꼽힌다. 언론인 출신으로 하이트진로, 쿠팡, 한샘 등 대기업과 벤처기업에서 경력을 쌓았다. 급변하는 산업시장과 뜨거운 경쟁 구도 한가운데서 버텨온 김영태 대표는 당시의 경험도 직원들에 전수하고 싶은 것. 집무실에 걸어둘 정도로 강조하는 그의 ‘매출 상향’은 직원들에 전하는 간접 메시지다.

코레일유통은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철도역사에 스토리웨이 편의점과 전문매장을 운영하고, 역사와 열차 등에 광고를 주요 업무로 하는 회사다. 1936년 설립된 철도강생회(1967년 홍익회로 개칭)가 모태다.

오래된 전통과 문화를 가진 기업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김영태 대표는 이 역시 그 답게 해답을 내렸다. 민간기업에서 찾기 어려운 공기업만의 강점은 살리고, 성공한 벤처기업의 비전‧전략은 접목했다.

“코레일유통은 대한민국 철도 플랫폼의 공간 운영자입니다. 회사는 공익성과 수익성의 균형감각, 미래 지향성, 국민과의 신뢰 속에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이 세 가지는 다른 기업, 특히 민간에선 찾기 어려운 강점입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모빌리티 혁명의 시대, 어쩌면 과거의 플랫폼에 스스로를 묶어 놓은 듯합니다. 강점 속에 감춰진 약점입니다.”

[사진=안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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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유통 주요 업무 정의 바꿔···모빌리티 서비스 기업

김 대표는 업에 대한 정의를 바꿨다. 유통회사가 아니라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이라고 했다. 그는 “회사가 하는 일을 산업분류표 상으로 따지는 것은 종종 직원들의 오해와 사고의 한계를 가져온다”며 “업의 정의는 절대적으로 ‘우리는 무엇(누구)인가’에 대한 것이고, 상대적으로는 ‘우리는 무엇(누구)과 다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무엇이 정의되면 어떻게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비전과 전략에 앞서 정체성이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고객이 코레일유통에 원하는 것은 이동과 관련한 ‘좋은 경험’”이라며 “회사가 갖고 있는 자산과 인력의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내 고객의 문제를 먼저, 빨리, 쉽게 해결해 드리는 게 핵심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성공하는 벤처의 공통점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한 타 기업과의 사업 확장은 그가 취임한 반년 간 쉼 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는 이를 ‘동맹’이라 칭했다. 김 대표는 “고객은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이동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식사, 선물, 재미 혹은 분위기까지 원한다”며 “이 문제를 해결해 줄 동맹을 만들 필요가 있다. 동맹을 만드는 전략, 그 키워드는 연결과 확장”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현재 쏘카, 토스, 야놀자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과 협력해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프로야구 구단 롯데자이언츠와도 손을 잡았다. 회사가 가진 공간의 강점에 기술과 데이터를 결합해 고객의 문제 해결에 한발 더 다가가겠다는 뜻이다. 이 모든 건 고객을 5분 더 일찍 역사에 오도록 하겠다는 포부가 담겨있다.

“KTX 정시율이 높아지면서 회사는 장사가 잘 안 될 수 있습니다. 고객들이 5분 일찍 역사에 오시도록 해야죠. 고객의 5분 투자를 5분 이상의 가치로 보답하는 게 숙제입니다. 저희 공간에서 먹거리, 살거리,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철도역사라는 공간에서 고객들의 시간과 싸우는 일, 공간과 시간의 비즈니스가 코레일유통의 일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이 연결과 확장이다. 공간을 물리적 공간으로 제한하지 않고, 연결과 확장을 통해 가상공간까지 함께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기업, 지자체들과 손을 잡는 이유다.

[사진=안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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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한 호흡 맞춰 지자체 상생 이끈다

기업과의 협업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정부와 한 호흡으로 진행하는 지자체와 지역경제 활성화다. 철도 모빌리티는 다른 모빌리티 보다 지역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지역소멸을 완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국가 인프라다.

“지역을 살리는 데 있어서 철도는 다른 어떤 모빌리티 보다 힘이 세다”고 말하는 그는 현재 기초 광역을 망라한 지역 연계를 추진하고 있다. 전북 무주군, 강원 인제군, 강릉시, 부산광역시 등과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김영태 대표는 “지자체와 소상공인 과업의 핵심은 정부 정책과 호흡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기업 경영진과 정부 관장 부처의 팀워크가 중요하다. 내수진작, 경제활성을 위한 다각도의 마케팅 활동은 기본”이라고 했다.

회사는 6월 한 달 동안 국가유공자들에게 무료 커피를 드렸다.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회의를 맞아 서울역과 부산역에 광고판을 세웠다. 여름철 국민안전 관리 캠페인을 행안부와 함께 펼쳤다. 잼버리 대회로 한국을 방문한 대원들에게 역사 스토리웨이 편의점에서 생수를 무료로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경쟁사에 대해 물었다. 국내 하나뿐인 국가 산하기관은 경쟁사가 많지 않으나 여느 기업이라면 늘 경쟁사와 경쟁하며 발전을 거듭한다. 벤처기업 정신을 갈망하는 김 대표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의 입에선 뜻밖의 기업이 튀어나왔다. “넷플릭스.” 즐겁게 여가를 즐기는 데 가장 많이 소비되는 핫한 기업이다.

“코레일유통도 고객이 철도역사에 머무는 시간동안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면에서 넷플릭스도 경쟁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영태 대표(56)

서울 출생. 영일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핀란드 알토대학 경영대학원, KAIST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배웠다. 매일경제신문 기자 시절, 경제부, 지식부 등에서 일했다. 인터넷 미디어 코리아인터넷닷컴과 지능형검색엔진 개발회사 케이랩의 설립자였다. 경인방송 방송기자로도 활동했다. 하이트진로 혁신 담당 전무, 한샘 커뮤니케이션/위기관리 총괄 전무, 쿠팡 커뮤니케이션/CSR 총괄부사장 등을 맡았다.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획위원과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초대 국민소통관장, 대외협력비서관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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